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천하’ 필랑트, 국내서 길 잃고 중남미로… 르노코리아의 수출 승부수

박제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4 08:49:04
출시 첫 달 4920대 뒤 판매 급락… "왜 사야 하나" 각인 실패 지적
준대형 SUV와 수입차 사이 모호한 포지셔닝… 첫 수출 220대, 반전 아닌 재검증 시험대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르노코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판매 동력을 잃은 준대형 크로스오버 필랑트의 중남미 수출에 나섰다. 사전계약 7,000대를 돌파하고 출시 첫 달 5,000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지만 이후 수요가 급격히 꺾이면서,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다만 첫 수출 물량이 220대에 그친 데다 국내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 모호한 상품 정체성과 가격 포지셔닝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수출은 반전 카드라기보다 필랑트의 시장성을 다시 검증받는 시험대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 르노 필랑트가 첫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르노]


르노코리아는 지난달 31일 마산항 제4부두에서 필랑트의 첫 본격 수출 물량을 선적했다. 이날 필랑트 220대를 비롯해 아르카나 418대와 그랑 콜레오스 209대 등 부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 총 847대가 중남미로 향하는 선박에 실렸다. 이번 선적으로 르노코리아의 수출 라인업은 기존 아르카나·그랑 콜레오스에서 필랑트까지 확대됐다.

회사는 부산공장 생산 모델의 수출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수출을 단순한 글로벌 판매 확대보다 국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필랑트의 판매량을 해외에서 보완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 사전계약 7000대 흥행… 신차효과는 한 달 만에 증발


필랑트는 지난 3월 국내 출시 당시만 해도 르노코리아의 차세대 주력 모델로 기대를 모았다. 사전계약은 7,000대를 돌파했고, 출시 첫 달 4,920대가 팔리며 국산차 판매 순위 9위에 올랐다.

그러나 흥행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판매량은 4월 2,139대로 전월 대비 56.5% 급감했고, 5월에는 1,201대까지 떨어졌다. 6월에도 1,324대에 그치며 출시 첫 달과 비교해 석 달 만에 판매량이 70% 이상 줄었다. 필랑트의 부진은 르노코리아 전체 실적에도 부담으로 작용해, 4월 국내외 판매량은 내수 4,025대·수출 2,174대 등 총 6,199대로 전년 동월 대비 40.5% 감소했다.

■ “새로운 차” 강조했지만 “왜 사야 하나” 설명 못 해


업계에서는 필랑트의 부진을 단순한 신차효과 소멸보다 마케팅·상품 포지셔닝의 실패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필랑트는 세단의 승차감과 SUV의 활용성을 결합한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며 하이브리드 E-Tech 파워트레인(250마력, 복합연비 15.1km/l), ANC, 주파수 감응형 댐퍼, AI 음성비서 ‘에이닷 오토’ 등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상품성이 소비자에게 명확한 구매 이유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국산 준대형 SUV와 경쟁하기엔 브랜드 인지도·공간 활용성 면에서 부담이 있고, 수입차 수요를 끌어오기엔 프리미엄 이미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랑 콜레오스와의 타깃·용도 차별화도 명확하지 않아, 신차가 신규 수요 창출보다 기존 모델 고객을 나눠 갖는 내부 잠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르노코리아는 판매 둔화 이후 36개월 기준 신차가의 67%를 보장하는 중고차 가격 보장 프로그램과 월 27만원대 잔가보장 할부 등 금융 혜택을 잇달아 내놓았다. 다만 판매 감소 이후 혜택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초기 상품·마케팅 메시지가 충분히 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르노코리아는 필랑트를 출시 초기부터 글로벌 플래그십 모델로 내세우며 아시아·중동·중남미 등 해외 판매 확대를 예고해 왔다. 다만 첫 수출 물량 220대만으로 반전을 기대하기는 이르며, 실제 성과로 평가받으려면 일회성 선적을 넘어 반복 주문과 현지 판매 확대가 이어져야 한다. 국내에서 드러난 모호한 정체성과 가격 포지셔닝 문제를 해외에서도 반복할 경우 중남미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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