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③ 너무나 프로페셔널했던 스쿨밴드 '블랙 테트라'

김형진PD / 기사승인 : 2020-08-17 1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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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 세 번째 순서로, 너무나 프로페셔널했던 홍익대학교 스쿨밴드 ‘블랙 테트라’ 이야기다. 블랙테트라 2기 멤버는 구창모(보컬), 김정선(리드기타), 박현우(세컨드기타), 김국현(베이스 기타), 임현순(드럼), 이계형(키보드) 이었다.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 예선은 TBC동양방송 라디오 부스에서 열렸다. 본선에 진출할 10여개 팀을 가리기 위해 라디오 부스에 드럼, 기타앰프, 키보드 등을 셋팅해 놓고 참가자들이 연주와 노래를 하면 심사위원인 TBC라디오 PD들이 당락 여부를 결정했다.

 

실력 미달인 그룹사운드는 보컬의 노래 한 소절만 듣고도 라디오PD들이 '그만하세요' 신호인 '뿌우~' 소리를 내는 부저버튼을 눌렀는데 이날 '뿌우~' 부저버튼을 누르지 않고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전곡(후렴포함 2절까지)을 들은 유일한 노래가 바로 ‘구름과 나’였다.


 ‘구름과 나’는 홍익대학교 그룹사운드 블랙 테트라 2기가 불렀는데 블랙 테트라의 ‘테트라(Tetra)’는 라틴어로 숫자4를 뜻하는 즉, 열대어의 검은 무늬가 4개여서 Black Tetra(검은 열대어)로 그룹명을 지었다고 한다.

 

죽을 때 열대어가 자기 몸이 부풀어 올려 터져 죽는 것처럼 강렬한 사운드를 표방했지만 그들이 선보인 음악은 하드록이기 보다는 통속적인 '기성가요'에 가까웠다.

 

▲ TBC 해변가요제 블랙테트라 2기 노래·연주 모습. [사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블랙 테트라는 제1회 TBC 해변가요제 ‘연포해수욕장’ 가설무대에서 보컬 구창모의 부드러우면서도 샤우팅한 창법(노래 엄청 잘함)과 아마추어 대학생 연주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세련된 기타(기타 엄청 잘침) 테크니션의 김정선 연주는 다른 출연자(팀)보다 한수 위 높은 실력을 과시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연포해수욕장 피서객들은 누구나 블랙 테트라가 최우수상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구름과 나’는 2위에 해당하는 우수상에 그치고 만다.

 

“블랙 테트라는 아마추어 학생밴드답지 않은 수준 높은 연주실력과 가창력이 되려 마이너스였다”는 그 당시 심사위원장의 말처럼 학생밴드 답지 않은 수준 높은 연주실력은 김정선의 기타를 지목한 것인데 사실 김정선은 홍익 대학생이 아니었다.


군 제대 후 단국대학 복학생 김정선은 의정부 미군 기지촌 클럽에서 기타세션을 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기타리스트로, 김정선과 고등학교(배재고) 동창인 구창모가 가요제 입상을 위해 그를 홍익대 블랙 테트라 멤버로 끌어온 것이다.

 

MBC 대학가요제는 참가자들로부터 ‘재학증명서’를 요구했지만 민영방송사 TBC는 상업적 성공을 위해 해변가요제 참가자(팀) 자격조건을 대학생뿐만 아니라 ‘고졸이상의 만 23세 미만의 남녀‘로 해놓고 어떤 증명서 요구도 없었다.


그 당시, 서울대 샌드페블즈, 고려대 코리아 스톤, 서강대 킨 젝스, 성균관대 정사품, 외국어대 외인부대, 홍대 블랙테트라 , 건국대 옥슨, 중대 블루 드래곤 등 대학생 스쿨밴드는 처음 결성부터 4명 ~ 5명이 합을 이뤄 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멤버 중에 누군가 군대를 가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밴드를 탈퇴하면 후임을 물색해서 그 자리에 들어온다. 그런데 단국대생 김정선은 어떻게 홍익대 그룹사운드 블랙 테트라 멤버가 될 수 있었던가?


블랙 테트라는 타 대학 그룹사운드와는 조직형태가 달랐다. 5인조 그룹사운드는 5명만 뽑고 4인조 그룹사운드는 4명의 정식 멤버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데 블랙 테트라는 그렇지 않았다.

 

홍익대학교 학도호국단 문예부 산하 보컬반으로 출발한 ‘음악 써클’ 블랙 테트라는 신입회원 모집 때, 노래를 잘하지 못해도, 기타를 전혀 못쳐도 회원으로 뽑았다.

 

그룹 사운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서클(동아리)형태였기 때문에 블랙 테트라의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를 연주하는 사람은 각 1명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명의 드러머, 기타리스트가 존재하는 블랙 테트라에 타 대학 기타리스트가 끼어 들어와도 기존 멤버들의 반발이 세지 못했다.

 

물론 거기에는 군대까지 갔다온 탁월한 노래실력을 갖춘 복학생 구창모의 카리스마가 작용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블랙 테트라 멤버가 된 김정선은 한마디로 동네 조기 축구 시합에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가 들어와 공을 찬 격이었다.

 

40여년 세월이 흘러 홍대 그룹사운드 블랙 테트라 공식 홈페이지를 보니 2기 멤버에 김정선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신라가 나당연합군으로 삼국을 통일한 기분일 듯 ~


‘구름과 나’는 밴드 음악이라기보다는 곡 진행이 물 흐르듯해서 합창에 어울리는데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사람은 고상록이라는 홍익대학교 1학년 학생이다.

 

 블랙테트라 2기 '구름과 나' 유튜브 영상

  

블랙 테트라 서클 신입회원 고상록이 대학 입학 전, 고등학교 시절에 만들어놓은 ‘구름과 나’를 비롯해 감탄할 만한 노래들이 있어서 블랙 테트라는 대학가 축제에서 외국팝송을 커버해서 부르지 않고 자신들의 창작곡을 주로 연주했다. 이처럼 관객들을 앞에 두고 현장에서 쌓아올린 자작곡 연주실력이 추후 독집 앨범을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대학가요에 허가된 노래가사의 공간은 고작 ‘대자연의 아름다움’ 정도였기 때문에 해변 가요제에서 불려진 노래들 ‘여름’ ‘구름과 나’ ‘바람과 구름’ ‘그 바닷가’ 등  제목만 봐도 그 당시 검열의 칼날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의 한계 속에서도 1학년 고상록이 작곡한 노래들(구름과 나, 창을 열어라, 젊은 태양 등)은 구창모의 블랙 테트라 2기 독집 앨범에 수록되면서 구창모를 기성가수 반열에 올려 놓는데, 사실 블랙 테트라 성공의 시발점은 고상록의 작곡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덕분에 졸업 후 블랙 테트라의 구창모, 김정선은 항공대 활주로 출신의 배철수와 의기투합하여 송골매라는 직업적 밴드까지 결성한다.


TBC 해변가요제는 제1회를 끝으로 행사명을 TBC 젊은이의 가요제로 변경하고 공연무대를 야외가 아닌 세종문화회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 이유는 MBC대학가요제 보다 앞서 8월에 하다보니 장마, 태풍 등으로 실황중계의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고 라디오 매체가 아닌 TV로 중계를 해야 광고단가가 높은 TV프로그램에 광고를 많이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블랙테트라 3기 독집앨범. [사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제1회 해변가요제의 맥을 이어서 ‘제2회 TBC 젊은이의 가요제’가 1979년에 열렸는데 구창모 의 기성가수 성공 일등공신인 고상록은 블랙 테트라 3기 보컬이 되어 자신의 자작곡 '심메마니'로 인기상과 작곡상을 받는다.

 

트윈 리드 기타가 끊이지 않고 쳐대는 현란함에 곡 전개를 탄탄히 받쳐주는 키보드 연주가 돋보인 '심메마니'는 그 당시 최고의 하드록 곡으로 인정받았다.

 

 블랙테트라 3기 '심메마니' 유튜브 영상.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블랙 테트라 3기 독집앨범이 제작됐는데 건전가요 한 곡을 제외한 레코드판 Side A, Side B면에 수록된 모든 곡은 고상록이 직접 만든 노래였다.

 

더욱 놀라운 건 블랙 테트라 학생밴드가 만든 노래 ‘젊은아 사랑아’, ‘하얀 눈빛으로’는 상업영화 ‘모모는 철부지’에 주제곡으로 삽입되기도 했으며 ‘이브의 딸’이라는 노래는 TBC 라디오드라마 여인극장 주제가로 선정됐다.

 

1976년 가수들 대마초 파동 이후 큰 스타가 없던 기성 가요계가 학생 밴드의 음악이 장사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 천재 작곡가 소리를 듣던 고상록은 대학 졸업 후 1987년에 ‘고상록 작품집’이라는 LP판을 발매하며 기성 가요계를 노크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다.

 

몸이 터져 죽는다는 열대어(테트라)처럼 고상록은 너무 일찍 꽃을 피웠던 것 같다.


1977년에 제1기 밴드가 만들어진 후, 2020년 현재까지 기수별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홍익대 그룹사운드 '블랙 테트라', 그들은 4인조·5인조라는 그들만의 밴드가 아니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학우들에게도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그리고 박정희 독재정권의 검열 속에서 제한된 노래가사 소재로 아마추어리즘을 뛰어넘고자 했던 '수준 높은 학생밴드'였다.

 

<글: 셀수스협동조합 김형진 KBS미디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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