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구 센터장 ‘선진형 실물화재시험’ 제안에 이경구·허윤종·안재홍·이재혁 등 학계·시민사회 대안 릴레이
국토부 정승수 과장 “운영 단계 위험물 관리가 핵심”…유기질 업계 김양규·김상규 “일률적 규제는 대기업 독점화 초래” 경고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반복되는 산업현장의 대형 화재 참사를 끊기 위해선, 서류상의 ‘소재 인증’이 아닌 현장에서의 ‘실질 방어 성능’을 화재 안전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대전 안전공업과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등 참혹한 인명 피해를 동반한 사고가 되풀이되면서, 기존 화재 안전 기준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제는 자재의 불연 여부만 따지는 단편적 규제를 넘어 시공 정밀도, 피난 여건, 유독가스 대응력까지 통합 관리하는 ‘입체적 안전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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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화재에 안전한 산업현장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특히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자재의 단열 성능 허위 표시를 근절하고 인명 피해와 직결되는 유해 가스 발생을 억제키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정·경 역학 관계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화재에 안전한 산업현장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민의힘 권영진·김형동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복기왕 의원실, 매일신문이 공동주최하고 연합뉴스, (사)한국입법기자협회 등 언론사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정부와 업계 관계자 14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참석자들은 산업현장의 화재 피해가 단순히 특정 자재의 결함에 그치지 않고 ▲저급 자재 유통을 비롯해, ▲시공 품질의 편차, ▲건축물 용도와 실제 환경의 불일치, ▲위험물 적재 및 피난 여건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확대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제도와 관리체계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재난’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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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재에 안전한 산업현장 구축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 의원들과 내빈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소재 위주 분류의 한계…“완제품 형태의 시스템 검증 시급”
이날 토론회의 핵심 쟁점은 건축자재 안전기준을 ‘소재명’이 아니라 ‘실제 성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행 불연·준불연 분류 체계만으로는 접합부, 체결부, 마감 방식 등 실제 화재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요소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조발제를 맡은 권인구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실화재센터장은 “샌드위치패널과 같은 복합 자재는 단품 성능만으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실제 건축물과 유사한 조건에서 시스템 단위로 검증하는 ‘선진형 실물화재시험’ 평가 체계의 고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샌드위치패널의 화재 안전성은 심재의 종류뿐만 아니라 강판의 품질, 접착층, 조인트 구성 등이 결합된 완제품 상태에서 결정된다. 특정 소재 사용 여부에 따른 이분법적 구분보다, 완제품 시스템이 실제 화재 상황에서 불길과 연기 확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는지를 확인하는 체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권 센터장은 배터리 제조 시설 등 고위험 현장의 경우 건축물 용도와 적재물 특성, 피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형 화재안전 관리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성능 미달 자재의 제조·유통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사후 관리 강화와 시험·인증 인프라 확충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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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화재에 안전한 산업현장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구조 안전부터 독성가스 제염, 전주기 추적 플랫폼까지 각계 대안 전면출현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화재의 1차적 진압을 넘어 구조물 붕괴, 연소 독성, 사후 복구까지 아우르는 전문가들의 거시적 제안이 잇따랐다.
한국강구조학회 부회장인 이경구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는 화재 발생 시 소방용수 유입 및 고열에 따른 재료 강도 저하 등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진화 과정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소방용수의 무게와 화재 고열이 결합하면 구조물의 지탱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며 붕괴 가능성에 대한 구조 안전비책 마련을 제안했다.
허윤종 엔씨티솔루션즈 대표(박사)는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독성가스 등 2차 피해의 치명성을 경고했다. 허 대표는 “현재 화재 대응체계는 소화와 대피, 구조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서 현장 응급 제염, 독성물질 중화 등에 한계가 있다”며 사고 현장의 응급 제염체계를 도입하고 국가 차원에서 독성재난에 대비하는 유기적 시스템 구축을 당부했다.
안재홍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재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확보키 위한 IT 기술 접목을 제시했다. 안 연구위원은 “생산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투적하여 서류 위조나 부적합 자재의 유통을 원천 차단하는 ‘건축자재 통합관리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며 기술적 인프라의 기대 효과를 강조했다.
시민사회를 대표해 참석한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사장은 실질적인 감시 체계 강화를 요구했다. 이 이사장은 “인명 피해의 주원인인 연소 독성 물질과 화재 시 구조 성능에 대한 명확한 법제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제도가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모니터링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 정부의 현장 중심 행정과 산업계의 규제 현실화 목소리 격돌
정부 측 토론자로 나선 정승수 국토교통부 건축안전과장은 정부의 사후 관리 노력을 설명하는 한편, 운영 단계에서의 리스크 관리를 강조했다. 정 과장은 지난 2021년 도입된 ‘건축자재 품질인정제도’를 중심으로 부적합 제품에 대한 모니터링과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산업현장의 안전은 인허가 단계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며, “실제 입주 업종과 보관 물질, 위험물 관리 방식 등에 따라 현장의 실질적 위험도가 결정되므로 사업주와 현장의 철저한 관리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반면, 산업계 관계자들은 화재 안전 강화의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면서도, 제도가 현장의 기술 변화와 시공 현실을 반영해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지하주차장 단열재 불연재 의무화’ 관련 건축법 개정안을 두고 자재 종류를 일률적으로 지정하는 방식에 대해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유기단열재 및 보온재 협단체를 대변한 김양규 한국외단열건축협회 사무국장은 “지하주차장 천장 단열재를 무기질 불연재로 의무화할 경우, 특정 자재는 두께와 무게가 급격히 늘어나 층고 확보, 마감, 고정 방식 등에서 시공상 난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공사비가 15~20% 상승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법이 현실 적용 범위를 벗어나면 현장 이행력이 떨어져 결국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형식화’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형평성과 산업 구조 붕괴에 대한 경고도 터져 나왔다. 김상규 한국발포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품질기술본부장은 “핵심은 유기질이냐 무기질이냐는 명칭이 아니라, 실제 화재 조건에서 불길 확산을 막고 독성가스 등 구조적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여부”라고 역설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발생한 화성 아리셀 공장 참사 등 대형 화재 현장에서도 불연재인 그라스울 패널이 사용됐으나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점을 구체적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김 본부장은 “이 규제가 이대로 강행될 경우 약 1000곳에 달하는 중소업체가 퇴출 위기에 직면하고 1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반면, 무기단열재 시장은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독점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책의 정당성과 형평성을 강력히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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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재에 안전한 산업현장 구축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 “현장 목소리 바탕으로 입법·제도적 보완 약속”
현장의 뜨거운 공방에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여야 정치권도 일제히 제도 개선과 촘촘한 입법 보완을 약속했다.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오늘 토론회에서 제시된 전문가들과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국토교통부 및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함께 규제의 현실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공동 주최자인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역시 산업현장의 화재 재해 급증을 지적하며 “이번 토론회의 논의 결과를 향후 입법화와 제도화 과정의 핵심 지침으로 삼아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복기왕 의원 등 공동 주최 측 야당 의원들 또한 이번 토론회를 기점으로 여야 간 긴밀한 공조 체계를 다지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산업현장 화재가 노동자의 생명권과 직결되는 중대한 민생 현안인 만큼, 단순한 규제 일변도의 대책을 넘어 현장 이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종합 안전기준을 도출하는 데 국회 차원의 모든 입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결국 이번 ‘산업현장 화재안전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은 하나로 귀결된다. 배터리, 물류, 복합소재 등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현장의 위험 요소에 대응키 위해서는 ‘무엇을 쓰게 할 것인가’라는 1차원적 자재 규제를 넘어, 실제 화재 상황에서 인명을 지탱할 수 있는 실질적 방어 성능을 갖추는 종합적인 안전기준 수립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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