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워라밸의 그늘’도 꼼꼼히 살펴보자

김기영 / 기사승인 : 2019-05-02 11:52:44
  • -
  • +
  • 인쇄

‘워라밸’(Work-Life-Balance)은 이제 우리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산업역군’이란 말이 상징하듯 과거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으로 치부됐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후부터 선진국 국민들의 여유로운 삶과 우리의 고단한 삶을 비교하려는 기류가 급격히 형성됐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나는 행복한가”라고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대 흐름을 반영해 탄생한 것이 주 52시간 근무제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산물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지난해 2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제도로 정착됐다. 그 결과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해 7월부터, 그 미만 사업장은 내년 7월부터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기본 내용은 주당 기본근로 시간을 40시간으로 하되 연장근로를 12시간까지 허용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68시간이었다.


근무시간이 대폭 줄어들자 금세 생활의 변화가 나타났다. 퇴근 시간이 빨라지고 주말 휴무 간격이 길어진 덕분에 직장인들이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었고, 취미활동 등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과 통계청 자료들은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내용을 요약하면 대강 이렇다.


우선 지난해 가계의 교육비 지출이 42조2479억원으로 늘었다. 전년보다 1조3107억원(3.2%)이나 늘어난 것이다. 2012년부터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교육비 지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학생들이 아니라 성인들이 자기계발과 취미활동 등을 위해 학원비 지출 등을 늘린 것이 그 배경이다.


지난 해엔 오락문화비 지출도 크게 늘었다. 총 지출액은 전년보다 4.6% 증가한 67조2357억원에 달했다. 2011년 5.8%를 기록한 이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워라밸 확산은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이니 이를 누리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이 제도 도입 이후 더 큰 행복을 누리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워라밸을 한껏 누리는 이들이 주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 직원들이라는 점도 심각히 되돌아봐야 할 점이다.


이들과 달리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임금이 감소함으로써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임금의 핸디캡을 연장근무를 통해 얻는 수당으로 보전하며 가족을 꾸려온 이들 중엔 주 52시간 근무제가 자신을 반실업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작업장 노동자들뿐 아니라 노선버스 기사들 중에서도 52시간제가 전면 실시되면 자신의 월급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줄어드는 임금을 보전하라며 거리로 뛰쳐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개인의 근로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정부 의도대로 사업주가 직원을 선뜻 늘리려 할지도 의문이다.


대기업 사무실이 밀집된 도심 한복판의 식당 주인들은 이미 저녁 손님이 줄어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곳곳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의 그늘이 나타나고 있다. 그 그늘은 52시간 근무제가 소규모 사업장에까지 적용되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감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골고루 볕이 들도록 미리미리 제도를 개선·보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기영
김기영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최신기사

1

"본사 닭고기 공급 부족해 손해"...일부 교촌 가맹점주, 소송 예고
[메가경제=심영범 기자]교촌치킨 일부 가맹점주가 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예고했다. 가맹본사가 닭고기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아 매출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교촌치킨 가맹점주 A씨 등 4명은 이르면 이달 중에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원고 4명의 청구액은 약 1억원이다. 이들은 가맹본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지

2

롯데 유통군, 팀네이버와 맞손… Agentic Enterprise 전환 박차
[메가경제=심영범 기자]롯데 유통군이 네이버와 손잡고 AI, 쇼핑, 마케팅, ESG 등 4개 분야에 걸쳐 전략적 업무 제휴에 나서며 Agentic Enterprise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5일(금),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등 롯데 관계자들은 네이버 1784를 방문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를 비롯해 네이버 관계자들과 만나 이 같이 AI,

3

'300명 美구금' LG엔솔 인사책임자 출국…"조기 석방 위해 최선"
[메가경제=심영범 기자]미국 조지아주의 배터리공장에 대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협력사 포함 300여명의 인력이 구금된 LG에너지솔루션의 최고인사책임자(CHO)가 이번 사태 대응을 위해 7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지금은 우리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 모두의 신속한 조기 석방이 최우선”이라

HEADLINE

더보기

트렌드경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