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혼가족 심리상담,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정진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7 13:59:59

[메가경제=정진성 기자] 많은 재혼부부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갈등을 경험하면서 "우리 가족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실패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재혼가족의 갈등은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역사와 가족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적응 과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전문가들은 재혼가족은 초혼가족과 다른 발달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 만족도도 점차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혼가족에서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 되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부부는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을 선택했지만, 자녀는 그 선택에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자녀는 새부모와 가까워지는 것이 친부모를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충성심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녀가 새부모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에 대한 소속감을 지키려는 심리적 반응일 수 있다.

 

▲ 유해피 심리상담센터 하남점 이승혜 상담사

 

재혼가족의 부모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새부모는 "진심으로 잘해주면 곧 부모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현실에서는 거절이나 거리감을 경험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반대로 친부모는 배우자와 자녀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려다 어느 한쪽에도 서지 못하고 죄책감과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부부 갈등과 부모-자녀 갈등이 서로 영향을 주며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하남 상담실에서 만나는 재혼부부들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부부는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출발을 선택했지만, 자녀 문제는 어느새 부부 사이의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드는 가장 민감한 갈등으로 자리잡곤 한다. 이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족의 역사가 한 공간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상담에서는 먼저 '누가 잘못했는가'를 찾기보다 재혼가족이 겪는 발달 과정과 심리적 특성을 함께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새부모는 부모가 되기 전에 신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친부모는 자녀 양육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자녀 또한 새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변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이해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결국 서로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가족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재혼가족은 목표는 초혼 가족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 가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과거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가족만의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가족이 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를 서두르기보다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리는 태도가 오히려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재혼가족의 갈등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발달적 과제일 수 있다. 갈등이 반복될수록 서로를 탓하기보다 지금 우리 가족이 어떤 적응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면 심리상담센터 부부 상담이나 가족 상담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상담은 누군가의 잘못을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과 관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때, 비로소 ‘재혼가족’이 아닌 ‘우리 가족’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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