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 김민성 기자]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우여곡절 끝에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인수자로 선정됐다.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생산업체인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새로운 지향점이 확정되면서 지구촌 반도체업계의 지각변동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낸드플래시 4강에서 밀려났던 SK하이닉스도 활로를 찾게 됐다.
로이터통신과 일본 닛케이신문 등은 20일 일본 도시바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매각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미국 투자펀드 베인 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 메모리 부문을 팔기로 결의하고 최종 계약을 서둘러 추진키로 했다.
한미일 연합은 베인 캐피털이 이끌고 SK하이닉스, 애플, 델, 시게이트, 킹스톤테크놀로지 등으로 구성됐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은 3파전으로 진행돼 왔다. SK하이닉스가 포진한 한미일 연합, 미국 WD(웨스턴디지털)이 포함된 '신 미일 연합', 대만 홍하이정밀(폭스콘) 간에 3각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지만 끝내 승자는 한미일 연합이 된 것이다.
지난 6월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한미일 연합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후 WD가 강력 반발하며 소송까지 제기하자 혼전 양상이 빚어졌다. 이에 도시바는 제휴처로 매각 작업을 방해하는 WD이 가세한 진영의 인수안을 정밀 검토했지만 다양한 매각 조건을 충족시킨 한미일 연합의 인수안을 최종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나 무섭게 반도체 부문에서 동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에 경영권이나 기술을 넘기는 것을 꺼려왔지만 도시바의 주요 고객인 애플이 WD 인수에 반대하며 30억 달러 출자를 통해 한미일 연합에 참여하면서 힘을 실어주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또한 주거래은행이 9월 중으로 최종계약을 맺도록 요구하면서 매각처 선정 기한에 쫓겨야 했던 도시바는 더 이상 결정을 늦출 수도 없었다.
도시바가 한미일 연합을 매각처로 선정했지만 인수 자금의 확보 등 최종 계약을 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도시바는 내년 3월까지 도시바 메모리 매각절차를 완료하지 않으면 상장 폐지 조건인 2기 연속 부채 초과를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최종 사인을 마냥 늦출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 일부를 계속 보유하게 되는 도시바는 의결권 기준으로는 일본 측이 도시바 메모리의 과반수 주식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지분 49.9%를 보유할 베인 캐피털에 대한 대출을 통해 도시바 지분을 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도시바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16.1%로 삼성전자(38.3%)에 이어 세계 2위다.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10.6%로 5위이며 이번에 뒤집기 인수 시도가 좌절된 WD 점유율은 15.8%로 3위다.
이번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 결정으로 낸드플래시 시장 공략이 시급한 SK하이닉스로서는 2위 도시바와 손을 잡게 돼 경쟁력을 높이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서는 세계 2위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영향력이 두드러지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올 2분기에 11.6%의 점유율을 기록한 마이크론에 역전당해 4강에서 밀려난 것도 이번 도시바 인수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의 하나다.
한미일 연합의 승리로 한국은 반도체 강국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겠지만 정작 SK하이닉스가 기대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얻지 못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의결권 기준으로 50.1%를 보유하는 일본 측이 SK하이닉스에 대해 기술 유출이나 생산량 확대를 엄격히 제한할 경우 의외로 투자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와의 전략적 협업 수준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부문 도약과 ‘1위 삼성 대 2위 도시바+5위 SK하이닉스’의 양강 구도 확대재편에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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