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조선사들의 샴페인에 가려진 국내 중형 조선소의 비애

임준혁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3 18: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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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LNG선 등 최근 수주
한진중공업·대선조선 매각 매물로 나와...수주잔량↓
성동조선해양 수주잔량 탑10 랭크...블록공장 전락

[메가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국내 중형 조선사들이 고사(枯死)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그룹,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조선 ‘빅 3’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에탄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수주하며 선방하고 있다. 이들 조선소들은 단일 조선소별 8월 말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위부터 5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조선강국의 토대를 마련한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은 최근 수주잔량 급감과, 신규 일감 확보에 대부분 실패해 매각이란 운명에 처했다.

 

▲ 대선조선 다대포조선소 전경 [사진= 연합뉴스]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은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대한민국 조선산업 1번지’라 불리며 소위 말해 조선 1위 대한민국의 산파 역할을 해 왔다.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뿐만 아니라 현재 영업과 조업이 이뤄지는 국내 조선사들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부산소재) ▲STX조선해양(창원진해) ▲성동조선해양(통영) ▲대한조선(해남) ▲대선조선(부산) 등 국내 중형 조선사 5곳의 직원 수가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 사이에 반토막 났다.

이들 중형 조선사 5사의 사업·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들의 직접 고용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총 4219명으로 조선업황이 최고점을 찍었던 2010년(8333명) 대비 49.4% 줄어들었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1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형 조선소들의 몰락은 2000년대 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조선업 호황이 시작된 이후 기존 선박 블록업체들이 앞다퉈 신조선으로 전환한 무분별한 투자가 중형조선사의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당시엔 쉽게 말해 ‘돈만 어느 정도 갖고 바닷가로 가서 조선업을 하면 성공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때마침 해운 호황으로 선주들의 선박 발주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신규 투자 증가 등으로 중형조선소들이 무분별하게 창업되거나 확장된 바 있다.

시황이 호황일 때 이들 중형조선소로 달러화 유입이 많았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서 크게 불거졌다. 당시 환헤지상품으로 소개해 판매됐다는 증언 등 불완전판매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조선업뿐 아니라 피해수출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금융기관(은행)의 책임을 소규모만 인정함으로써 대부분의 손실을 기업들이 떠안게 됐다.

조선 호황기 무분별한 업종 진출, 저가수주가 공멸 초래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 한진중공업]

 

특히 당시 조선호황으로 달러화의 유입이 많았고 환헤지나 파생상품에 대한 지식이 약했던 중형조선소들은 판매 금융기관의 표적이 돼 큰 피해를 입었다. 키코(KIKO)라 불리는 이 외환파생상품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형조선사들은 영업을 지속하는 조선소의 숫자가 급감하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위축됐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 리포트에 따르면 2008년 호황의 정점에서 국내 26개 중형조선소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KIKO 손실과 구조조정이 이뤄진 2009년 9개로 급격히 축소됐고, 2010년에는 4개사만 남게 됐다. 10년 후인 2020년 10월 현재 국내에 조업중인 중형 조선소는 대한조선, STX조선해양, 대선조선, 한진중공업 등 4개 사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한진중공업은 클락슨 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세계 조선소 수주잔량이 3척, 6만1천CGT(표준화물환산톤수)로 131위에 머물러 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영도 조선소는 해군, 해경 함정 등 특수선만을 건조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에서 발주한 이들 특수선의 수주잔량은 약 2년 반 정도의 일감을 확보했다”며 “클락슨 리서치는 상선의 수·발주만 집계하기 때문에 전술한, 3척은 어디 물량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상선 수주를 위한 영업이 전무하고 건조중인 선박(상선)도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같은 기간 대한조선은 18척, 49만3천CGT의 수주잔량을 기록해 37위에 랭크됐다. 한때 수주잔량 기준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리며 ‘조선 빅4’라 자칭했던 STX조선해양은 10척, 19만5천CGT의 수주잔량으로 69위로 내려앉았다. 전성기 시절 1000TEU급 컨테이너운반선(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수주 및 건조의 절대강자로 연근해 운항선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던 부산의 대선조선은 현재 11척, 17만3천CGT의 수주잔량으로 76위에 머무른 상태다.

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은 중형 조선소 중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선박의 육상건조기술에 특화돼 있으며 영국 클락슨 자료 기준 수주잔량 세계 탑10에 꾸준히 랭크돼 왔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인해, 2018년 기준 수주잔량이 0이 됐다. 동년 3월 기준으로 법정관리 업체가 되고 말았다.

 

▲ 통영 성동조선해양 야드 전경 [사진= 성동조선해양]


채권단 자율협약을 개시한 지는 10여년 만에 2018년 4월 회생절차에 들어간지 2년 2개월만에 이를 졸업했지만 성동조선해양은 향후 HSG 컨소시엄 체제 아래에서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게 됐다.

성동조선해양을 인수한 HSG 컨소시엄 측은 기존 무급휴직 직원 등 근로자 전원에 대한 고용승계 방침을 밝혔고, 당분간 야드를 선박블록 제작장 등으로 활용하는 등 성동조선해양의 조기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를 구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선박 블록 제작업체로 전락한 성동조선해양이나 매각을 앞두고 있는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등 중형 조선소를 놓고 정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 정부, 채권은행에 기업의 구조조정 일임, 대부분 매각


위기에 빠진 중형조선산업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해당 조선사 채권은행에 기업의 조정을 맡김으로써 결국 산업의 재건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중형조선사를 구조조정 단행 혹은 매각해 버림으로써 대부분의 중형조선소들이 청산되거나 업종전환 등으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박을 위주로 발주가 이뤄지면서 국내 중형 조선사들에 불리한 시장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중형조선 산업의 몰락을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 업체가 저가 수주를 이어오면서 일감을 빼앗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국내 중형조선사들이 주로 건조하는 선종은 PC선이라 불리는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이다. 5만톤에서 최대 20만톤 사이의 선박을 중형 PC선이라 지칭하는데 전세계적으로 발주가 감소한 선종 중 하나다.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사진= 한진중공업]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전세계 중형 선박 발주량은 전년 대비 15.6% 감소한 1천만CGT를 기록했다”며 “발주량 감소 속에 중국과 일본 등 저가수주가 이어지며 선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3사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위주로 수주를 재개해 이들 중형 조선소가 굳이 필요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형 조선소야말로 국내 주력산업 중 하나인 조선산업 전체의 산업 생태계 유지 차원에서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연관 기자재·설계전문 산업 생태계 공멸 우려


익명을 요구한 조선산업 연구 전문가는 “중형조선산업이 국내 조선산업의 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대형 컨테이너운반선, LNG운반선 등 대형 고부가가치 선종만으로는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없으며 국내 중형조선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일정 수준을 점하며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국가 주도로 자국 중형선박 건조 조선소의 기술개발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일본은 동형선박을 건조하는 중형조선소 40여개 사가 경쟁자들 간의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과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꿈도 꾸지 못할 현상이다. 경쟁사와 수주 경쟁을 하면서 선가를 깎는 근시안적인 대처로 현재의 고사상태에 이르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주도나 일본의 경쟁자간 협력모델을 한국 중형조선사에는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한국만의 효율적 기술 및 경영지원이 이뤄지는 체제를 찾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

R&D나 설계, 영업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조선 기자재나 원자재 공동구매 등 우리나라 중형 조선소도 공동의 노력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세계적으로 조선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대응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스마트십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러한 환경 변화에 국내 중형조선사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만큼 산업 통합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현재 영업중인 3개 중형조선사가 조합을 구성한다던가 공동법인 형식으로 뭉쳐서 생존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개발과 선형 개발, 영업, 구매, 설계를 공동으로 해 중형 조선사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며 “중형 조선사를 포기하면 연관 산업인 기자재 산업이 발전할 수 없고 중형 조선소에 선박 설계를 전문으로 해 제공하는 업체 등 조선산업 전체를 떠받치는 산업생태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중형 조선을 살려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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