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가격 담합…기업 희비 엇갈려도 소비자 피해 회복은 '제자리'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전분·전분당 가격 담합에 함께 가담한 대상과 삼양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최종 제재 단계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대상은 2341억4100만원의 과징금을 오는 10월 말까지 납부해야 하는 반면 삼양사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인 ‘리니언시’를 통해 2103억원 규모의 과징금은 물론 시정조치까지 모두 면제받았다.
같은 담합에 참여했지만 자진신고와 조사 협조 여부에 따라 한쪽은 자기자본의 20%가 넘는 과징금을 떠안고 다른 한쪽은 2000억원이 넘는 제재를 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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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양사가 리니언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사진=AI] |
정작 담합으로 가격 부담이 전가됐을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의 피해 회복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리니언시가 은밀한 담합을 적발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담합 과정에서 높아진 가격을 부담한 소비자에게 직접 보상하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 간 제재 형평성과 함께 소비자 피해 구제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대상은 지난달 31일 공정위로부터 전분·전분당 가격 담합과 관련한 최종 의결서와 과징금 납부고지서를 수령했다고 공시했다. 최종 부과금액은 2341억4100만원이다. 2025년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 1조969억4886만원의 21.34%에 달한다. 납부기한은 오는 10월 29일이다.
대상은 앞서 지난 7월 7일 공정위 보도자료를 토대로 같은 규모의 과징금 부과 예정 사실을 공시했지만 당시에는 최종 의결서가 나오기 전이어서 납부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에 공정위 의결서와 과징금 납부고지서가 정식 송달되면서 부과금액과 납부기한이 구체화됐다.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 최종 의결서 수령 이후 법률 및 절차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같은 담합 사건에 가담한 삼양사는 정반대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삼양사는 같은 날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에 따라 전분·전분당 가격 담합과 관련한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명령을 모두 면제받았다고 공시했다. 당초 삼양사에 부과될 예정이던 과징금은 2103억원 규모다. 지난해 말 자기자본의 11.78%에 해당하지만 리니언시 적용으로 최종 부담액은 사실상 ‘0원’이 됐다.
◆ 7년 5개월 가격 짜맞춘 4개사…과징금 7476억원
이번 사건은 대상과 삼양사를 비롯해 사조CPK 등 국내 주요 전분·전분당 제조업체들이 연루된 대형 담합 사건이다.
공정위는 지난 7월 이들 4개사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7년 5개월 동안 전분과 전분당 판매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 등을 13차례에 걸쳐 합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정위는 법 위반행위 금지와 독자적인 판매가격 재결정 등의 시정명령과 함께 총 7476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업체별 과징금은 대상 2341억원, 삼양사 2103억원, 사조CPK 2001억원, CJ제일제당 1029억원 수준으로 제시됐다.
전분과 전분당은 일반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제품이라기보다 가공식품과 음료, 외식제품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기초 원재료다. 원재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제한되면 이를 구매하는 식품·외식업체의 원가가 상승하고, 결국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담합의 비용이 기업 간 거래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가격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최종 제재 단계에서 기업별 운명은 크게 갈렸다. 대상은 2341억4100만원을 그대로 부담하게 됐지만 삼양사는 2103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모두 면제받았다.
◆기업은 ‘2103억 면제’…소비자가 낸 담합 비용은 누가 돌려주나
이번 사건에서 더 주목할 대목은 기업에 대한 행정제재와 실제 소비자 피해 회복이 별개라는 점이다. 가격 담합은 사업자 간 경쟁으로 낮아지거나 인상이 억제됐어야 할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유지할 가능성을 높인다. 전분·전분당처럼 다양한 식품과 음료의 원료로 사용되는 제품은 담합에 따른 가격 왜곡이 공급망을 타고 소비재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자는 어느 기업이 먼저 공정위에 신고했는지 알 수도 없고 리니언시를 선택할 수도 없다. 담합으로 원재료 가격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최종 제품 가격까지 상승했다면 소비자는 이미 그 비용을 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담합 기업은 자진신고 순위와 조사 협조 여부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 역시 소비자 배상금은 아니다. 위법행위에 대한 행정제재인 만큼 기업이 수천억원을 납부해도 해당 금액이 담합으로 가격 부담을 떠안은 소비자에게 직접 돌아가는 구조는 아니다.
삼양사가 2103억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 역시 해당 금액만큼 소비자 피해가 회복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가 실제 손해를 돌려받으려면 담합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토대로 별도의 민사상 손해배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단순히 ‘삼양사 승리, 대상 패배’라는 기업 간 희비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7년 넘게 지속된 담합 과정에서 가격 부담이 어디까지 전가됐는지, 제재 이후 실제 피해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불면 2103억도 0원”…리니언시의 두 얼굴
두 회사의 희비를 가른 것은 리니언시다. 리니언시는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공정위에 위법 사실과 관련 증거를 자진신고하거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경우 일정 요건과 신고 순위에 따라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감면 또는 면제하는 제도다.
담합은 기업 간 은밀한 연락과 합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외부 조사만으로 실체를 밝히기 어렵다. 경쟁당국이 담합 내부자의 신고를 유도해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리니언시를 활용하는 이유다.
담합 참가자들에게 ‘누군가 먼저 신고할 수 있다’는 불신을 심어 담합 자체의 유지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신고 여부에 따라 제재 수위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삼양사는 2103억원의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모두 면제받은 반면 대상은 자기자본의 21.34%에 달하는 2341억4100만원을 오는 10월 29일까지 납부해야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리니언시가 2000억원이 넘는 기업의 재무 부담을 갈라놓은 셈이다.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리니언시가 담합 적발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수년간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신고 순위에 따라 2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는 구조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결국 담합 적발의 실효성과 제재의 형평성 사이에서 어느 수준까지 면책을 허용할 것인지가 제도의 핵심 쟁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징금 감면이나 면제는 경쟁당국과 담합 사업자 사이의 제재 문제이고, 담합으로 가격 부담을 떠안은 소비자의 손해 회복과는 별개의 영역”이라며 “리니언시를 통해 행정제재를 면제받더라도 소비자나 거래 상대방에 대한 민사상 책임 문제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기업은 신고 경쟁…소비자 피해 회복은 별개
리니언시가 없었다면 장기간 은밀하게 이어진 담합을 적발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의 순기능은 분명하다. 하지만 담합에 가담했던 기업은 신고를 통해 수천억원대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 이미 가격 부담을 떠안은 소비자는 별도로 피해를 입증하고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한계도 뚜렷하다.
특히 이번처럼 담합 기간이 7년을 넘고 해당 제품이 식품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원재료라면 과징금 액수만으로 사건을 평가하기 어렵다. 담합에 따른 가격 상승분이 공급망을 통해 어느 정도 소비자에게 전가됐는지, 피해 회복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이번 사건은 리니언시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내부자의 신고 없이는 은밀한 담합을 깨기 어렵지만, 장기간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신고를 통해 수천억원대 제재에서 벗어나더라도 소비자가 이미 부담한 가격은 자동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서 "기업들은 리니언시에 따라 웃고 울었다. 그러나 담합의 최종 비용을 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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