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공방] 대법 판결 이긴 HD현대중공업 "향후 성실 교섭"…노란봉투법 이후 원청 책임 새 국면

박제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05-22 10: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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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구 노조법 적용해 '교섭 의무 없음' 판단…하청 실질 지배 여부는 새 쟁점으로
향후 조선업 원·하청 구조, 노란봉투법 첫 시험대 올라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HD현대중공업이 최근 사내하청 노동조합(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받았지만, 이는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시행 전인 2016년에 발생한 교섭 거부 사안이라 구 노조법을 적용해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원청의 교섭 의무를 전면 부정했다기보다는 노란봉투법 시행 전 법 체계에서는 적극적 교섭 의무까지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사진=챗GPT4]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HD현대중공업의 과거 교섭 거부를 인정해 준 판결인 동시에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의 교섭 책임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판결 이후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부터는 ‘노란봉투법’에 따른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되면서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사용자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 HD현대중공업 손 들어줬지만…판단 기준은 '구 노조법'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1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사내하청 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원청으로서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다며 2016년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2017년 1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노조 활동과 산업안전, 고용보장 등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관련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앞서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하청 노동자들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3심에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합의체의 다수 의견은 이 사건이 2016년 단체교섭 거부를 둘러싼 분쟁인 만큼 개정 노조법이 아니라 당시 시행 중이던 구 노조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구 노조법은 사용자를 ‘사업주 또는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법 체계 하에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하지 않아야 할 소극적 의무를 부담할 수는 있더라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점에 대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종전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다”며 “이 법리를 전제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수긍한다”고 밝혔다.

 

◆ "노란봉투법 이후에도 거부할 수 있나"…이번 판결의 진짜 쟁점

 

이번 판결의 핵심은 대법원이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부정했다기보다 2016년 당시 법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하청까지 아우르는 사용자 범위를 넓혔다. 

 

이러한 개정법에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추가됐다.

 

때문에 법조계와 노동계 안팎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내하청 노조가 다시 단체교섭을 요구할 경우 HD현대중공업이 과거처럼 거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번 판결의 후속 쟁점 사항이다.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준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개정법 시행 전 사안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이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 때문이다. 회사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면서도 노란봉투법 이후의 교섭 요구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면 충돌보다는 성실 대응 기조를 내비친 셈이다.

 

◆ 대법관 4명은 반대 의견…“원청이 실질 지배하면 교섭해야”

 

이번 판결이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오경미·이흥구·신숙희·마용주 대법관 등 4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청 노동자가 있는 노조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어야 노동3권이 보장된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노란봉투법의 문제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산업 현장에서 하청 업체가 형식상 사용자이지만 실제 작업 배치나 ▲안전 기준 ▲물량 조정 ▲근무 환경 등 주요 조건은 원청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노동계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시각이다.

 

◆ 금속노조 "현실 외면한 판결"

 

판결 직후 금속노조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금속노조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7년 6개월 동안 약 2만5000명의 하청 노동자들을 유령 취급한 기만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HD현대중공업 원청이 오랫동안 하청업체의 출퇴근, 휴식 시간, 인력 운용, 잔업과 특근, 작업 배치, 안전 문제 등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법원이 왜곡된 하청 구조를 바로 보지 못한 채 원청의 책임을 부정했다”며 “이번 판결은 기업의 책임 회피를 우선하며 노동3권을 짓밟은 것과 같다”며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라 현장으로 돌아가 조직화 투쟁을 시작하는 계기”라며 즉각적인 교섭 응답을 촉구했다.

 

◆ 승소에도 끝나지 않은 '원청 책임론'…노란봉투법이 흔드는 조선업 하청 구조

 

이번 사건은 HD현대중공업 개별 기업의 노사 분쟁을 넘어 조선업 전반의 사내하청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조선업은 공정별 전문성과 물량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사내하청 활용 비중이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의 실제 근무 여건을 누가 결정하느냐다. 일각에서는 원청이 작업장과 생산 일정, 안전 기준, 물량 배분을 좌우하는 만큼 실질적 사용자로서 교섭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원청과 하청업체가 별도 법인이고 근로계약 당사자도 다른 만큼 원청에 직접 교섭 의무를 부과할 경우 원·하청 계약 질서와 현장 운영에 혼란이 가중된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형식적으로는 HD현대중공업의 승소는 분명하다”며 “문제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같은 요구가 다시 제기될 경우 원청은 어디까지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지와 HD현대중공업의 성실 교섭 발언은 이 질문에 대한 산업계 내부에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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