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손절한 기업들 속출... 변제 지연 사태 방지 차원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가 7조 20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과 유동성 위기로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MBK가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한지 10년 만이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단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홈플러스는 자금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 조치로 ‘기업회생’ 을 신청했다. 국내 신용평가사(이하 신평사)들이 정기 평가를 통해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단기 자금 조달 압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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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구 홈플러스 본점 [사진=홈플러스] |
신평사들이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유는 홈플러스의 이익창출력이 악화됐으며, 단기간 내 유의미한 실적 회복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자산매각 등 재무 안전성 개선도 미흡하며, 현금창출력 대비 재무 부담이 과도해진 점도 강등 이유로 꼽았다. 근본적으로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는 점을 들어 홈플러스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했다.
'A3-'는 투기 등급 'B' 단계의 바로 위 단계로 자칫 투기 등급으로 한 단계 더 강등될 경우 금융권의 추가 대출은 물론 애초 빌렸던 자금을 조기 상환해야 하거나 대출 금리 인상 등 자금 경색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신평사들은 홈플러스 상황이 단기간에 호전되긴 힘들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서민호 한신평 연구원은 "2022년 영업 적자로 전환 이후 제한된 수준의 외형 회복과 인건비·임차료·상각비 등 높은 고정 비용 부담 하에서 장기간 영업손실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연구원은 "홈플러스는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무 안정성은 여전히 열악하다"며"지난해 3월 중 토지 재평가를 통한 약 8900억 원의 자본 규모 확대에도 지난해 11월 말 가결산 기준 부채 비율이 1408.6%에 달하는 등 부진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미희 한기평 연구원은 "실적 부진 점포에 대한 효율화를 지속하여 차입금 상환 및 투자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나, 부동산 시장 침체를 비롯하여 비우호적인 경제 환경을 고려할 때 변동성이 내재해 있다"라며 "저조한 잉여현금 창출 능력과 과중한 레버리지로 인한 높은 금융비용 부담으로 인하여 중단기 내 재무구조 개선 여력은 크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강등을 이유로 기업회생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파산 직전에 몰린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다.
홈플러스의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한 금융 부채는 2조 원 정도다. 이들 금융 부채 중 상당수는 감정평가 기관들에서 평가한 4조 7000억원에 달하는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하고 있어, 부실화 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파산 가능성이 없음에도 기업회생을 선택한 홈플러스로서는 단기적으로 채무 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무엇보다 기업회생으로 금융권에서 빌린 채무 상환 유예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임대 형태로 운영 중인 점포의 경우 임대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회생 법인에 무리하게 임대료를 높이지 않을 뿐더러 법원이 임대료 협상에 조정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업 구조조정도 한층 더 수월해질 전망이다. 법원의 감독 아래 사업 재편이 이루어져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MBK가 전략적으로 기업회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며, 기업회생의 득실을 따져봤을 때 득이 더 많은 전략"이라면서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을 통해 재정적인 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인 운영 전략을 조정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MBK로 인수된 지 10년 동안 홈플러스가 나락으로 빠진 배경으로는 대형마트 규제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급성장, 소비 침체 장기화로 분석된다. 외부 환경 탓만 하던 홈플러스는 결국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손실의 악순환에 빠졌다. 그사이 쿠팡과 C커머스 등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자금 경색을 뚫기 위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리 매각하려 했지만, 시장에선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상반기 C커머스 대표주자인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 매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성장성이 불투명해서다.
이번 기업회생은 회생절차가 끝나도 경영정상화를 통해 몸값을 높여 홈플러스를 재매각해야 하는 MBK에게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본업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형마트는 소비자의 관심 속에서도 멀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와 무관하게 정상적인 영업을 영위한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홈플러스 손절에 나섰다. 홈플러스가 발행한 자체 상품권에 대해 사용 중단 조치를 취해서다. CJ푸드빌과 CJCGV, 신라면세점 등은 5일부터 홈플러스 상품권 사용 중단 조치를 취했다.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시작될 경우, 상품권 변제 지연 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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