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조' 돌파한 가계부채 뇌관…내수 침체 앞에서도 금리 못 내리는 韓 통화정책
올리면 '연쇄 부도' 내리면 '집값 폭발' 진퇴양난…경제 당국, 빚 자극 피할 '핀셋 해법' 절실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연착륙(Soft-landing)'을 기대했건만, 기장은 아예 랜딩기어를 올리고 다시 고도를 높이고 있다. 침체는커녕 펄펄 끓어오르는 미국 경제의 '무착륙(No-landing)'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시원하게 내려줄 것이란 전 세계의 애틋한(?) 기대는 산산조각 났고, '킹달러'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이 태풍의 눈동자 한가운데,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돌파한 역대급 가계부채 폭탄을 끌어안은 한국은행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다.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완벽한 '진퇴양난(進退兩難)'. 대체 지금 경제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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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내용에 맞게 AI 이미지 생성 및 제작 |
게다가 당장 다음 달 치러질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양당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 공약은 인플레이션의 불씨에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기축통화국 미국의 튼튼한 체력은 필연적으로 '달러 강세'를 부추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면서 이자까지 쏠쏠하게 주니, 전 세계 자금이 블랙홀처럼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달러 패권에 짓눌린 아시아 신흥국들은 당장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헐어 쓰며 눈물겨운 환율 방어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 글로벌 난기류 속에서 한국은행의 처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장기화된 내수 침체에 자영업자들의 비명 소리가 커지며 "제발 금리 좀 내려달라"는 정치권과 시장의 압박이 거세다. 교과서적으로는 둔화하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는 게 맞다.
하지만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 한가운데에는 '2000조 원'이라는 거대한 '코끼리(가계부채)'가 버티고 앉아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2026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이미 사상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돌파했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는 간신히 눌러놓은 수도권 집값 상승 불씨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 '영끌'과 '빚투' 심리가 다시 살아나면 2000조 원의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초거대 시한폭탄으로 진화한다. 불난 집에 화약고를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거나 지금의 높은 수준을 마냥 유지하자니, 그것도 지옥이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고 외국인 자본 유출을 막으려면 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살인적인 이자 부담에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린 취약 차주와 좀비 기업들은 연쇄 부도의 벼랑 끝으로 등 떠밀리게 된다.
금리를 내리자니 부동산이 들썩이고 가계 빚이 폭발하며, 묶거나 올리자니 내수가 죽고 서민 경제가 파탄 난다. 가만히 있자니 환율이 치솟아 수입 물가가 폭등한다. 어느 버튼을 눌러도 경고음이 울리는, 완벽한 외통수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연준이 금리를 내려주면 우리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이른바 '천수답(天水畓, 비가 와야 농사를 짓는 논)'식 기대에 기대어 왔다. 하지만 미국이 쏘아 올린 노랜딩과 강달러 기조가 장기 고착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 거대한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것은 오롯이 한국은행과 경제 당국의 무거운 숙제로 남게 됐다.
단순히 이자율을 내리는 1차원적 해법으로는 지금의 복합 위기를 넘기 어렵다. 2000조 원의 빚더미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벼랑 끝에 몰린 내수의 숨통을 틔워야 하는, 그야말로 외줄 타기 같은 정교한 '핀셋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미국발 폭풍우가 다시 몰아치는 지금, 진퇴양난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무사히 인도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어떤 해법을 꺼내 들지 시장의 모든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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