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벤처 ‘돈맥경화’ 뚫는다…3년간 세컨더리에 1조원 투입

박선영 기자 / 기사승인 : 2026-08-31 12:42:05
초대형 IB 7곳 6185억 원 개별투자
추가 인가 땐 7000억 원까지 확대
15개 증권사·금투협 3000억 원 공동펀드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증권업계가 벤처기업 초기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돕는 세컨더리 시장에 향후 3년간 약 1조 원을 투입한다. 벤처기업에 신규 자금을 넣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존 투자자가 보유 지분을 팔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기업공개(IPO)에 편중된 회수 구조를 보완해 회수된 자금이 다시 벤처·혁신기업으로 흘러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금융투자협회는 31일 증권업계 공동으로 벤처 회수시장 활성화와 모험자본 선순환 체계 구축을 위해 향후 3년 간 약 1조 원 규모의 벤처 세컨더리 투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융투자협회 로고 [이미지=금융투자협회 제공]


세컨더리 투자는 벤처기업에 처음 자금을 넣는 신규 투자가 아니라 기존 주주나 벤처캐피털(VC) 등이 보유한 비상장기업 주식이나 펀드 지분 등을 사들이는 투자다. 기존 투자자에게는 자금을 회수할 길을 열어주고, 새 투자자는 성장 단계에 접어든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는 구조다.

국내 벤처 생태계에서는 투자 확대와 함께 회수시장 활성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투자자가 기존 투자금을 회수해야 새로운 벤처기업에 다시 자금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수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자금이 장기간 기존 투자처에 묶이면서 신규 투자를 제약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올해 들어 이 문제를 생산적 금융의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금융투자업권 모험자본 역량강화 협의체에서 금융투자업계 등이 약 1조~2조 원 규모의 세컨더리 투자를 추진하고 세부 운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금융투자협회 발표는 당시 논의됐던 공동 회수시장 지원방안이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참여회사까지 확정된 후속 조치에 해당한다.

증권업계의 자금 공급은 증권사가 직접 투자하는 방식과 업계 공동펀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나눠 진행된다.

개별투자는 발행어음 및 종합투자계좌(IMA) 업무를 영위하는 초대형 IB 7개사를 중심으로 약 6185억 원 규모로 추진한다.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이 참여한다. 각 증권사가 자체 투자 역량과 전략에 맞춰 세컨더리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발행어음 사업자가 추가로 인가되고 해당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투자에 참여하면 개별투자 규모는 약 7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모험자본 공급 자체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모험자본 공급 의무가 있는 7개 증권사는 올해 1분기 9조 9000억 원을 공급했다. 지난해 4분기보다 2조 원, 25.7% 증가한 규모다.

이들 회사의 발행어음·IMA 조달액 대비 모험자본 공급 비율은 평균 17.3%로 올해 규제비율인 10%를 모두 웃돌았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이번 계획은 이처럼 늘어난 모험자본이 기업에 처음 들어가는 단계뿐 아니라 투자금을 회수하는 단계까지 원활하게 순환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별도로 3000억 원 규모의 공동펀드도 조성한다. 2025년 영업이익 상위 15개 증권사와 금융투자협회가 참여한다.

참여사는 교보증권, 대신증권,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신영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KB증권, 키움증권, 토스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이다.

개별투자가 각 증권사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면 공동펀드는 여러 증권사의 자금을 모아 세컨더리 시장에 일정 규모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금융투자협회는 공동펀드 운용기관 선정 공고를 낸 뒤 최종 운용기관 선정과 출자약정 체결을 거쳐 본격적인 투자에 착수할 예정이다.

관건은 1조 원이라는 목표 금액이 실제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집행되느냐다. 투자 대상과 기업 성장 단계, 구주 직접 인수와 세컨더리 펀드 출자 등 구체적인 운용 방식에 따라서도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번 계획은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 확대와 맞물려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부터 금융권의 자금을 부동산·담보대출 중심에서 기업과 첨단산업 등 생산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권의 벤처·혁신기업 자금 공급도 확대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4월 5대 금융그룹과 업무협약을 맺고 민간 벤처모펀드 8000억 원, 유한책임조합원(LP) 성장펀드 1000억 원 등 벤처·스타트업 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는 5년간 150조 원을 첨단산업 생태계에 공급할 예정이며 올해 공급 목표만 30조 원이다. 이 가운데 7조 원이 민간운용사를 통한 간접투자로 배정돼 있다.

이번 증권업계의 세컨더리 투자는 이 같은 신규 모험자본 공급 정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금의 ‘출구’를 넓히는 성격을 갖는다. 투자자가 보유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다른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어야 ‘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업계의 약 1조 원 투자와 별도로 증권 유관기관이 최대 1조 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계획이 모두 집행되면 금융투자업계를 통해 벤처 회수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은 약 2조 원 규모로 늘어난다.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번 계획은 증권업계가 벤처·혁신기업 성장 생태계 조성에 적극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벤처 회수시장 활성화와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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