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 지역 기초의원은 ‘제 선거’ 대신 ‘시장 유세’만 몰두… 공약 등 공표 실종
이코노미스트·래리 다이아몬드 “한국 정당 양극화가 지방자치 자율성 훼손”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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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태 부국장 |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방선거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여전히 기이하고 모순적이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수사가 무색하게, 현장에서는 후보 개개인의 역량이나 정책보다 소속 정당의 거물급 후보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정당 정치의 예속화’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선거 기간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의 시장과 구청장 후보 유세장에는 정작 주인공만큼이나 바쁜 이들이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지역의 시의원과 구·군의원 후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이크에선 자신의 이름이나 지역 공약 대신 시장·구청장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만 가득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의원 후보에게 왜 자신만의 선거 전략이나 공약은 보이지 않는지, 왜 자신을 알리는 정책과 공략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시장 후보 옆에만 서 있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어색한 웃음 뿐이었다.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설명하고 평가받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우세 지역의 기초의원 후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당세가 불리한 지역의 기초의원 후보들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홀로 거리를 누비며 직접 자신의 명함을 돌리고,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만나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정당의 후광이 아닌, 오직 자신의 발과 정책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사권이 정작 자신의 정책적 노력이 아닌, 상급 후보의 정당 지지율에 달려 있다는 이 기묘한 확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 선거 통계를 분석한 결과, 차가운 수치로 증명됐다.
먼저 8년 전인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살펴보면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 14곳인 82.3%를 석권했다. 이에 따른 광역의회 장악력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는데, 당시 지역구 광역의원 총 737석 중 민주당은 무려 605석에 달하는 82.1%를 차지했다. 특히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는 민주당 소속 지사가 당선됨과 동시에 광역의회 의석의 90%에서 95%를 민주당이 싹쓸이하며 이른바 ‘지방판 일당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양상은 4년 전인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정반대로 재현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17개 시·도지사 중 12곳인 70.5%를 탈환하며 승기를 잡았고, 국민의힘이 승리한 부산과 대구, 경북 등의 지역에서 해당 정당 소속 광역의원의 당선 비중은 90% 내외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도 지역구 광역의원 779석 중 국민의힘이 491석을 확보하며 과반을 훌쩍 넘겼다. 결국 두 차례 선거 모두 특정 정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해당 지역 의회 권력까지 가져갈 확률은 최소 80%에서 많게는 90% 이상에 달한다는 분석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줄투표와 일당 싹쓸이 현상은 해외 매체와 학계에서도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 지표로 다뤄져 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한국 지방선거가 지역 현안이 실종된 채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고질병이라 분석했다.
스탠퍼드대의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 역시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Recession)'를 경고하며, 정당 간의 극단적 양극화가 지방자치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유권자를 정당에 예속시키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을 상실시켜 부패와 무능을 초래하는 핵심 원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높은 당선 일치율의 배경에는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가 자리 잡고 있다. 광역단체장 후보에게 쏠린 정당 지지세가 소선거구제와 만나면서 승리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게 만드는 구조다.
현장에서 목격된 기초의원들의 행태는 정책 없는 ‘무임소 승차(無任所 乘車)’형 당선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구체적인 임무인 공약을 보여주지 않아도 정당 번호만으로 의회에 입성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지방의회는 지자체장의 거수기(擧手器)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 단체장과 다수당이 일치하는 지역에서는 예산 심의나 사업 감사가 형식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이 기이한 현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만의 공약이나 정책 등 공표에 집중하지 않음에도 당선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세트로 처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그들의 비겁한 계산기를 부숴야 한다. 시장 후보 옆에서 박수만 치던 후보가 내 동네의 예산을 감시할 수 있을지 날카롭게 따져 물어야 한다. 단순히 정당 번호만 따르는 줄투표의 관행을 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명함을 돌리던 열세 지역 후보의 절박함만큼이나 예리한 시선으로 진짜 일꾼을 골라내야 한다. 정치는 유권자가 감시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동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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