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분 곰표 '레트로 열풍' 뒷면, 중소기업 '상표 찬탈' 의혹

정호 기자 / 기사승인 : 2025-09-10 13: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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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흥기 맞은 대한제분, 식품 상표권 원사용자 영동식품과 '마찰'
"협업 구실로 상표권 권리 침해 및 손해 누적" 고소와 재판 '점입가경'

[메가경제=정호 기자] 대한제분이 중소기업 영동식품과 곰표 상표를 두고 '권리 침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밀가루 가공업체로 알려진 대한제분은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곰표 상표를 앞세워 의류, 식품, 생활용품 등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소비자 인식을 높이며 '제2 부흥기'를 맞았지만, 단독 소유물이 아닌 '곰표' 상표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대한제분과 영동식품 회사 소개 페이지.

 

논란의 시발점은 상표권 사용 영역이다. 대한제분은 1955년부터 밀가루, 튀김가루, 부침가루 등에서 곰표 상표를 사용해 왔다. 영동식품은 1983년부터 국수 등 가공식품에 곰표를 사용하며 두 기업은 공존했다. 두 회사의 첫 대립은 1996년 대한제분이 영동식품을 상대로 '상표권 무효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이 심판은 기각됐고, 재심을 요청한 지 5년 만인 2021년 결론이 났다. 법원은 "밀가루와 국수는 주요 수요층과 거래 양상이 다르다"며 '상호 공존' 판결을 내리며 결국 영동식품의 손을 들어줬다.

 

'휴전선'처럼 활동 반경이 정해졌지만, 두 회사의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지며 여느 때보다 격화됐다.

 

◆ 뉴트로에 손 내민 대한제분, 실상은 '양두구육'

 

"이미 법원에서 확정된 사안이지만, 대한제분이 '협업'을 제안하면서 관계가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보유한 상표를 가져가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영동식품 관계자의 말이다.

 

2018년 오너 3세 이건영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대한제분은 곰표 마케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빅사이즈 의류 전문 브랜드 4XR, 세븐브로이와 협업한 '곰표 밀맥주' 등으로 상품 종류를 확대했고, 곧바로 식품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분은 영동식품에 협업을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2021년 처음 곰표 국수 디자인 협의를 시작으로 상표 사용 허락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국수·떡볶이·만두 등으로 품목을 넓혔다. 부리또의 경우 대상네트웍스 요청으로 대한제분과 3자 계약까지 맺으며 협력에 속도가 났다.

 

▲ 영동식품의 상표권 무단 사용에 대한 항의와 관련 상표.

 

영동식품 관계자는 "협업 상품을 출시하며 이득을 얻는 쪽은 대한제분뿐이었다"며 "당시 대한제분은 꾸준히 상품군 확대를 요구했고, 이미 우리가 자체 생산 중인 제품도 있어 사업 방향성을 지키기 위해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한제분은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손해를 본 쪽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쪽은 영동식품"이라며 "2023년 3월 말에서야 영동식품이 계약 연장 거부 의사를 밝혀, 이미 거래처와 맺었던 계약을 중단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영동식품 관계자는 "계약을 진행할수록 대한제분의 요구가 많아졌고, 제품 생산에 대한 로열티 지급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하청업체 수준으로 이용당했으며, 계약서에는 불리한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영동식품은 4차례 협상에서 계약 조항 중 '중대한 계약 위반 및 신뢰·명성 훼손이 없는 한 계약 갱신 거부 불가' 등의 삭제 및 수정을 요구했다. 이 조항으로 영동식품은 원가 절감이나 거래 다변화를 할 수 없었고, '신뢰·명성 훼손'이라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계약 연장 권리에 제약을 받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갑(영동식품) 입장에서는 계약 갱신 권리를 저해 받을 소지가 있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 영동식품과 계약 후 유사 상표 및 상품 출원

 

영동식품 관계자는 "계약 자체가 우리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의도였다"며 “전문 법조팀이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불리한 내용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상표권 사용 계약은 곧 대한제분의 유사 상품 출원과 제품 출시로 이어져 구실을 만든 셈이 됐다.

 

대한제분은 정해진 품목 외에도 2021년 5월~7월 영동식품 상표와 겹치는 곰표 상표를 30건 출원했다. 협의 없이 55건의 유사 상품 상표 출원도 시도했다. 이 중에는 영동식품 주력 상품인 국수와 겹치는 상표도 포함됐다. 일부 제품은 실제 출시로 이어졌으며, 해외 판매처에서는 영동식품의 '내고향국수'를 곰표 국수로 홍보하기도 했다.

 

2023년 1월에는 영동식품의 '그래놀라'와 곰표 '오트밀'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했다. 대한제분은 이미 생산에 착수했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영동식품은 같은 해 3월 대형마트 매대에서 곰표 오트밀이 판매되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또 다른 유사 상품으로는 영동식품이 아닌 타 공장에서 생산된 칼국수가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것도 확인됐다. 영동식품은 즉각 제조사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당시 대한제분 관계자는 “내용증명 1차를 받은 후 확인해 보니 담당 직원의 실수였다”며 재발 방지 및 내부 절차 강화를 약속했다.

 

영동식품은 대한제분에 유사 상품 상표 출원 철회를 요청했지만, 대한제분은 "특허청에서 등록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불응했다. 

 

◆ 검찰 고소와 심판 등 '진흙탕' 싸움

 

양측의 갈등은 검찰 고소 외에도 상표 부정 사용 취소심판으로 이어졌다. 영동식품은 지난 1월 대한제분과 관계자를 형사고소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 8월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불기소 처분 배경에는 '중대한 계약 위반 및 신뢰·명성 훼손'이라는 계약 조항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 영동식품과 대한제분의 협업 계약서와 분쟁 상표들.

 

영동식품 관계자는 "상표 취소 심판이 검찰에서 불기소된 점을 보면, 과연 제대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우리가 가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시도가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대한제분은 영동식품의 왕만두·브리또·피자 제품에 대해 '부정 사용 취소심판'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지난달 12일 특허심판원에서 심리를 거쳤으며, 빠르면 이달 내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영동식품 측은 "이번 결과로 우리가 보호 받을 제도적 장치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상표 사용 계약 종료 후 당사가 거래처와 계약을 중단하자, 영동식품이 직접 상표 사용 계약을 체결해 유사 제품을 판매했다"며 "오히려 영동식품이 해당 거래처로부터 받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영동식품 관계자는 "대한제분은 곰 캐릭터를 옆모습으로 사용하지만, 우리는 곰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넣었다"며 "되레 대한제분이 무상으로 상표 사용을 허락받아 브랜드 효과를 누리면서, 선등록 상표권자인 우리에게는 사용을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표권 갈등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영동식품 관계자는 "특정 기업 간의 이해관계 차원을 넘어, 상표권 제도를 사이에 공정한 시장 질서를 지키는 문제"라며 "중소기업이 일군 사업의 역사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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