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상식] 국민연금의 대한항공 주주권행사 가로막은 '10초룰'

유원형 / 기사승인 : 2019-02-04 01:05:35
  • -
  • +
  • 인쇄

[메가경제 유원형 기자] 올해도 예년처럼 3월 주총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주총시즌을 앞둔 재계에는 예년과 다른 부류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이후 첫 경영참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오전에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시선이 쏠렸다. 오너 일가의 잇단 일탈행위가 발생한 대한항공과 지주회사 한진칼에 대해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결정할지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날 회의의 결론은 다소 의외였다. 한진칼에는 ‘제한적’ 범위에서 내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하기로 한 반면,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진칼에 대해서도 조양호 회장의 이사해임이나 사외이사선임·추천 등 강력한 카드 대신에 주주제안을 통해 정관변경을 추진키로 했다. 이와 관련 이날 한진그룹은 "한진칼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관변경 주주제안의 주요내용은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하여 배임, 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결원으로 본다. 다만 본 결원의 효력은 형이 확정된 때로부터 3년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기금위의) 다수의견은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로 주주가치가 훼손되었다는 것에 공감했고 최소한의 상징적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오너리스크를 해소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고 전했다. 또한, "국민연금의 한진칼에 대한 지분보유 비율이 10% 미만이므로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더라도 단기매매차익이 발생하지 않아, 국민연금 수익성 측면에서 부담이 적다"고 덧붙였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은 중대·명백한 위법활동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심각한 손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수탁자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주주활동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처럼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엇갈린 결정에는 바로 ‘10%룰’이라는 ‘단기매매차익 반환’ 규정이 작용했다. 이에 따라 기금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10%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약칭 자본시장법)의 제172조(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 반환) 1항에는 ‘주권상장법인의 임원, 직원 또는 주요주주가 금융투자상품(특정증권등)을 매수한 후 6개월 이내에 매도하거나 특정증권등을 매도한 후 6개월 이내에 매수하여 이익을 얻은 경우에는 그 법인은 그 임직원 또는 주요주주에게 그 이익을 그 법인에게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그 이익’이 바로 ‘단기매매차익’이다.


또한 자본시장법 173조(임원 등의 특정증권등 소유상황 보고) 1항에는 ‘주권상장법인의 임원 또는 주요주주가 된 날부터 5일 이내에 누구의 명의로 하든지 자기의 계산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증권등의 소유상황을, 그 특정증권등의 소유상황에 변동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변동이 있는 날부터 5일까지 그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증권선물위원회와 거래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직원연대지부 등 관계자들이 지난달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는 플라자 호텔 앞에서 국민연금의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주주권행사(스튜어드십코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직원연대지부 등 관계자들이 지난달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는 플라자 호텔 앞에서 국민연금의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주주권행사(스튜어드십코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이 규정의 주체 중 ‘주권상장법인의 임원과 직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요주주’의 정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요주주’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약칭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제2조 5항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약칭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조 제6호 나목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6호 나목에는 “누구의 명의로 하든지 자기의 계산으로 금융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0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자‘로 정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지분 10% 이상을 가진 주요주주가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주식보유 목적을 바꾸면 6개월 안에 벌어들인 매매차익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가진 2대주주이고,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은 7.34%를 소유한 3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을 10% 넘게 보유해 ‘10%룰’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한진칼의 경우는 지분이 10%를 넘지 않아 ‘10%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날 박능후 장관은 국민연금에 대해 10%룰을 예외로 할 수 있는지 금융위원회에 문의했지만 불가하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경영참여에 나서게 되면 그만큼 주주이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 당장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 기금위로서는 대한항공 대신에 한진칼을 택함으로써 주주이익의 손실 위험은 피하면서도 일탈행위로 비난받는 오너 일가에 대한 경고효과는 거두는 쪽을 택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법률에서 ‘10%룰’은 왜 두었을까? 이유는 자본시장법을 살펴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다. ‘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 반환’(제172조)과 ‘임원 등의 특정증권등 소유상황 보고’(제173조) 조항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제4편 불공정거래의 규제 제1장 내부자 거래 등’에 포함되어 있다.


당초 내부자거래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조항인 것이다. 내부 정보를 평범한 개미들보다 빨리, 그리고 쉽게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권상장법인의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국민연금의 대한항공과 지주회사 한진칼에 대한 엇갈린 결정은 향후에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실행의 현실적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국민들로부터 수탁받은 연금의 수익성을 우선적으로 제고해야하는 국민연금의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물론 수탁자전문위원회에서는 향후에도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는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 행사를 논의하고 이를 기금위에 보고할 계획이다.


여하튼 국민연금의 이번 경영참여 결정 과정은 그간 그룹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회장님들에게는 큰 경고의 의미로 다가왔을 터다. 잠자는 호랑이 격이었던 국민연금이 언제든지 포효하며 경영권을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유원형
유원형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최신기사

HEADLINE

더보기

트렌드경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