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 86세 별세...바이든 대통령·배리 본즈·왕정치 등 "진정한 영웅" 추모 물결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1-01-24 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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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살해협박 견뎌내고 715홈런 베이브 루스 기록 깨
야구만이 아니라 흑인 인권운동에도 기여한 미국의 영웅
2007년 다시 경신한 본즈, 금지약물 복용으로 신뢰 잃어
무하마드 알리 "나보다 더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통산 최다타점 기록도
조지아 주지사 "위대한 전설...장례식날 해질 때까지 조기 게양" 명령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22일(현지시간) 향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홈런왕 헨리 행크 에런에 대한 추모 물결이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일고 있다.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한 ‘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의 별세 소식은 이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 매체들이 고인의 딸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애틀란타 구단은 그가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는 야구 이상의 인물이었다.” 애틀랜타 AJC의 이 기사 제목처럼 행크 에런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타자 가운데 한 명을 넘어 흑인의 영웅이요 미국 시민권의 진보에 기여한 인물이다. 야구만 잘한 게 아니라 성실함과 인품의 본보기였다. 

  

▲ 2004년 7월 12일 휴스턴에서 올스타 홈런더비 직전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슬러거 배리 본즈와 인사하는 행크 에런(오른쪽). [AP= 연합뉴스]

 

미국의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생전에 "나 자신보다 더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를 꼽은 건 그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일화로 꼽힌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자, 미국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ESPN에 따르면, 에런의 사망 후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지사는 성명을 통해 “행크 에런은 미국의 우상이자 조지아의 가장 위대한 전설 중 하나였다”며 “그의 삶과 경력은 역사를 만들었고, 그의 영향력은 스포츠의 세계뿐만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작업을 통해 훨씬 저편(far beyond)에까지 느껴졌다”고 생전의 업적을 기렸다.


▲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행크 에런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출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 트위터 캡처]

그러면서 켐프 주지사는 “기록적인 경력과 조지아주와 국가에 엄청난 영향(groundbreaking career and tremendous impact on our state and nation)”을 미친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행크 에런의 장례식 날 해질 때까지 조지아 주의 모든 건물에 조기를 게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부분의 커리어를 바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도 에런이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애틀랜타 브레이스 구단 테리 맥과이어크 회장도 성명을 통해 “처음에는 선수로서, 그 다음에는 선수 개발로, 그리고 항상 우리 커뮤니티 노력으로 우리 조직의 등불(beacon)이었다"며 ”그의 놀라운 재능과 결의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도록 했지만, 그는 결코 겸손한 본성(humble nature)을 잃지 않았다"고 상기했다.

그러면서 “헨리 루이스 에론은 우리의 우상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와 전 세계의 우상이었다”며 “다이아몬드(그라운드)에서의 성공은 필드를 떠나 사업적인 성취와 조화를 이뤘고 그의 비범한 자선적인 노력들로 끝을 맺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 애틀랜타 브레이스의 한 팬과 딸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의 과거 터너 필드 주차 지역에 위치한 행크 에런 715호 홈런 기념벽 앞에 꽃을 바치며 고인을 기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에런은 모든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오른 대단한 선수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그의 인성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며 "에런은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였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야구 역사에서 늘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에런은 누군가가 자신의 기록을 가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 않았다. 배리 본즈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홈런기록을 경신했다는 주장에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통산 762홈런을 치며 에런의 개인 통산 홈런 기록(755개)을 넘어선 배리 본즈(47)는 트위터를 통해 “가장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며 그를 기렸다.
 

▲ 배리 본즈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행크 에런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그와의 추억을 기렸다. [출처= 배리 본즈 트위터 캡처]

본즈는 "나는 몇 차례 에런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영광을 누렸다"며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에런은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썼다.

이어 "에런,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 당신은 선구자였고, 선례를 남겼다. 아프리카계 미국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며 "우리 모두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야구인들은 물론이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SNS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 조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의 영웅"이라며 행크 애런을 추모했다. [출처= 바이든 대통령 공식 정부 트위터 캡처]
바이든 대통령은 23일(한국시간) 트위터 프레지던트 바이든(President Biden) 계정에 "에런이 베이스를 돌 때, 기록만 좇지 않았다.

에런은 편견의 벽(the ice of bigotry)을 깨는 게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에런은 미국의 영웅이었다"라고 추모글을 올렸다.

현역 시절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살해협박에도 그라운드를 지키고, 홈런 기록을 세웠던 에런은 은퇴 뒤에도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도 같은 시대에 태어나 '메이저리그 홈런왕'으로 활약한 행크 에런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 사다하루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회장은 에런이 세상과 작별한 23일 구단을 통해 성명을 냈다.

오 회장은 "에런은 홈런, 타점 등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수였다. 굉장한 신사이기도 해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거울이 됐다"며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에런이 1934년에 태어났고, 오 회장은 1940년생이다. 일본은 오 회장의 홈런 기록(868개)을 '세계 기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찬사처럼 행크 에런은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SNS에서 행크 에런의 업적을 기리고 715호 홈런 당시의 동영상을 게시했다. [출처= 애틀랜타 구단 트위터 캡처]

에런은 195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76년까지 선수로 뛰었다. 3298경기에 출전해 1만2364타수 3771안타(타율 0.305), 755홈런, 2297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755개 홈런을 날린 에런은 2007년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역대 최다 홈런왕이었다. 그러나 본즈가 금지약물 스캔들에 휘말린 뒤에는 많은 팬들이 ‘진짜 홈런왕’으로 여전히 그를 꼽고 있다.

1934년 앨라배마주 모빌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8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에런은 야구 장비를 사지 못해 막대기와 병마개로 혼자 타격 연습을 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니그로리그의 마이너리그 구단을 거쳐 1952년 당시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그는 소속팀이 밀워키로 옮긴 직후인 1954년 스무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듬해 처음 올스타에 선정된 에런은 1956년 내셔널리그(NL) 타격왕, 1957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각각 거머쥐었다. 1957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 체어맨인 테리 맥과이어크는 성명을 내고 행크 애런의 업적을 기렸다. [출처= 애틀랜타 구단 공식 트위터 캡처]

1966년 브레이브스가 다시 애틀랜타로 홈구장을 이전한 것을 계기로 흑인 인권운동에도 눈을 뜨게 됐다. 당시 애틀랜타는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활동하던 인권운동의 핵심지였다.가난을 딛고 빅리거로 성장한 에런은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하고, 8시즌 40홈런 이상을 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가 백인들의 우상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근접하면서 극심한 인종차별 모욕과 살해협박에 시달렸다.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 수립에 1개를 남겨둔 1974년 정규시즌을 시작하려던 그에게는 "은퇴하거나 아니면 죽어버려" 등의 협박 편지가 쇄도했다. 연방우체국에 따르면 당시 에런은 100만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MLB닷컴은 "당시에 '더그아웃에서 에런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라는 농담이 들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6피트 180파운드(182.9㎝ 81.6㎏)의 체격이었던 에런은 1974년 4월 8일 마침내 역사적인 홈런 기록을 썼다. 


에런의 대기록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 있었던 애틀란타 풀턴카운티 스타디움에서 역대 최다 관중인 5만3775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왔다.

 

4회 2사1루 볼카운트 1-0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좌완 알 다우닝을 상대로 2구째 가운데 낮은 슬라이더를 강타해 좌중간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역사적인 715번째 홈런이었다. 신성시되던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깨는 순간이었다. 


홈런타구는 좌측 펜스와 관중스탠드 사이에 있었던 애틀랜타 불펜으로 날아가 릴리프 투수인 톰 하우스가 직접 글러브로 포구했고, 이후 하우스는 내야로 향해 에런에게 홈런볼을 건넸다. 


당시 경기를 일시중단하고 열린 세리머니에서 행크 에런은 “모두 끝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Thank God it's over)라고 말했다.

야구의 상징적인 순간들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순간, 백인 남성들이 그라운드에 난입, 집에서 TV 중계를 보던 가족이 공포에 질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에런은 두 명의 팬들에 의해 3루에서 홈플레이트로 향하다 잠시 방해를 받았으나 별일 없이 홈 플레이트를 터치했다. 다행히 이들은 에런의 기록을 축하하려는 팬들이었다.

에런은 이후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된 후 두 시즌을 더 뛴 뒤 통산 755개의 홈런을 남기고 23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이 755개의 홈런수는 2007년 배리 본즈에 의해 깨질 때까지 메이저리그의 개인 통산 최다 기록이었다.

에런은 메이저리그 역대 홈런 2위 기록 이외에도 통산 최다 타점과 장타 기록에서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1954년부터 1976년까지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작은 시장인 밀워키-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뛰었음에도, 에런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타점(2297개), 총루타수(6856개), 2루타 이상 장타(1477개)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에런은 또 메이리그 통산 최다안타 3위(3771개)를 기록했고, 최다출장 3위(3298게임), 최다득점 4위(2174)에도 올라 있다. 에런은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선수생활을 마쳤다.

그는 애틀랜타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던 해인 1957년 내셔널리그 MVP로 선정됐고, 내셔널리그 최다안타(1956, 1959년), 우익수 부문 골드글러브 3회(1958~60년), 올스타 선정 25회 등 자신의 첫 시즌과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영광을 안았다.

은퇴 후 198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에런은 2002년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다.

MLB닷컴은 "에런은 1982년 97.8%의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당시까지 에런보다 높은 득표율로 헌액된 선수는 98.2%의 지지를 받은 타이 코브뿐이었다"라고 전했다.

에런은 올해 1월 5일에는 흑인 사회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앤드루 영 전 유엔 대사 등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공개적으로 맞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이런 일을 하는 저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이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야구 영웅' 행크 에런은 생전 두 차례 한국을 찾았고 한국야구에도 귀한 조언을 했다.

198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부사장이던 에런은 8월 삼성 라이온즈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그해 10월에는 애틀랜타 산하 마이너리그팀을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아, 삼성, OB 베어스 등과 7차례 친선 경기를 했다.

당시 에런은 삼성 선수단에 타격 지도를 하고, 한국 야구 관계자들에게 리그 운영 등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했다.

에런은 1982년 8월 27일 기자회견 당시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7백55개의 홈런을 날릴 수 있었던 건, 특별한 재능보다 운 좋게 23년간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내 신체 중 손목과 팔은 남보다 강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훈련 외에는 홈런왕이 된 특별한 비결이 없다"며 ‘홈런 비결은 훈련뿐’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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