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기업 756곳으로 확대…향후 주총서 배당·자사주·이사 선임 판단도 시험대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국내외 증시 상승과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확대에 힘입어 자산운용업계의 상반기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9000억 원을 웃도는 순이익을 낸 가운데 대형사와 일부 사모운용사도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운용업계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면서 투자기업의 배당과 자기주식, 이사 선임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기관투자자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가 756곳까지 늘어난 만큼 운용사를 평가하는 잣대도 이제 ‘얼마나 벌었느냐’에만 머물 수 없다. 실적과 운용 규모가 커진 자산운용사들이 고객의 돈으로 확보한 영향력을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행사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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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내용에 맞게 AI 이미지 제작 |
◊ 증시 훈풍에 운용사 실적 ‘껑충’…수익구조는 제각각
3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 906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267억 원보다 177.4% 증가한 규모다.
연결 기준 순이익도 9547억 원에 달했다. 법인세비용 차감 전 별도 이익은 1조 75억 원으로 반기 기준 1조 원을 넘어섰다.
다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실적을 국내 증시 활황의 결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2386억 원이었지만 지분법손익은 7685억 원으로 영업이익의 3배를 웃돌았다. 펀드 수탁고 증가에 따른 운용보수 확대와 함께 미국·홍콩 등 해외법인의 성장세가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운용자산(AUM) 규모와 순이익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았다. 삼성자산운용의 상반기 순이익은 1294억 원으로 전년 동기 516억 원보다 150.8% 증가했다. KB자산운용은 783억 원, NH아문디자산운용은 694억 원, 신한자산운용은 474억 원, 한국투자신탁운용은 437억 원, 한화자산운용은 271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증가율을 보면 NH아문디자산운용은 전년 동기보다 342% 이상 늘었고 삼성자산운용과 신한자산운용도 각각 150%, 13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운용사별 순이익 격차가 큰 배경에는 수익구조 차이가 있다. ETF를 비롯한 공모펀드는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운용보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운용사 간 수수료 경쟁도 치열하다. 반면 사모펀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운용보수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면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다. 증시 상승기에 고유재산 운용에서 발생하는 평가·처분이익이 커지는 점도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상반기 운용업계의 실적 개선은 국내 증시와 ETF 시장 성장뿐 아니라 해외사업, 성과보수, 고유재산 운용과 지분법손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 실적 좋아졌는데 왜 ‘주주 역할’이 중요해졌나
운용사의 몸집이 커졌다는 것은 단순히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늘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운용사가 투자한 기업이 배당을 얼마나 할지, 보유한 자기주식을 소각할지, 누구를 이사로 선임할지 등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리면 해당 주식을 보유한 펀드도 의결권을 행사한다. 결국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를 대신해 운용사가 찬성과 반대를 판단하는 구조다.
개인투자자와도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투자자가 ETF나 펀드를 통해 기업 주식을 간접 보유하면 해당 주식의 의결권은 통상 자산운용사가 행사한다. 개인이 직접 주총에서 표를 던지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맡긴 돈으로 운용사가 어떤 판단을 하는지가 투자기업의 의사결정과 장기적인 펀드 수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밸류업 기업 756곳…운용사가 따져볼 기업가치 전략도 확대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이 상장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운용사가 판단해야 할 사안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3일 발표한 ‘8월 월간 기업가치 제고 현황’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난달 말까지 공시를 마친 상장사는 756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 354곳, 코스닥시장 402곳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5074조 4000억 원으로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83.4%를 차지했다. 코스피만 놓고 보면 밸류업 공시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87.7%에 달했다.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행 상황을 다시 공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달까지 주기적 공시를 제출한 기업은 누적 124곳으로 집계됐다.
밸류업은 단순히 배당이나 자기주식 소각을 늘리는 정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중장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전반을 포괄한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배당과 자기주식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려줄 것인지, 설비투자나 연구개발, 인수합병(M&A)에 투입할 것인지까지 따져봐야 한다.
◊ 환원액 크다고 무조건 좋은가…투자 여력까지 따져야
같은 주주환원이라도 현금배당인지 자기주식 취득·소각인지에 따라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환원 규모뿐 아니라 실제 실행 시기와 기업의 현금창출력, 향후 투자계획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주주환원을 크게 늘리면 당장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설비투자나 연구개발, 인수합병 등에 사용할 자금까지 과도하게 줄인다면 장기적인 기업 성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현금을 계속 쌓아두면서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찾지 못한다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자본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일 수도 있다. 운용사가 단순히 ‘주주환원 규모가 크면 찬성’할 수 없는 이유다.
◊ 회사와 주주 요구 엇갈릴 때…판단 기준은 ‘고객 이익’
운용사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은 기업 경영진과 일부 주주의 요구가 충돌할 때다.
최근에는 기업 지분을 확보한 뒤 배당 확대나 자기주식 소각, 이사 선임 등을 요구하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 투자자의 주주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행동주의 투자자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달라며 배당 확대나 자기주식 소각을 요구하고, 회사 측은 미래 투자를 위해 자금을 남겨둬야 한다며 반대할 수 있다. 양측의 지분이 팽팽하다면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어느 쪽에 표를 던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운용사가 행동주의 투자자의 요구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이 고객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배당 확대나 대규모 자기주식 소각으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더라도 기업의 장기 투자 여력을 훼손한다면 고객에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경영진이 미래 투자를 이유로 현금 축적이나 낮은 주주환원을 주장하더라도 실제 투자계획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결국 자산운용사의 판단 기준은 ‘회사 편이냐 행동주의 투자자 편이냐’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고객의 중장기 수익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가 돼야 한다.
◊ 주총 표결 넘어…평소 기업도 살핀다
기관투자자의 주주 역할은 주총 당일 찬성과 반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투자기업의 실적과 재무구조, 배당정책, 이사회 구성 등을 지속해서 살펴보고 필요하면 기업 측에 개선을 요구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기관투자자가 고객의 돈을 맡은 수탁자로서 투자기업을 점검하고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도 지난 7월 도입 10년 만에 개정됐다.
개정된 원칙은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기업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소통하는 등 기관투자자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적용 대상 자산도 기존 상장주식에서 채권과 인프라, 부동산, 비상장주식, 해외자산 등으로 넓어졌다.
개정 내용은 준비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의결권 행사와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일부 대형 연기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 자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업계 전반의 과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 ‘왜 찬성했나’까지 본다…운용사 설명 책임 확대
운용사들이 행사할 의결권도 주총 당일 갑자기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 투자기업의 경영상황과 자본배분 정책을 분석하고 기업과 소통한 결과가 최종적으로 찬성과 반대라는 표로 나타난다.
특히 운용사가 투자기업이나 해당 계열사와 사업 관계를 맺고 있다면 이해상충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예컨대 투자기업이 해당 운용사의 계열사이거나 중요한 거래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운용사가 경영진에게 유리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투자자는 ‘고객 이익보다 회사 관계를 우선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기업 경영진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고 해서 무조건 적극적인 주주활동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해당 판단이 고객의 중장기 투자수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운용사가 어떤 표를 던졌는지만큼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하는지도 중요해질 수 있다.
◊ 상반기와 달라진 시장…하반기 실적은 변수
상반기 운용사 실적을 끌어올린 시장 환경이 하반기에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8월 들어 국내 증시 거래가 둔화되는 등 시장 분위기는 상반기와 달라지고 있다. 증시 거래가 줄거나 투자자금이 해외시장으로 이동하면 국내 주식형 펀드와 ETF의 자금 유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국내 증시 방향과 국내외 자금 이동, 시장점유율 경쟁에 따른 비용 부담, 해외사업과 고유재산 운용 성과 등이 하반기 실적을 좌우할 변수다. 상반기의 가파른 실적 증가세가 하반기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 실적 다음 시험대는 ‘어떤 주주인가’
상반기 자산운용업계의 성적표는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고객의 돈으로 시장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진 만큼 수익성만으로 운용사의 역할을 평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밸류업과 주주환원이 확산되고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 기준도 강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장기 성장과 주주환원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다음 경쟁은 자금을 얼마나 모으고 수익을 얼마나 냈느냐를 넘어 고객의 돈으로 어떤 주주가 될 것인지에서 갈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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