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노동 사각지대' 또 비극…대형마트 카트 노동자 사망

정호 기자 / 기사승인 : 2025-07-11 09: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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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환경… 의료계 "고령자, 열사병 취약" 경고
대형마트 “법정 휴게시간 준수… 조사 성실히 임할 것”
폭염 근로환경 기준 ‘권고’에 그쳐 실효성 떨어져

[메가경제=정호 기자] 경기 고양시 한 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60대 남성 노동자가 폭염 속 야외 근무 중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반복되는 유사 사례에도 불구하고,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는 실외 단순노무직 고령 노동자에 대한 안전 확보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이 대형마트는 지난달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점포이기도 하다.
 

▲ 쇼핑카트를 통해 물건을 옮기는 고객들.[사진=이마트]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9시 30분경 야외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를 하던 A씨(60대 남성)가 갑작스레 쓰러졌다. 동료 직원들과 목격자들이 즉시 신고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A씨는 끝내 숨졌다.

사망 당시 A씨가 호소한 증상은 어지럼증으로, 현장에선 외상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시신 부검을 의뢰하고, 노동당국 등과 사망 경위에 폭염 등 외부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대형마트 측은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과 깊은 슬픔에 잠겨 계실 유가족분들에께 머리숙여 깊은 사과드리며, 유가족 분들에게는 최선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며 “현재 정확한 사인 조사 진행 중으로 알고 있으며, 관계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원칙하에 다시 한번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 강화 보완해 나가며 안전한 근무환경 만들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지난 2023년 코스트코에서 발생한 사고와 유사하다. 당시 수도권의 한 코스트코 매장에서 카트 정리와 주차 업무를 담당하던 남성 B씨가 폭염 속 작업 도중 쓰러져 숨졌다. 부검 결과 사인은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밝혀졌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고령자의 경우 체온 조절 능력과 심혈관 기능 저하로 인해 폭염에 취약하다고 경고한다.

황선욱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60대 이상의 고령자는 탈수 위험이 크고, 이미 심혈관계나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온열질환으로의 전이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며 “폭염 속 장시간 실외 근로는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2025년 5월 15일부터 7월 1일까지 전국에서 총 52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 이 중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390명, 사망자 2명)과 비교해 환자 수는 약 1.3배, 사망자는 1.5배 증가한 수치다.

특히 폭염이 일상화된 최근 근로환경에서, 노출형 야외작업에 종사하는 고령 노동자들이 온열질환 위험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온열질환 사망자 중 약 65%가 60세 이상 고령층으로, 이들 중 다수는 논밭, 공사장, 주차장 등 고온·직사광선 노출 환경에서 활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폭염 상황에서의 실외 작업은 정부의 폭염대응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능한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제력이 없는 ‘자율 기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사업장의 판단에 맡겨진 경우가 많아, 근로자들이 고위험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건강 문제나 ‘안타까운 사고’로 치부돼선 안 된다는 것이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반복되는 폭염 속 실외 근로자 사망사고는 이미 명백한 ‘예방 가능 산업재해’라는 것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폭염은 계절성 산업위험 요인으로, 이미 예견 가능한 재난”이라며 “건설현장, 물류창고, 마트 주차장 등 실외에서 반복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고령 노동자에 대한 보호 대책은 사업장 의지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온 환경에서의 작업 중지 권고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는 대부분 건설현장과 제조업체에 한정돼 있고, 유통·서비스업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특히 하청이나 용역 형태의 고령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 단순노무직종에서는 체계적인 건강 관리나 환경개선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선 ‘폭염 대응 산업재해 예방 매뉴얼’의 법제화와 함께, 실제 현장 단위의 점검과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일정 기온 이상 상승 시 실외 근무를 일시 중단하거나, 고위험군 근로자에 한해 의무적으로 실내 근무를 보장하는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따르면 사업주는 고온(고온환경 노출) 작업 시,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며, 특히 기온이 33℃ 이상인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무리한 작업을 시키지 않도록 하거나, 필요한 경우 작업을 일시 중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고용 노동부 ‘폭염재해 시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사업장 행동요령’에따르면 체감온도 기준으로 33도 이상일 경우, ▲ 1시간마다 10~15분 휴식 ▲ 얼음조끼, 쿨스카프, 생수 등 제공 ▲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휴게시설 제공 ▲ 불가피할 경우 작업 일시 중지 등을 권고한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라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사업주의 자발적 이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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