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④ '이명훈 밴드'가 아닌 그룹사운드 '휘버스(Fevers)'

김형진PD / 기사승인 : 2020-08-25 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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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 네 번째 순서로, ‘이명훈 밴드’가 아닌 그룹사운드 휘버스(Fevers) 이야기다. 휘버스(Fevers) 멤버는 이명훈(보컬), 문장곤(베이스), 정원찬(키보드), 김흥수(기타), 송용섭(드럼) 이었다

그룹사운드가 알려지기 시작하면 ‘인기’라는 열매를 따먹는 사람은 ‘보컬(가수)’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룹사운드는 연주가 우선이지만 대중이 느끼는 건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간파한 김창완은 1977년 산울림 밴드를 결성하면서 자신이 기타와 노래까지 겸업했고(연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실력이 산울림 음악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015B 밴드는 아예 정식 보컬을 멤버로 두지않고 노래에 따라 ‘객원보컬’을 썼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보컬이 ‘그룹사운드 인기’를 다 빨아먹기 때문이다. 인기는 돈으로 직결되고 그러다가 보컬이 그룹사운드를 탈퇴하면서 통상적으로 하는 말 “돈보다는 음악적 견해차" 이다. 


1970년대 말 대학생 그룹사운드 음악이 한국 가요계를 강타하면서 아마추어 스쿨밴드에서 기성 가요계로 진출하는 보컬(가수)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가수가 이명훈이었다.

 

 

기타 초보자들이 쉽게 칠 수 있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이명훈이 불렀던 ‘그대로 그렇게’인데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에서 인기상 수상곡으로 그룹사운드 휘버스를 세상에 처음 알린 노래다.

 

▲ TBC 해변가요제 출전한 휘버스(Fevers) 멤버들.[출처= 셀수스협동조합]

 

Em, B7 기본 코드에 단순 멜로디 반복으로 진행되는 곡이지만 이명훈의 감성어린 앳된 목소리, 정교한 기타 애드립, 비장미 넘치는 키보드 연주, 파워풀한 드러밍, 그리고 묵직한 베이스가 어우러져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이 그룹 사운드의 별미는 베이시스트 문장곤 등이 뒤에서 깔아주는 가성의 백보컬이다.


휘버스(Fevers)의 전신(前身)은 'Second Lives'(제2의 인생들)로 보컬 이명훈, 키보드 정원찬, 베이스 문장곤 등이 배명고 시절에 결성한 고등학교 밴드다.

 

대학을 대표하는 스쿨밴드들은 자기 대학교 강당 등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연주해도 소음민원이 없지만 이 외에 아마추어 밴드들은 자기 멤버들 집(방음장치가 당연히 안됨)에서 겨울 솜이불로 창문을 틀어막고 연주하다가 이웃주민들의 신고에 의해 ‘고성방가 안면방해죄’로 파출소에 끌려가는 수난의 연속이다.

 

휘버스 멤버들도 고등학교 밴드시절 이 과정을 거쳤는데 어떻게 이들의 연주실력은 탁월할 수 있었을까?


그룹사운드는 각자 개인별로 연습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함께 한 장소에서 드럼 제대로 세게 치고 악기들 볼륨 키워서 합주를 해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하기 전까지 한국은 통행금지가 있어서 밤 12시가 되면 사람들은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었다.

 

이런 악법이 되려 그룹사운드 문화를 꽃피우게 만들었는데 영등포 지역, 지하 음악다방은 낮에는 DJ가 음반을 틀어주고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 12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4시까지는 나이트클럽으로 변신, 여기서 고등학생인 휘버스 멤버들이 노래하고 연주를 했다.

 

비록 술 손님이지만 대중과 바로 접촉하면서 그들의 연주실력은 부쩍 커나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키보드 연주자 정원찬은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여 레크리에이션 연구동아리(RRC)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이 동아리 행사에 밴드가 필요해서 정원찬이 고등학교 동창 이명훈과 문장곤을 불러 휘버스를 출범시킨다.

 

그룹명은 그 당시 유명했던 노래 '댓츠 로큰롤(That's Rock'n Roll)' 가사의 '아이브 갓 어 피버(I've got a Fever ~)' 에서 따온 것이다. 그룹 이름은 열기를 뜻했지만 초창기 이들 음악은 하드록 보다는 보컬 이명훈 음색에 맞춘 댄스 뮤직 팝송을 주로 연주하고 불렀다.


그러다가 1978년 여름, TBC 해변가요제 참가곡은 MBC 대학가요제와 달리 창작곡이 아니면 출전할 수 없다는 조건을 알고 대학 1학년생 정원찬은 부랴부랴 ‘그대로 그렇게’라는 노래를 만들어냈다.

 

이 노래는 편곡이 훌륭하다.

 

곡 전체의 프로듀싱은 베이시스트 문장곤이 맡았는데 키보드로 곡이 시작되면서 베이스음 심장박동처럼 깔리면서 드럼이 밀고 나오는 각각의 악기 파트 매력이 발산되는 다이나믹한 구성이다.

 

이는 모든 악기(목소리 포함)들이 하나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집중되는 형태로 멤버들이 자기 악기 파트만 고집하지 않고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거기에 고등학교 밴드시절 통행금지 덕분에 음악다방에서 불법(?)으로 쌓은 탄탄한 연주실력이 뒷받침 되었다.


‘그대로 그렇게’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해변가요제를 주최한 TBC의 라디오 프로그램 ‘노래하는 곳에’ 뿐만 아니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에서도 초대가수로 이들을 불렀다.

 

보컬 이명훈의 바이브레이션 가득한 여린 목소리가 음반(카셋트 테이프, LP판) 구매 주요고객 여고생들 감성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 휘버스(Fevers) 독집앨범.[출처= 셀수스협동조합]

 

이명훈이 휘버스 해산 후, 솔로로 ‘내 사랑 영아’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노래 이후 여학생들이 그의 가명(예명)을 ‘영아’로 지을 정도로 보컬 이명훈의 인기는 용광로 열기처럼 타올랐다.


어느 날, 그룹사운드 해산의 위기가 다가왔다. 라디오DJ가 그대로 그렇게를 ‘이명훈과 휘버스’의 노래로 소개하면서 멤버들 간에 갈등이 시작됐다.

 

정원찬, 문장곤 그리고 이명훈은 고등학교 밴드시절부터 자신들의 음악은 ‘한 사람을 위한 악기연주가 아닌, 다섯 개(보컬 목소리 포함)의 악기가 조합되어 하나의 사운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공감했는데 TBC 해변가요제 수상 이후, 상업적 매체(콘서트 포함)들이 돈으로 접근해 오면서 휘버스는 이명훈 한 사람의 목소리를 위해 반주하는 밴드로 전락했다.


1979년 5월, 작사·작곡과 키보드 파트를 담당했던 정원찬이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휘버스 탈퇴를 선언하고 멤버들은 자신들의 추억을 담을 독집앨범을 제작한다.

 

그 당시 그룹사운드들이 발표한 독집앨범 중에서 휘버스의 음반을 최고로 치는데 그 이유는 수록된 곡이 히트를 많이 한 것도 있지만 레코드판 음반녹음 수준이 최고였다.

 

음반 녹음은 보통 이틀 스케줄을 잡아서 했는데 하루는 밴드들 연주를 몰아서 하고 그 다음날은 녹음된 밴드 연주를 보컬이 들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믹싱(믹싱이랄 것도 없고 밸런스 맞추는 작업)하면 끝이다. 조잡한 음향시설에서 돈 많이 들이지 않고 대충 만들어도 그룹사운드 노래는 레코드판과 카세트 테이프가 수십만 장 팔리던 시절이었지만 휘버스 음반을 제작한 서라벌 레코드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베이시스트 문장곤의 말을 빌리자면 레코드사 사장님이 녹음하기 직전 멤버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면서 “너희는 음악인이지만 나는 장사꾼이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파는 장사꾼이지 음반을 파는 장사꾼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한강 녹음 스튜디오에 롤랜드 스트링 키보드(Roland String Keyboard)를 갖다놨다.

 

기존의 녹음실에 있던 키보드가 풍금소리 정도 낸다고 하면 이 악기는 현악기, 관악기 소리까지 내면서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이 악기가 최고로 빛을 발한 노래 '산'이 휘버스 독집앨범을 명반대열에 올려놓는다.

 


영국의 록그룹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줄라이 모닝(July Morning)‘을 연상케하는 웅장한 사운드로 거대한 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노래로 표현한 '산'은, 가성화음과 함께 곡이 느리게 시작되면서 점점 리듬이 속도감을 붙이며 산의 변화되는 모습을 퍼지톤의 기타와 기관총을 연상케하는 베이스 주법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주고받고, 롤랜드 스트링 키보드가 멜로디의 기승전결을 끌고가며 활화산이 터져나오듯 음악이 끝나는 대곡을 완성해낸다.


이전까지 휘버스가 보여준 댄스뮤직 풍의 노래가 아닌 프로그레시브 록을 방불케하는 ‘산’은 모두가 하나의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그룹사운드 정신이 담겨 있다.

 

해산 직전 만들어낸 '산'은 7분이 넘는 노래(보통 대다수 가요의 노래길이는 4분 내외)이기 때문에 라디오 프로그램 전파를 쉽게 타지 못해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팀의 주축 문장곤이 군입대를 하며 휘버스는 사라지고 보컬 이명훈은 기성가수 데뷔, 성공한다.

 

세월이 한참 지나, KBS위성 프로그램에서 정원찬과 문장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베이시스트 문장곤이 “친구 정원찬은 그룹사운드 활동이 추억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쉬움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세상에 발표한 최고의 노래 '산'을 듣고 있으면 문장곤이 말한 아쉬움이 안타까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휘버스가 제시한 ‘모두가 하나의 사운드를 탄생시키려 했다’는 그룹사운드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글: 셀수스협동조합 김형진 KBS미디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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