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무비] '아웃 오브 스톡' 휴지 한 장에 드러난 자본의 민낯

이동훈 / 기사승인 : 2025-04-28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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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휴지 대란부터 미국 국채 혼란까지, 소문이 만든 파장
자본과 미디어...영화 속 휴지 소동과 닮은 듯 다른 페이크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단편영화 ‘아웃 오브 스톡’은 단순한 소동극을 넘어, 우리 사회의 취약한 단면들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거울과 같다. 1973년 일본·미국에서의 발생한 화장지 사재기 열풍을 절묘하게 엮어낸 이 영화는, 가짜뉴스가 만들어낸 파괴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치 최근 미국 국채 사태를 흔드는 일부 헤지펀드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논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미디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2020년 8월9일 공개된 ‘아웃 오브 스톡’은 BoxFort에서 제작하고, 브라이언 타이라가 감독하고, 레이 코넬리 곤잘레즈(줄리 역)가 주연한 위트와 패러독스로 가득한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아메리칸 뷰티’‘심슨 가족’ 등 유명 영화들을 패러디한 감독의 연출이 감탄을 자아낸다.  

 

▲ 영화 '아웃 오브 스톡' 중 발췌. [영상 캡처= BoxFort 채널]

 

◆ 오일쇼크가 부른 나비효과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알면 재미는 배가 된다. 1973년 10월, 중동의 기름 부자들이 갑자기 “우리 기름 값 좀 확 올려볼까?” 하고 담합이라도 한 듯 원유 가격을 무려 70%나 올려 버린다. 바로 ‘오일 쇼크’ 사태이다. 이 여파는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석유화학 제품은 물론 수입품 가격까지 줄줄이 상승시키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통상산업 장관이 “여러분, 종이를 아껴 씁시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호소문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게 엉뚱한 방향으로 불길을 당긴다. ‘어? 종이가 부족해진다고? 그럼 제일 먼저 뭐가 없어지지? 바로 화장지 아냐?’하는 불안 심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오사카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어났다. “우리 휴지 거의 다 떨어졌어요!”라는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냅다 흘린 것이다. 이걸 또 한 신문기자가 덥석 물어 “큰일 났네! 휴지 생산에 문제 생기나 봐!” 하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어버린다. 이 기사를 본 일본 전역의 사람들은 “휴지가 없어진다고? 안 돼!”라며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보이는 휴지란 휴지는 죄다 싹쓸이하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전설의 일본 휴지 사재기 광풍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73년 12월 19일, 미국의 유명 토크쇼 ‘투나잇 쇼’의 진행자 지미 카슨이 이 황당한 일본의 휴지 대란을 언급하며 농담을 던진다. “여러분, 요즘 휴지가 부족하대요~”라고. 이 농담 한마디가 나비 효과가 되어 다음 해 미국에서도 똑같은 휴지 사재기 소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제지 산업과 휴지 판매업자들은 엄청난 돈벼락을 맞게 된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경제 호황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손쉽게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와 불안 심리는 순식간에 ’휴지 품절 대란‘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근거 없는 소문에 휩쓸려 마치 금이라도 되는 듯 휴지를 사재기하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누군가는 막대한 이익을 취헌다. 이는 곧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마치 최근 미국 국채 사태를 흔드는 일부 헤지펀드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논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미디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 트럼프 관세 발표 후 미국 국채 시장 매도세, 헤지펀드가 ’주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월 2일 ’상호 관세‘ 발표 이후 미국 국채 시장에서 대규모 매도세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중국이 의심받았지만, 베이시스 거래를 청산하려는 헤지펀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발표 직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하며 미국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곧바로 매도세가 거세지며 수익률이 급등,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대부분의 대중국 관세를 유예하며 수익률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변동성의 중심에는 헤지펀드가 있다고 의심한다. 이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한 베이시스 거래(채권 매수 + 선물 매도)에 약 1조 엔을 베팅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식 시장 급락으로 변액연금의 금리 스왑 활용이 증가하면서 국채 수익률보다 스왑 금리에 하방 압력이 가해졌고, 수익률이 스왑 금리보다 낮아지는 마이너스 스프레드가 확대되자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국채를 대거 매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미디어들은 이에 발맞춰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결정이 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켜 금융 시장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비록 채권시장의 매도세는 트럼프로부터 90일간의 관세 유예를 이끌어냈지만, 향후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렇다고 중국 개입설을 마냥 부인할 수도 없다. 현재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장유샤로 대표되는 군부 내 강경파 사이의 권력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권력 투쟁의 승자는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국채 시장 불안정을 활용하여,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막고 내부 갈등을 마무리할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아웃 오브 스톡‘에서 처럼 작은 소문이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듯, 국제 사회의 미묘한 권력 다툼 역시 세계 질서라는 거대한 흐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미디어의 무분별한 정보 확산, 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자본의 냉혹함, 그리고 국제 사회의 복잡한 권력 역학 관계까지. ‘아웃 오브 스톡’은 한낱 휴지 소동극 뒤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민감한 지점들을 건드리며 깊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는 ‘휴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단편 영화 '아웃 오브 스톡'은 유투브 채널 'BoxFort'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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