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문제도 사과 “‘무노조 경영'이란 말 나오지 않도록 할 것”
소통과 준법 “재판 끝나도 준법감시위 독립적 위치서 계속 활동"
한국노총, 이재용 대국민 사과에 “말보다 실천이 중요” 논평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삼성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의혹이 승계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향후 준법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밝혔다.
특히 이 부회장은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 내에서 금기시돼 온 '승계' 이슈에 대해 직접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이 부회장은 6일 오후 3시 서초동 사옥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른 사과문을 단호한 어조로 10분간 직접 발표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사과 시한을 한 차례 미룬 바 있는 이 부회장은 이날 준비한 ‘반성문’을 삼성의 과거에 대한 사과로 시작해 국격에 걸맞은 '뉴삼성'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news/data/20200506/p179566206690221_965.jpg)
이번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3월 11일 이 부회장에게 요구한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반성과 사과, 무노조 경영 폐기,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을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하는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머리를 숙인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검정색 정장을 입고 회견장에 입장해 카메라를 향해 인사한 뒤 사과문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은 만큼 입장문을 내거나 온라인 회견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았으나, 이 부회장은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입장문은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준법 감시 등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내용이 담겼다.
이 부회장은 먼저 "오늘의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렸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고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며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고 제 잘못이다. 사과 드린다"며 허리를 숙였다.
이어 “오늘 반성하는 마음으로 삼성의 현안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먼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고 일련의 과정을 열거한 뒤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사과했다.
이어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 드리겠다”며 본인의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전격적으로 공언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과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 관련 주요 일지. [그래픽= 연합뉴스]](/news/data/20200506/p179566206690221_594.jpg)
우선 이 부회장은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며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다.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며 “특히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 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다”라고 삼성의 현 상황인식을 표현했다.
이어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고 선언한 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은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삼성의 장기적인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경영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에 앞서 이 부회장은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가져온 제 소회를 말씀 드리고 싶다”며 “2014년에 회장님(이건희)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며 그간의 자신을 되돌아본 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며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문제에 이어 ‘노사’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반성한 뒤 “최근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표명했다.
이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며 “그래서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다.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다”고 의미를 부여한 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다.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재차 강조한 뒤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다.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약속한 이 부회장은 “최근 2-3개월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저는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나선 의료진 등을 보며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다”며 “또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제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느낀 소회를 전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말로 대국민 사과문을 맺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이 그동안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을 안긴 것은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간의 일들을 반성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아울러, 앞으로는 경영권 문제로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확언했다.
이 부회장의 이날 '공언'은 80년 삼성의 전통은 물론 '한국적 정서'와도 과감하게 결별하고, 삼성의 '규모와 업'에 맞는 최고 수준의 경영을 통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날 이 회장의 사과는 재판과 수사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한 방패용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의 이날 대국민 약속은 총수 취임 2주년을 맞은 그가 잘못된 과거 관행이나 범법 행위와의 결별에 대한 약속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얼마나, 또 어떻게 약속을 철저한 이행해 나가느냐의 여부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과 삼성이 더는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 앞에 나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직후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논평했다.
한국노총은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밝힌)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 법을 준수하겠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건전한 노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 등은 대한민국의 많은 노사가 지켜가고 있는 내용"이라며 "굳이 이 부회장의 사과를 평가 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결국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울산공장, 삼성화재,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삼성웰스토리 등 삼성그룹 내 6개 사업장에 산하 노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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