'축구전설'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심장마비로 별세...멕시코 월드컵 우승 '신의 손' 영욕의 60년 마감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7 0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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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뇌수술 받아…천재적 재능 속 마약 등 구설도 끊이지 않아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축구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아르헨티나는 슬픔 속에 빠졌고 마라도나가 7년여 간 뛰었던 이탈리아 나폴리도 충격에 빠졌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축구스타들은 고인의 별세에 잇따라 애도를 표했고, 토트넘이나 맨체스타 유나이티 등 마라도나가 뛴 적이 없는 클럽이나 국가에서도 슬픔을 나눳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라도나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고, 국민적인 영웅을 잃은 아르헨티나는 3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 고인의 시신을 대통령궁에 안치하기로 했다.
 

▲ 010년 6월 7일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훈련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인 마라도나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클라린, 라나시온 등 아르헨티나 언론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는 25일(현지시간)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고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은 편이었으나 60세의 나이에 최근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약해 온 데다, 이달 초 뇌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친 것으로 알려졌기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물론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지 당국은 고인의 장례에 앞서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유족과 협의해 이날 오후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다.

이날 마라도나가 숨진 티그레의 자택에는 많은 팬들이 몰려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부검을 위해 시신이 옮겨진 안치소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랜드마크인 오벨리스크, 고인이 뛰던 보카주니어스 팀의 홈 경기장 등에도 추모객들이 몰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르헨티나 주요 언론 웹사이트는 고인의 업적과 자취를 상세히 되짚었고 각계각층의 애도를 전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마라도나는 조국 아르헨티나에 월드컵 우승컵 이상의 큰 자부심을 심어줬고, 많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줬기에 고인의 별세 소식은 이들에게 엄청난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수시절 ‘축구의 신’으로 불렸던 마라도나의 삶은 말그대로 영욕의 삶이었다.

▲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주요 기록. [그래픽= 연합뉴스]

몸과 몸을 부딪치며 격돌하는 축구에서 한 명의 선수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의 끝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며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신화를 썼다. 반면 마약과 약물 복용 등으로 인해 악동의 이미지도 강했다.

마라도나는 불과 스무 살에 아르헨티나 정규리그 득점왕과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며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마라도나는 유럽으로 진출해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클럽 FC바르셀로나에서 승승장구했고, 1984년 이탈리아 나폴리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화려한 축구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나폴리가 마라도나를 영입하면서 바르셀로나에 준 690만 파운드(약 102억원)는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이탈리아 세리에A(1부리그)의 만년 중하위권 팀이던 나폴리는 그 몸값 이상의 마라도나 특수를 누렸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 모든 트로피를 안겨줬다. 1986-1987시즌 구단 사상 처음으로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89-1990시즌에도 한 번 더 우승했다. 세리에A는 당시 유럽 최고 리그로 꼽혔다.

마라도나는 FA컵 격인 코파 이탈리아(1986-1987)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1990)도 나폴리에 가져다줬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1988-1989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UEFA)컵도 들어 올렸다.선수 한 명이 팀 성적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사례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특히, 마라도나는 현란한 드리블과 허를 찌르는 패스로 AC밀란, 유벤투스 등 세리에A 북부 연고 강팀들을 무력화하면서 나폴리 시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 2006년 6월 22일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C조 조별 예선 네덜란드-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승리를 기원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마라도나는 밀라노, 토리노 등 부유한 북부 도시에 대해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 시민들이 느끼던 박탈감과 열등감을 경기장에서 해소해 주며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나폴리 시민들로부터 신처럼 추앙받을 정도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성격은 마라도나 신화에 극적인 요소를 더해 최강의 장면을 연출하며 전설을 만들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를 세계적인 축구의 신 반열에 올려놓는 역사적인 무대였다.

마라도나는 이 대회 8강 잉글랜드와 경기(아르헨티나 2-1 승)에서 왼손으로 골을 넣은, 이른바 '신의 손' 오심 사건을 일으켰다. 손으로 넣은 이 골로 1-0을 만든 마라도나는 불과 4분 뒤 상대 선수 7명을 제치며 50m 질주한 끝에 추가골을 넣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과 50m 질주 골을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결국 멕시코 월드컵의 맨 꼭대기에 우뚝 서서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그라운드에서의 명성 만큼이나 그라운드 밖에서는 ‘악동’의 이미지를 남겼다. 약물 중독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추락을 거듭하며 오점을 남겼다.

23세이던 1983년부터 코카인 중독 의혹을 받던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뛰던 1991년 약물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여 15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결국 나폴리를 떠나게 된다.

마라도나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뒤 도핑 검사에서 적발돼 대회 도중 퇴출당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마라도나는 지난해 9월에는 자국 프로축구 1부 팀인 힘나시아 라플라타를 지휘하기도 했다.

▲ 이탈리아 나폴리 시민들이 마라도나의 별세를 애도하는 촛불을 대거 켜놓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60세 생일을 맞은 마라도나는 이달 2일 빈혈, 탈수 등 증상으로 힘나시아의 연고지 라 플라타의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두부 외상 후에 출혈이 생겨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장막하혈종 진단을 받고 전문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받았고, 이달 11일 퇴원했다.

수술받은 지 8일이 지나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나선 마라도나는 딸인 히아이나의 집과 가까운부에노스아이레스 북쪽의 티그레에서 요양에 들어갔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 전력이 있는 마라도나는 약물에서는 벗어났으나 알코올 의존 증상은 여전해 관련 치료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위대한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영욕을 뒤로 하고 결국 6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등 주요 인사를 포함한 아르헨티나인들은 줄줄이 애도를 표하며 영웅을 발자취를 회고했다.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당신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 감사합니다, 디에고. 당신의 업적을 쭉 생각하겠다”고 애도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3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 고인의 시신을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안치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26일부터 28일까지 일반인들이 대통령궁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이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대통령궁에는 운구된 마라도나의 시신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몰려든 많은 팬들이 긴 줄을 이루었다.

이들은 마라도나 포스터 등을 손에 들고 생전의 고인을 기억하며 눈물을 쏟았다. 수도 중심부에도 많은 팬들이 모여 아르헨티나의 국기 등을 흔들며 ‘마라도나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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