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원조 007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는 누구? "액션·섹시함·냉소적인 위트로 무장한 20세기 스크린 아이콘"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0-11-01 13: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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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원조 007 제임스 본드’로서 20세기 스크린의 아이콘이 됐던 영국의 원로 영화배우 숀 코너리가 향년 90세를 일기로 31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이에 연예계 동료들과 정치지도자, 팬들은 그가 창조한 제임스 본드의 영화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애도 물결을 잇고 있다. 


영국 BBC 방송, 스카이방송, 가디언지 등은 그의 가족의 말을 인용해 첩보 영화 시리즈 ‘007’의 1대 제임스 본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코너리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 1982년 10월 프랑스 니스에서 007시리즈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메이킹 중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숀 코너리의 모습. [사진= AFP/연합뉴스]

아들인 제이슨 코너리는 부친이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 연방의 섬나라인 바하마의 수도 나소에서 사망했으며, 그가 눈을 감을 때 많은 가족들이 주변에서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나소 지역은 1965년에 제작된 이언 플레밍 원작의 ‘007’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 ‘썬더볼(Thunderball)'의 많은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제이슨은 “아버지가 한 동안 편찮으셨음에도 최근 일어난 이 큰 사건을 이해하는 데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며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슬픈 날이며, 배우로서 당신이 갖고 있던 멋진 선물을 즐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슬픈 상실감을 안겨줬다”고 전했다.

코너리의 홍보담당자였던 낸시 셀처는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열릴 예정이지만 바이러스(코로나19)가 종식되면 아직 계획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기념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숀 코너리는 부인 미셸린과 슬하에 제이슨, 스테판 두 아들을 두었다.

▲ 2017년 US 오픈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는 숀 코너리 [EPA=연합뉴스]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파운틴브리지 지역에서 태어난 코너리는 지난 8월 90세 생일을 맞았다.

앞서 2000년에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홀리루드 궁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래서 영국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앞에는 ‘경(Sir)’을 붙인다.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원제 Dr. No)에서 최초의 제임스 본드 로 연기했으며, 시리즈 가운데 7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섹시한 남성'이라는 역할 모델을 할리우드 영화계에 만들었으며, 영화팬들 사이에서 역대 007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숀 코너리. 사진은 영화 '썬더볼'의 이벤트에서 여배우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코너리는 무자비함과 냉소적인 위트가 어우러진 제임스 본드의 성격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특히 ‘액션, 섹스, 이국적인 장소’라는 세 가지 강렬한 요소를 승리 방정식으로 만들었다.

현재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진정한 영화계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라며 “숀 코너리 경(Sir Sean Connery)은 (제임스)본드 그 이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대와 스타일을 정의했다. 그가 스크린에서 그려낸 위트와 매력은 메가와트 단위(in megawatts)로 측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현대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007’시리즈 제작자인 마이클 G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는 코너리의 사망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devastated)“며 ”그는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입성(indelible entrance)'을 한 ‘오리지널 제임스 본드’로 항상 기억될 것이다. 그가 '그 이름은 본드,...제임스 본드‘(the name's Bond... James Bond')라는 잊을 수 없는 말을 발표했을 때 그 역사는 시작됐다“고 기억했다.

이어 이들은 "그는 섹시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비밀요원의 교활하고 재치있는 묘사로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며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007시리즈의 성공에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라며 애도했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이외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06년 공식 은퇴했다.

그는 수십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과 2개의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상,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88년 아카데미상에서는 '언터처블'의 아일랜드 출신 경찰 역할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 1988년 영화 '언터처블'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보이며 기뻐하는 숀 코너리. [사진= AP/연합뉴스]

숀 코너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 출신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교를 믿는 청소부였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닌 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13세에 학교를 그만둔 뒤 우유 배달과 벽돌공 등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고, 위궤양으로 3년만에 군을 마친 뒤에는 트럭 운전사와 안전요원, 에든버러 미술학교 모델 등으로 활동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을 만큼 축구에 재능이 있었지만 결국 연기를 택했다.

1954년 단역으로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1957년 BBC의 '블러드 머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연기경력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007’ 시리즈와 인연을 맺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코너리의 매력이 섹시한 본드 역할과 어울린다고 당시 제작자의 부인이 추천했고, 결국 물망에 올랐던 여러 명의 배우를 제치고 배역을 따냈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처음에는 코너리가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첫 작품을 본 뒤로는 이같은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스페인, 바하마, 뉴욕에서 지냈다.

특히, 그는 스코틀랜드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2003년에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05년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백치들같은 영화인들에 신물이 난다"며 "내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마피아와 같은 제의가 아니라면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인디아나 존스4',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작품의 출연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인디애나 존스 캐릭터를 만든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감독은 숀 코너리가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indelible mark)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인디의 아버지로서 내 마음 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지적인 권위와 교활한 희극적 유희(intelligent authority and sly sense of comedic mischief)
로, 아버지처럼 엄한 꾸짖음과 큰 기쁨을 표현하는 포옹으로 숀 코너리만이 인디를 즉시 소년 같은 후회나 안도로 만들 수 있었다”며 “그를 알고 함께 일했던 행운에 감사한다”고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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