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일궈온 것은 맛있는 맥주 향한, 뚝심뿐"
[메가경제=정호 기자] 뙤약볕 아래에서 주류 상자를 옮기던 지게차 운전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렸다. 공장 내부에는 미니빌딩 크기의 탱크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안의 맥주들은 숙성 과정을 거치며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바쁘게 솔을 들고 광이 날 정도로 바닥을 청소하는 데 분주했다. 수제맥주 시장의 거품은 꺼졌지만 세븐브로이 익산공장의 생산 전선은 이상 없었다.
기업회생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기를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직면한 세븐브로이 익산공장은 예전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원료 가공부터 숙성, 운반까지 모든 생산 과정도 여전하다. 양조를 배우고 싶은 예비 맥주 주조 장인들의 손과 입으로 통해지던 기술력이 여전히 회사를 지탱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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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븐브로이 익산 공장 전경.[사진=메가경제] |
◆12월 기업회생 최종 인가 결정 앞두고, 웃을 수 있는 이유
직접 찾은 전북 익산의 세븐브로이 생산공장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도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 공장 내부는 열기로 가득했고, 취재진의 등에는 금세 땀이 맺혔다. 이날 안내를 맡은 김보윤 공장장은 "회생법원에서 시찰을 왔을 당시에도 세븐브로이처럼 회생 절차 중에도 공장이 정상 운영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익산 식품클러스터단지 내 유일한 브루어리인 세븐브로이는 12월 기업회생 최종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회생. 재무 위기를 맞은 기업에 채무 부담을 나눠 파산에서 구제하는 제도다. 외부적으로 보면 회사가 위기에 놓인 것이라고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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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윤 세븐브로이 익산 공장장.[사진=메가경제] |
이 속설과 달리 세븐브로이 임직원들은 개인적인 사정을 언급하기보다는 회사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오랜 기간 함께 회사를 일궈온 인력들이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만큼, 내부 분위기 또한 불안보다는 점차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김 공장장은 "법원에서 지정한 회계 법인이 나와 시찰했을 때도 '회생을 진행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며 "직원들의 표정만 봐도 회생을 하는 데도 어두운 표정보다는 집중하는 모습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작지만 강한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내 유일 맥주 공장
전라북도 시내 주조 공장이라고 하면 '하이트진로 전주공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특히 이곳에서 제조된 생맥주와 계란말이를 비롯한 안주를 야장에서 즐길 수 있는 '전주 가맥축제'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불과 14km 떨어진 거리에 세븐브로이가 소리 없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수제맥주 열풍에 힘입어 상장까지 추진한 세븐브로이 공장은 횡성과 양평 공장을 정리하고 이제 익산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단지 한 곳만 남아 있다. 아직은 세븐브로이 자체의 규모도 작고 브랜드를 알릴만한 여력도 부족하지만 맥주에 대한 전문성은 뒤처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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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가 숙성 중인 저장 탱크.[사진=메가경제] |
김 공장장은 "원래 주조라는 것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오래 하지 못한다"며 "지금은 산업안전법 때문에 20kg이상 50kg미만의 원재료만 분쇄해야 하지만 예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포댓자루를 쏟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서처럼 맥주 장인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전문 주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과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도 대학을 졸업하지 마자 세븐브로이에 취직했고 4명 남짓이었던 공장 직원은 13년 만에 20명이 됐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자동화가 되어 일하는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 너스레를 떨던 김 공장장은 "공정은 단순해졌지만, 원재료 가공만으로 끝이 아니라 발효와 효모 미생물 전부 관리가 요구되기에 상당한 애정 없이는 지속하기 어렵다"며 "사람들의 입맛도 수준이 날로 높아지기에 리뉴얼도 꾸준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공장장을 통해 설명으로 들은 1캔에 3500원에 팔리는 맥주 한 캔을 만드는 과정은 제법 복잡했다. 원자재 입고부터 분쇄기, 당화, 저온 살균, 원심분리, 발효 숙성까지 약 18가지 공정을 거친다. 자칫 잘못 관리했다가 변질될 위험이 있어 원통 모양의 수조는 수시로 상태를 살펴야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빈 캔들이 쉴 새 없이 이동하며 생산 라인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외형과 달리 생산 설비와 공정 관리 등 내실 면에서는 여느 주류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김 공장장은 "우리 공장에서는 헬시프레저 열풍에 맞춰 논알코올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디(de)알콜라이저'까지 있는데 맥주가 지나갈 때 감압을 걸어 증기를 넣어 알코올이 날리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생 면에서도 "아무리 맥주가 알코올성 음료라고 해도 청결과 위생에 대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전살균기와 후살균기를 통해 소비자가 믿고 마실 수 있는 주류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곰표밀맥주부터 은하수 하이볼, 실패 딛고 청사진 그려
세븐브로이는 기업회생 과정 중에서도 비관적인 결과보다 더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 공장장은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강서, 한강 등 특색있는 제품들을 출시했으며 나아가 위스키까지 생산해 '주류 면에서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업'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홉의 향의 비터(쓴맛)과 효모의 캐릭터, 맥아의 풍미 등 전체적으로 봤을 때 퀄리티가 뒤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에서 제품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곰표밀맥주(현 대표밀맥주)는 상표를 잃었지만, 제품 개발에 최선을 다했던 제품으로 아쉬움이 크다는 평가다. 제품 개발부터 여성들, 맥주가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타깃으로 삼은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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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 시절 만찬회 장면.[사진=메가경제] |
김 공장장은 "외국에서 '가미향'까지 들여온 제품"이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만들어진 제품이기에 일부 직원들은 제품 유사성에 놀랐다 "고 말했다.
향후 세븐브로이는 경쟁보다는 시장을 키워 시장 확대에 이바지하는 수제맥주 산업의 주축이 되겠다는 방침이다. 세븐브로이는 20~30대 초중반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달된 아이디어는 서울 영업부에 제안이 되거나 직접 원재료를 공수해 만들어보고 맛까지 시음한다.
김 공장장은 "예전에 은하수 하이볼이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흔들었을 때 '가루(파우더)'가 은하수처럼 액체 위에 부유한 형태였으며 샘플 단계부터 계량화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며 "하지만 시장에서 반응은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발판 삼아 세븐브로이는 시장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김 공장장은 "전통 하이볼 까지는 아니더라고 가격과 맛으로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역대급 폭염이 시작됐다. 세븐브로이는 높은 온도와 습도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불만보다는 기대가 컸다.
세븐브로이의 대표 제품인 ‘곰표 밀맥주’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던 세븐브로이 맥주는 한때 재계 주요 인사들의 테이블에 오르며 주목받은 바 있다. 회사 측은 이러한 브랜드 신뢰를 이어가기 위해 품질 중심의 생산 기조를 고수하며 내실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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