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뇌전증 환자 ‘삶의 데이터’ 쌓는다…자연사 데이터셋 구축 추진

김민준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3 16:53:34
전국 8개 이상 병원 참여…경련·수면·활동 데이터 장기 추적
모바일·웨어러블 총동원…임상시험 외부 대조군 활용 기반

[메가경제=김민준 기자] 서울대병원이 희귀 유전자 뇌전증 환자의 증상과 생활 변화를 장기간 추적하는 자연사 연구에 착수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모바일 앱으로 경련과 수면, 행동 등을 기록하고 웨어러블 기기로 활동량과 생체정보까지 수집해 국내 최초의 라이프로그 기반 자연사 데이터셋 구축에 나선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임상시험 과정에서 충분한 대조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신약 개발의 걸림돌로 꼽힌다. 서울대병원은 치료받지 않았을 때 환자의 증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장기간 축적해 임상시험의 외부 대조군과 신약 개발 근거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 연구진이 ‘희귀 유전자 변이에 의한 발달 및 뇌전증성 뇌병증’ 환자 자연사 연구를 진행한다. [사진=서울대병원]

 

3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김우중 소아신경과 교수팀이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지원을 받아 ‘희귀 유전자 변이에 의한 발달 및 뇌전증성 뇌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자연사 연구를 진행한다.

 

발달 및 뇌전증성 뇌병증은 유전자 변이에 의해 경련 발작과 발달 지연 등이 함께 나타나는 중증 뇌전증이다. 유전자 검사 기술 발전으로 원인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환자는 늘고 있지만, 극희귀질환의 특성상 질환의 자연 경과와 증상 변화를 장기간 축적한 국내 데이터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료 기록을 넘어 환자의 일상생활 데이터를 함께 확보하는 데 있다.

 

환자와 보호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경련과 이상운동, 수면, 행동, 삶의 질 등을 전자일지와 동영상으로 기록한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활동량과 수면 패턴, 심박변이도 등 생체정보도 수집한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경련이나 증상 악화와 수면·활동량·자율신경계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질병의 중증도와 예후를 반영할 수 있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후보도 발굴할 계획이다.

 

병원 방문 때만 확인하기 어려운 환자의 실제 생활 변화를 데이터로 축적한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특징이다. 발달과 행동·정서, 운동능력, 의사소통, 일상생활 의존도, 수면, 삶의 질 등을 표준화한 평가체계도 전국 거점병원에 적용한다.

 

연구에는 서울대병원이 주관기관으로 참여하고 분당서울대병원이 세부기관을 맡는다. 인하대병원, 고려대 안산병원, 조선대병원, 충북대병원, 보라매병원, 중앙대 광명병원, 경북대병원 등 전국 8개 이상 협력병원도 참여한다.

 

다기관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데이터를 축적해 의료기관별로 흩어진 환자 정보를 하나의 연구 기반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연구팀은 향후 구축된 플랫폼을 다른 희귀질환으로 확대하고, 규제기관의 의사결정과 진료지침 마련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자연사 연구는 희귀질환 신약 개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료 개입을 받지 않은 환자의 질병 진행 양상을 체계적으로 확보하면 임상시험에서 치료 효과를 비교할 수 있는 외부 대조군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자연사 연구가 신약 개발의 근거로 활용된 사례가 있다.

 

서울대병원은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연구 설계에도 반영한다. 지난 7월 2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희귀 유전자 뇌전증 심포지엄’에서는 환자 부모와 연구자, 임상 전문가들이 수면과 행동, 유전자 진단, 정밀치료, 제도적 지원 등을 논의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희귀 유전자 뇌전증은 환자 수가 적은 만큼 질환의 진행 과정과 일상 속 변화를 장기간 축적한 임상 근거가 부족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기록하는 증상과 생활 데이터, 의료기관에서 축적되는 임상정보를 체계적으로 연결해 질환의 자연 경과를 구체화하고, 이를 향후 치료제 개발과 진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로 발전시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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