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내 보조배터리 규제, 이제는 국제기준의 시대

문기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4-15 11:47:23
“항공 안전은 규정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아”
“편의·위험 공존하는 물품, 관리 기준 분명하고 정밀해야”

[메가경제=문기환 기자] 항공안전은 사고 이후의 대응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사전에 마련된 기준의 설계와 적용을 통해 확보된다. 특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품이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때에는 그 기준이 더욱 명확하고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 

 

▲ 김영천 서강전문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보조배터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내 반입이 불가피한 물품이다. 동시에 항공기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편의와 위험이 공존하는 물품일수록 관리 기준은 한층 더 분명하고 정밀해야 한다.

 

그동안 보조배터리 반입 기준은 국가별·항공사별로 다르게 운영돼왔다. 같은 물품을 가지고도 출발지와 경유지, 도착지에 따라 허용 여부가 달라졌다. 이는 국제선 승객, 특히 환승 승객에게 혼선을 초래하고, 안전관리의 일관성까지 저해했다. 기준이 다르면 현장의 판단은 늦어지고, 그 지연은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2025년 1월 발생한 에어부산 화재 사고를 계기로 더욱 분명해졌다. 보조배터리는 더 이상 잠재적 위험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인임이 확인됐다. 

 

이후 반입 개수 제한, 기내 충전 금지, 선반 보관 금지 등 다양한 안전조치가 국내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국가별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항공 운송이 국경을 넘는 활동인 만큼 안전도 공통 기준 아래에서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결국 해법은 국제기준의 마련이었다. 국토교통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논의 과정에 참여해 기준 마련을 이끌었다. 그 결과 2026년 3월 ICAO 항공위험물운송기술지침(Doc 9284)에 보조배터리 관련 규정이 신설됐다. 개별 국가의 조치를 넘어 국제적으로 함께 적용되는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새 기준의 방향은 분명하다. 위험을 사전에 줄이는 데 있다. 보조배터리 반입은 1인당 최대 2개로 제한되고, 기내에서의 충전과 사용은 전면 금지된다. 

 

특히 ‘사용 금지’에는 보조배터리 자체 충전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전자기기 충전까지 포함된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행위가 이제는 명확히 금지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규제를 강화했다기보다 위험을 미리 줄이기 위한 조치다.

 

기준이 하나로 정리되면 승객은 더 쉽게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다. 공항과 항공사도 같은 기준 아래에서 일관되게 움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이 명확할수록 판단은 빨라지고, 대응은 단순해진다. 항공 안전에서 속도는 곧 안전과 바로 이어진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마련된 기준을 현장에서 흔들림 없이 적용하는 일이다. 안내, 보안검색, 항공사 운영 전반이 같은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기준은 만들어졌다고 해서 바로 자리 잡지 않는다. 반복된 적용과 일관된 실행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리 잡는다.

 

항공 안전은 규정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같은 기준이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다. 보조배터리 규제의 국제기준 마련은 그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는 그 기준을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해야 할 단계다.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적용이며, 기준은 현장에서 지켜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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