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기본 징역 1년 6개월~4년
안전비용·공사기간도 가중요소
최근 실형 판결 이어 처벌 수위 변화 촉각
[메가경제=정태현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사망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양형기준안이 마련되면서 건설업계의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사고가 반복될 경우 최대 징역 15년까지 권고할 수 있도록 한 데다, 안전비용과 공사기간 등 건설현장과 밀접한 요소까지 가중 사유에 포함됐다. 최근 건설사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례까지 나오면서 그동안 집행유예가 잇따랐던 중대재해 사건의 처벌 수위가 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23일 법조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1일 제148차 전체회의를 열고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중대재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심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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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생성형 AI 활용·제작] |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시행된 이후 중대재해 범죄에 별도의 양형기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별도 기준 없이 개별 사건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 정도와 피해 규모, 사고 경위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해왔다.
◇ 기본 권고형 1년 6개월부터…최대 15년까지
양형위는 근로자가 숨진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 권고형을 징역 1년 6개월~4년으로 정했다.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개월~2년, 가중 사유가 있으면 징역 3~10년을 권고한다. 특별가중 사유가 2개 이상 있거나, 특별가중 사유가 특별감경 사유보다 2개 이상 많으면 권고형 상한을 최대 징역 15년까지 높일 수 있다.
특별한 감경이나 가중 사유가 없는 사건에서도 최소 징역 1년 6개월을 권고한다는 의미다. 양형위가 분석한 기존 중대산업재해치사 사건의 평균 형량은 약 1년 2개월이다. 새 기준안의 기본 권고형 최저치가 기존 평균 선고형보다 약 4개월 높다. 법에서 정한 사망사고 징역형의 최저선인 1년과 비교하면 6개월 높다.
반복 사고에 대한 기준도 강화됐다. 중대산업재해 범죄로 형이 확정된 뒤 5년 이내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면 권고 형량의 상한과 하한을 각각 1.5배 높이도록 했다.
◇ 공사비·공기까지 가중요소…본사 책임 범위 넓어지나
건설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형량을 무겁게 하는 구체적인 기준이다.
양형위는 근로자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위험요인을 보고했는데도 이를 묵살하거나, 위험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하도록 지시한 경우 등을 특별가중 사유로 제시했다. 행정기관의 반복적인 시정명령에도 형식적인 조치만 취하거나 안전 관련 예산을 삭감·전용한 경우도 포함됐다.
건설업의 사업 구조와 직접 맞닿은 내용도 담겼다. 제3자에게 공사를 도급하면서 안전·보건 확보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반영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금액을 책정하거나,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울 만큼 공사기간을 짧게 정한 경우 형량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사고가 발생한 현장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뿐 아니라 계약 단계에서 안전 확보에 필요한 비용과 기간을 충분히 반영했는지도 형량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장 차원의 관리 소홀을 넘어 본사의 예산 편성과 도급·공정 관리까지 재판 과정에서 들여다볼 여지가 커진 셈이다.
◇ 집행유예 중심 판결 흐름…최근엔 실형 사례도
법 시행 초기에는 경영책임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집행을 유예하는 사례가 잇따랐으나 최근에는 안전관리 의무 위반 정도와 사고 전력 등을 무겁게 판단해 건설사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달 20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구건설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현장소장에게도 징역 1년의 실형이 내려졌다.
사고는 2022년 9월 경기 김포시 펌프장 증설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이동식 크레인으로 약 2톤의 철근을 옮기던 중 크레인 붐이 부러지면서 근로자 1명이 숨졌다.
법원은 사고 전 사전조사와 작업계획서 작성, 작업자 출입 통제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회사도 유해·위험요인을 확인·개선하는 절차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안전조치 미이행과 과실 정도가 중하고 근로자가 숨지는 결과가 발생한 점, 대표이사와 현장소장에게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불리한 사정으로 봤다. 유족과 합의하지 못한 점도 양형에 반영됐다. 신구건설 대표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다만 이번 양형기준안이 건설현장 사망사고 때마다 곧바로 대표이사에 대한 중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지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여부,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먼저 인정돼야 한다. 유죄가 인정된 이후 형량을 정하는 단계에서 양형기준이 적용된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후 발생해 '1호 사고'로 불린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에서는 올해 2월 1심 법원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양형기준안은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양형위는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 양형기준을 의결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안전예산과 도급금액, 공사기간, 반복적인 위험요인 방치 등 건설사의 사업 의사결정과 직결된 요소가 가중 사유로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현장의 관리 책임뿐 아니라 본사 차원의 안전관리체계와 사업 수행 방식까지 형사재판에서 따져보는 기준이 한층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사 대표에 대한 실형 판결에 이어 첫 양형기준안까지 마련되면서 중대재해 사건의 처벌 수위가 실제로 높아질지 건설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양형기준안은 안전예산과 도급금액, 공사기간 등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연결되는 요소를 구체적인 가중 사유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유죄가 인정되는 사건에서는 과거보다 실형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경영책임자성이나 사고와의 인과관계 판단은 여전히 개별 사건별로 엄격하게 따져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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