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세게 때렸지만 정조준은 '글쎄'"…과징금 2.5조 속 적법성 논란

주영래 기자 / 기사승인 : 2026-10-16 08:35:02
현장조사 2.5배 급증·집행정지 인용률 79.5%…한화·쿠팡 법적 대응
5년여간 환급 1917억·징수유예 4530억…제재 실효성 도마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조사와 과징금 부과를 크게 늘리는 사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조사 절차의 적법성을 둘러싼 분쟁이 번지고 거액의 과징금이 환급·유예되는 사례가 늘면서 '제재의 양'만 앞세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진다.


올해 1~8월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약 2조5000억원이다. 반면 최근 5년여간 행정소송 결과 등으로 돌려준 과징금은 1900억원을 넘었다. 강한 제재가 곧 정확한 제재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집행정지 인용이 곧 처분의 위법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개별 처분의 타당성은 본안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16일 정치권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위 국정감사에서는 기업의 현장조사 거부 문제와 함께 공정위의 조사권 행사 범위, 과징금의 실효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권 행사 범위와 절차적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사진=AI]


공정위 처분에 불복하는 기업의 법적 대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기업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 39건 중 31건이 일부 인용을 포함해 받아들여졌다. 인용률은 79.5%로 2024년(64.5%)보다 15%포인트 높아졌다. 공정위 처분 10건 중 8건 가까이가 본안 판단 전에 효력이 멈춘 셈이다.

집행정지가 위법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이 잠정적으로라도 공정위 처분의 효력을 막아선 사례가 이처럼 많다는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그룹이다. 서울고법은 지난 9월 9일 한화와 소속 직원이 낸 자료제출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명령의 효력을 2027년 1월 31일까지 멈췄다.

발단은 계열사 간 브랜드 사용료를 둘러싼 부당 내부거래 의혹 조사였다. 한화 측은 조사관이 직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적법한 동의 없이 열람하고 기기를 별도로 보관하는 등 강압적으로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조사 대상자와 변호인의 사전 동의를 받았고 강압적 행위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법원이 조사 자체의 위법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의 범위와 전자정보 확보 방식이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정위 현장조사의 절차적 정당성이 도마에 올랐다.

쿠팡도 공정위 조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쿠팡은 지난 8월 현장조사 과정에서 행정조사기본법상 사전통지 의무 등을 문제 삼았다. 공정위는 관련 법령상 사전통지 없이도 조사가 가능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쿠팡의 조사 거부를 비판하며 공정위에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기업의 방어권이 정당한 조사를 막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조사 근거와 절차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 같은 분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공정위가 되새길 대목이다.

조사와 제재 규모의 가파른 확대는 논란을 키우는 요인이다. 공정위의 외부인 접촉 보고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업 현장조사는 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건)의 약 2.5배다. 조사 범위가 불명확하거나 필요 이상의 자료를 요구하면 기업의 자료 제출과 법률 대응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과징금은 더 가파르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부과된 과징금은 1조3615억원으로, 2022~2025년 4년간 합계(1조277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전체 기업으로 넓히면 같은 기간 부과액은 약 2조5000억원이다.

과징금은 대형 담합 사건의 처리 시점 등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어 액수만으로 무리한 제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기간에 조사와 과징금이 동시에 늘어난 만큼 제재 근거와 산정 기준이 충분히 검증됐는지, 기업에 과도한 불확실성을 안기지는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징수유예 4530억·환급 1917억…’뒷수습' 도마

과징금이 거액일수록 법정 공방이 길어지고, 실제 징수는 늦어지거나 이미 걷은 돈을 돌려주는 일도 적지 않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법원 결정 등으로 징수가 유예된 과징금은 4530억7800만원이다. 2021년(83억7000만원)의 약 54배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서는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행정소송 결과 등에 따라 확정 환급된 과징금이 1916억7900만원으로 나타났다.

환급에는 처분 취소뿐 아니라 감액 등이 포함될 수 있고, 집행정지가 곧 공정위 패소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매기고도 실제 징수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제재의 실효성과 행정력 낭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부과액이라는 '실적'을 앞세우기보다 제재가 법원에서 얼마나 유지되는지, 소송에서 어떤 법리적 문제가 반복되는지 분석해 처분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조사권이 강력한 만큼 권한 행사 과정에서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조사 대상자의 동의 범위나 전자정보 확보 방식 등 기본적인 절차에서 적법성 논란이 불거진다면 조사 결과의 신뢰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징금 2조5000억원은 제재 규모를 보여주는 수치일 뿐, 공정거래 질서 개선이나 처분의 적정성을 입증하는 성적표는 아니다”며 “조사 건수와 과징금 규모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 다툼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확한 처분과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일관된 집행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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