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도 이상 치매 땐 관리인이 요양비 청구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치매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뒤 본인의 금융자산을 제때 의료·요양비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른바 ‘치매머니’ 문제가 커지면서 금융권이 관련 자산관리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한화생명은 고객이 건강할 때 자금 사용 방법을 미리 정해두고 치매가 발생하면 신탁관리인을 통해 요양비 등을 지급할 수 있는 신탁 상품을 내놨다.
한화생명은 치매 발병 시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요양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치매안심 MMT(수시입출금신탁)’를 출시했다고 18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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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한화생명 제공] |
이 상품은 기존 수시입출금신탁(MMT·Money Market Trust)에 중등도 이상 치매에 대비하는 특약을 결합한 형태다. MMT는 수시입출금이 가능하고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으로 운용하는 신탁 상품이다.
평소에는 일반 MMT처럼 자금을 운용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후 고객에게 중등도 이상에 해당하는 임상치매척도(CDR·Clinical Dementia Rating) 2점 이상의 인지장애가 발생하면 특약이 개시된다. CDR 2점 이상은 혼자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등도 이상의 치매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치매보험이 진단이나 치료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번 상품은 고객이 이미 보유한 재산을 치매 이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지에 방점을 찍었다.
가입 단계에서 고객이 신탁관리인과 자금 지급 방식을 미리 설정해 두면 향후 치매 진단을 받은 뒤 신탁관리인이 MMT 잔액 범위에서 요양 비용을 대신 청구할 수 있다. 인지능력이 충분할 때 본인이 향후 자산 사용 방식을 정해두는 구조다.
지급 방식은 세 가지다. 필요한 자금을 한꺼번에 받는 ‘일시지급’, 정해진 기간 매월 지급받는 ‘정기지급’,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실제 발생한 비용을 청구하는 ‘특별지급’으로 나뉜다. 각 방식에 사용할 MMT 잔액의 비율도 사전에 설정한다.
예컨대 치매 발생 이후 매월 생활·간병비를 정기적으로 받도록 하면서 별도로 발생한 병원·요양원 비용은 실제 지출액에 맞춰 지급하도록 자금 사용 구조를 미리 설계할 수 있다.
한화생명이 치매 이후의 자산관리에 초점을 맞춘 배경에는 빠른 고령화와 함께 불어나고 있는 치매머니가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대 건강금융센터가 고령 치매환자의 자산을 전수조사한 결과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약 124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약 76만 명으로 추산됐으며 이들의 소득과 재산을 합친 자산은 154조 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약 2억 원이다.
치매머니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이다. 전체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약 114조 원으로 74.1%를 차지했고 금융자산은 약 33조 4000억 원으로 21.7%였다.
문제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본인의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면 보유 재산이 있어도 이를 적절하게 관리하거나 의료·요양비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 대신 자산을 처분하거나 금융거래를 하는 데도 제약이 따를 수 있어 고령층이 인지능력을 잃기 전에 자산관리 방식을 정해놓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치매환자와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65세 이상 치매환자가 2023년 124만 명에서 2030년 약 179만 명, 2040년 285만 명, 2050년 397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기간 치매머니는 154조 원에서 222조 원, 351조 원을 거쳐 2050년 488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치매머니 관리 문제는 금융권을 넘어 정부의 고령사회 정책 과제로도 부상하고 있다. 치매 발생 전에 자산관리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민간 신탁과 후견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활용도는 아직 낮다는 평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치매 발생 전에 믿을 수 있는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제도는 복잡한 공증·등기 절차와 낮은 인지도 등으로 최근 10년간 이용 실적이 229건에 그쳤다. 유언대용신탁 역시 5대 시중은행을 합친 잔액이 약 3조 5000억 원 수준이다.
정부도 제도 보완에 나서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치매 발병 전 재산관리 교육을 강화하고 민간신탁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치매 발생 이후에는 성년후견제도와 신탁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치매머니를 금융정책의 주요 과제로 올렸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치매머니 관리를 위한 신탁과 치매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의 치매 관련 경쟁도 단순한 진단비·간병비 보장에서 고령자의 자산관리까지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령 고객이 판단 능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자신의 재산을 누구에게 맡기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하도록 돕는 신탁이 보험사의 요양·간병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어서다.
이종호 한화생명 마케팅실장은 “치매안심 MMT는 치매 발병 이후의 자산 관리까지 책임지겠다는 당사 치매 케어 서비스의 연장선”이라며 “질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 보장을 넘어 실질적인 금융 안전망까지 제공하는 종합적인 솔루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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