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써준 합의서도 되돌릴 수 있다, 강압에 의한 처벌불원 합의는 효력 없어

정진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06-26 15:21:30

[메가경제=정진성 기자] 선고유예 예상되던 사건을 처벌로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강요된 강제추행 합의의 효력이 부정됐다. 피해자가 일단 합의서에 서명했더라도, 그 합의가 강압과 회유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효력을 다툴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사례다.

 

피해자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로앤이는 합의가 강압에 의한 것으로 효력이 없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가해자를 기소했다. 이어 법원은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가해자는 벌금과 함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기관에 대한 3년간 취업제한 처분을 받았다. 처벌불원 합의서가 그대로 인정됐다면 선고유예 등 가벼운 처분이 예상되던 사건이었다.

 

▲ 사진제공 : 법률사무소 로앤이

사건은 같은 직장에 다니던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졌다. 가해자는 직장 안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고, 회식 자리에서 피해자를 강제추행했다. 문제는 범행 이후였다. 가해자는 회사 윗선과의 친분을 거듭 과시하며 직장 내 불이익을 암시했고, 제3자를 동원해 피해자를 압박했다. 피해자는 더 큰 피해가 두려워, 충분히 회복되지도 못한 채 떠밀리듯 처벌불원 합의서에 서명했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합의서는 양형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초범인 경우 선고유예 등 가벼운 처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 합의서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 믿었다.

 

법률사무소 로앤이는 합의서의 존재가 아니라 합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정면으로 다퉜다. 로앤이가 제출한 의견서의 핵심 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 강압과 회유에 의한 합의라는 점이다. 가해자가 회사 윗선과의 친인척 관계를 내세우며 직장 내 불이익을 암시한 정황을 녹취와 메시지로 재구성해,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기 어려운 궁박한 상태에 있었음을 입증했다.

 

둘째, 진정한 처벌불원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점이다.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게 표현되어야 효력이 인정된다. 피해자가 합의 직후부터 일관되게 처벌 의사를 밝혀온 정황을 정리해 제시했다.

 

셋째, 합의의 전제가 무너진 착오다. 합의 당시는 범행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합의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 결정적 증거가 확보됐다. 합의의 기초가 됐던 증거 부재라는 전제 자체가 사실과 달랐던 만큼, 화해계약의 기초 사실에 중대한 착오가 있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로앤이는 받은 합의금 전액을 가해자에게 반환하고, 가해자가 수령을 거부하자 이를 법원에 공탁해 합의를 부인하는 피해자의 의사를 행동으로 명확히 남겼다.

 

법률사무소 로앤이 이유림 변호사는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합의가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강압과 회유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로 볼 수 없고 효력을 다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심은 그 사정을 법리와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가에 있다. 강압의 정황, 일관된 처벌 의사, 합의 전제의 착오를 구체적으로 짚고, 합의금 반환과 공탁으로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 결과를 갈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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