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 심화…IRA‧반도체법에 전기차‧배터리 업계 대응
엔데믹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였다. 올 한 해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과 더불어 국제정세까지 요동치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장기화되고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외부 환경이 급변하는 등 악재들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치며 비상경영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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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서초 사옥(왼쪽)과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본사 |
올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전황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공급망 위기가 찾아왔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앞당겨졌다.
글로벌 불경기에 따른 IT‧가전 업계 수요 위축은 한국의 효자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메모리 산업의 주요 공급처인 PC‧스마트폰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출하량이 큰 폭으로 줄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 3분기 기준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보다 각각 31.7%, 60.5%씩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10조 8000억 원은 지난 2019년 동기 7조 7800억 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며 약 3년 만에 전년 분기 대비 역성장했다. 매출도 지난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해왔으나 2분기부터 꺾이면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10조 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내년 투자 규모를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향후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위주로 생산량을 줄여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는 국제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내 산업 전반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또 한층 깊어진 미‧중 무역 갈등은 두 국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내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발효된 반도체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중국 반도체‧전기차‧배터리산업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국내 산업계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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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IRA 법안에 서명하는 모습.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조 바이든 대통령,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AP=연합뉴스] |
반도체 과학법은 미국에서 반도체 관련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이 오는 2026년까지 527억 달러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때 인센티브 수혜기업은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중국과 우려 대상국에 대한 신규 투자가 일부 제한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 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7월 미국에 220억 달러 규모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며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건립 구상을 공개한 바 있다.
다만 두 회사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가 넘는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법의 수혜를 입을 경우 중국 내 사업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발효된 IRA는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와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되지 않은 전기차를 세액 공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담았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가 배터리 광물·부품 일정 비율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 지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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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하지만 보조금 지원 대상 리스트에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가 제외되며 현대차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그룹의 주력 전용 전기차인 두 모델이 전량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 중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접적인 손실이 우려되자 같은 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으로 긴급 출장을 떠나며 직접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IRA 가이던스 제정에 앞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정부와 현대차그룹은 미국 정부에 한국산 전기차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IRA 세부 규정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다행히도 미국 재무부는 29일(현지시간) 한국산 전기차가 리스 등 상업용으로 판매될 경우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 지침에 반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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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조지아주 공장 기공식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제공] |
국내 배터리 업계도 북미 현지 생산력을 확대하는 계획을 실행하며 IRA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IRA에는 배터리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등 주요 부품에 대해 북미에서 50% 이상을 제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 비율은 오는 2027년 80%, 2028년에는 100%로 확대될 예정이다.
업계에선 향후 중국산 배터리가 공급망을 잃게 돼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아 세액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IRA에 따르면 리튬‧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40% 비율 이상 공급받아야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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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최윤호 삼성SDI 대표, 지동섭 SK온 CEO |
이에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완성차 제조사들과 손잡고 북미 현지 생산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오하이오주에 지은 북미 첫 합작 공장에서 지난 9월 첫 시제품을 생산했다. 혼다와도 협약을 맺고 오는 2025년 말부터 파우치 배터리셀과 모듈을 양산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스텔란티스와 1개의 합작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자체 공장을 가동 중인 SK온은 포드와 손잡고 오는 2025년 순차 가동을 목표로 포드와 켄터키·테네시주에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이에 더해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기차 공장에도 SK온 배터리를 2025년 이후 공급할 계획이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설립한 스타플러스에너지의 배터리 공장을 미국 인디애나주에 건설할 예정이다. 오는 2025년 1분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지 스텔란티스 부품공장과 연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미국 내 IRA 시행을 앞두고 국내 배터리 3사는 핵심 원재료의 현지화 확대 등 공급망 구축을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가경제=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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