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쏟아지는 정책과 증발하는 검증, '미디어 선거'의 역설

박성태 기자 / 기사승인 : 2026-04-20 17:32:52
▲박성태 부국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둔 시도지사 예비후보들의 한 주는 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지역구 골목에서 끝난다. 특히 평일 이들이 TV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쏟아내는 발언의 상당 부분은 지역의 미래를 바꿀 정책과 비전에 할애되어 있다. "정책이 없다"는 세간의 비판과 달리, 카메라 앞의 후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수치와 청사진을 제시하며 유권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 화려한 '정책의 성찬' 이면에는 미디어 선거가 가진 구조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후보들이 미디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광역자치단체라는 방대한 권역을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TV와 유튜브는 가장 강력한 투사체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메가시티 구상,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청년 주거 복지 등 굵직한 비전을 발표하며 정책 준비가 된 '행정 전문가'임을 강조한다. 특히 유튜브는 시간 제약이 적어 복잡한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기에 최적의 장소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공중전'의 열기가 정책의 질적 검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보들은 정책을 말하지만, 미디어의 생리는 '논란'과 '대립'을 먹고 산다. 1시간의 인터뷰 중 50분 동안 심도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더라도, 포털 기사나 유튜브 숏폼(Short-form)으로 박제되는 것은 상대 후보를 향한 1분의 날카로운 공격뿐이다. 후보가 제시한 방대한 예산 데이터와 법적 근거는 편집 과정에서 거세되고, 자극적인 수사(修辭)만 남게 되는 구조다. 결국 후보는 정책을 '말'했으나, 유권자에게는 정쟁만 '전달'되는 괴리가 발생한다.
 

이러한 괴리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기존 법적 가이드라인 사이의 시차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2조(좌담회·토론회의 개최) 등에 따라 엄격한 형평성을 요구 받는 지상파 방송 토론과 달리, SNS와 유튜브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제59조(선거운동기간)와 제82조의4(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를 근거로 상대적으로 폭넓은 자율성을 누린다. 

 

법이 지향하는 '표현의 자유'가 뉴미디어의 확산력과 결합하면서, 후보들은 법적 실현 가능성이나 구체적인 예산 검토라는 무거운 과제보다 지지층의 확증 편향을 자극하는 선명한 메시지에 집중하게 된다. 제도권 미디어가 선거법의 신중한 틀 안에서 균형을 고심하는 사이, 검증의 사각지대에서는 정책의 본질이 휘발되고 그 자리를 자극적인 선전 문구들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주말의 지역구 현장 방문이 이 간극을 메워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방송에서 거대 담론인 '비전'을 논하던 후보들이 주말 시장통에서는 재래시장 현대화나 민원 해결 같은 '생활 밀착형 공약'에 집중한다. 공중전(미디어)의 비전과 지상전(현장)의 민심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따로 노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유튜브 속의 화려한 청사진과 내 집 앞의 구체적인 삶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후보들의 '정책 발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책이 실현 가능한지 따져 묻는 '입체적 검증'이다. 미디어가 흥행을 위해 정쟁을 부각하고 후보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편향적인 채널만 찾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비전이라도 그것은 선거용 소모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올해 지방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 있다. 하지만 그 풍요 속에서 정책의 본질이 휘발되지 않도록, 후보들은 스튜디오의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증명해야 한다. 유권자 역시 후보가 내뱉는 비전의 화려함에 취하기보다, 그 정책이 주말에 만난 골목의 목소리를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 매섭게 감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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