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한 경영권 승계 과정과 전혀 다른 지배구조 개선 난제
[메가경제=장익창 대기자] 날로 긴밀해지는 지구촌 시대,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들의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함께 일컫는 ESG 경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괄목할 성과를 거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 후진적 구조로 평가받는 순환출자 고리 등을 끊지 못하는 곳들도 상존한다. 이에 본지는 국내 대기업집단들의 지배구조 현주소를 짚어보고 각각의 과제는 무엇인지 점검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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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
정의선 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배구조와 관련해선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 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순환출자 해소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정 회장의 취약한 지분율 확대라는 녹록지 않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까지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순위에서 부동의 2위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 SK그룹에 밀려 3위로 내려왔다. 올해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에서도 현대차는 SK와 자산총액 격차가 전년 34조원에 비해 56조원으로 더 벌어지며 3위에 머물렀다.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이자 외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 2005년 기아자동차(현 기아) 사장, 2008년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거쳐 2018년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2020년 10월 회장에 올랐다. 공정위가 2021년 4월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현대차그룹 동일인(그룹 총수)으로 정의선 회장으로 변경하면서 모든 절차가 완료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 회장은 상당수의 재벌그룹 총수들처럼 별다른 사법 리스크에도 휘말리지 않고 비교적 순탄한 길을 달려 왔다.
현대차그룹의 핵심 축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다. 정의선 회장은 그룹 총수 뿐만아니라 현대차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기아 사내이사,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까지 겸임하고 있다. 이렇게 정 회장은 그룹 3대축의 경영권을 장악한 양상이다. 그는 한동안 현대제철 사내이사까지 겸임했지만 지난 2020년 3월 사임했다. 이를 두고 과도한 겸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2019년 3월 당시 정기 주주총회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기아차 이사 이외에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현대제철의 사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과도한 겸직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반대를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은 순탄했던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과는 달리 지배구조 개선과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 확보로 지배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중심 세 축인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이들끼리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큰 틀에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형태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진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핵심이자 뿌리인 현대차 지분 21.33%를 보유한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노력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한 뒤 모듈과 애프터서비스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존속 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주요 계열사 대주주 간 지분 매매를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끊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외부 반발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총수(당시 정의선 부회장)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편법으로 산정한 것으로 의심된다.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하고 상대적으로 총수 지분율이 낮은 현대모비스에 불리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대량 보유했던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8조 3000억 원 규모의 배당 등을 요구하고 이에 힘을 싣는 외국인 주주들로 인해 개편안은 수포로 돌아갔다. 엘리엇은 2019년 주주총회에서 패배한 것을 계기로 현대차와 기아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2020년 1월 완전 철수했다.
이달 현재 시가총액(시총)에서 5월 현재 현대모비스는 21조원대, 현대차는 44조원대, 기아는 36조원대에서 형성 중이다. 현대모비스가 그룹 지배구조 구심점으로 꼽히는 이유는 현대차 최대주주라는 점 외에도 정의선 회장이 유의미한 지분율을 확보하는데 있어 현대차나 기아차에 비해 훨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각각 현대차(2.62%), 기아(1.74%), 현대모비스(0.32%)에 그치고 있어 이들 회사들에 대한 지분율을 끌어 올려 지배력을 확대한 것은 그와 현대차그룹에게 커다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밖에 현대글로비스(19.99%), 현대엔지니어링(11.72%), 현대오토에버(7.33%), 현대위아(1.95%), 이노션(2%)를 보유 중이다.
오히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몽구 명예회장이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을이 외아들 정의선 회장에 비해 훨씬 높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향후 총수 부자간 지분 상속 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7.19%, 현대차 5.33%를 보유하며 각각 정의선 회장보다 각각 22.5배,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보유학호 있다. 정 명예회장은 기아 지분은 없지만 그룹 철강 사업의 축인 현대제철 지분 11.81%를 보유해 기아에 이은 2대 주주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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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동 사옥. [사진=연합뉴스] |
현대차그룹에게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는 해결해야만 하는 숙원 과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짚어보면 사실상 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현대차인데 이러한 현대차의 최대주주가 현대모비스라는 점에서 실타래처럼 엮인 순환출자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기아 지분 33.88%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기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외에 그룹 건설사업의 중심인 현대건설 지분 20.9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38.6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외 30여 건설 부동산 관련 종속 법인들을 두고 있다. 현대차는 금융계열사인 현대카드(36.96%)와 현대캐피탈(59.68%), 철도차량 계열사인 현대로템(33.77%)등을 종속기업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차의 최대주주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는 기아로 17.42%를 보유 중이다. 현대차의 지배를 받는 기아는 그룹 철강사업 중심인 현대제철 지분 17.2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대제철은 현대비엔지스틸과 현대종합특수강 등 철강 종속기업들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은 구체적 지배구조 개편안 마련에 고심 중이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순환출자 고리들을 끊어내고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과 실탄 확보를 위한 역할을 담당할 계열사들이 주목되고 있다. 우선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19.999%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현대엔지니어링은 11.72%를 보유해 현대건설에 이은 2대 주주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은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하고 고배당 정책으로 정 회장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계열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12월30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지분율 20% 이상인 계열사로 규정했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3.29%를 보유하고 있어 공정거래법 규제를 받게 되자 지난해 1월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절묘하게 매각해 19.999%로 낮췄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보통주 총 3750만주 중 749만 9991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 20%는 정확히 750만주로 정 회장은 단 9주를 덜 보유하면서 규제를 피해 나갔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시나리오 가능성에 주목한다. 양사 합병을 통해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강력한 구심점으로 기대를 받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분율을 상당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돼 2005년 12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했다. 2013년 감사원의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자산 증여 실태’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설립 당시 최초로 출자한 금액은 불과 20억원 수준이었다. 이달 현재 이 회사 시총이 6조원대 초반에서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치는 1조 2000억 원을 상회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재 상장 작업을 중단한 상태지만 언제든 상황에 따라 상장 재추진이 예상되는 계열사다. .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 9월 한국거래소에 주권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했고 같은해 12월 심사를 통과했으나 수요 부진으로 지난해 1월 기업공개 일정을 한 차례 연기한데 이어 4월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상장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상장에 성공하면 11.72%를 보유한 정 회장은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다
그룹 IT서비스 전문업체인 현대오토에버도 정의선 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2019년 코스피 상장 과정에서 정 회장은 보유 지분의 절반을 처분해 965억 원을 확보했다. 현재도 정 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해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데 앞으로 정 회장에게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30%), 현대모비스(20%), 정의선 회장(20%), 소프트뱅크(20%), 현대글로비스(10%)가 나눠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시간을 두고 면밀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정 회장은 지난해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배구조 개편은 정답이나 모범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업적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신사업이 들어가고 또 줄어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진행하는 게 내부적으로 좋다고 판단한다”고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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