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식펀드 163조로 커졌는데…한은이 자산운용사에 내민 ‘새 시험지’

박선영 기자 / 기사승인 : 2026-09-18 18:16:12
6년 새 27조→163조…주식 위탁 10억달러 채권으로
美 넘어 28개국·3만개 채권 운용…‘초과수익·리스크 관리’ 시험대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을 중심으로 국내 운용업계의 해외투자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국은행이 자산운용사 지원 전략을 ‘양적 기반 조성’에서 ‘질적 역량 강화’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했다. 국내 해외주식펀드 시장이 6년 만에 27조7000억원에서 163조원으로 약 6배 커진 만큼 앞으로는 금리와 환율, 각국 통화정책까지 읽어야 하는 글로벌 채권 운용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한은은 국내 운용사에 맡긴 선진국 주식 위탁자금 가운데 약 10억달러를 채권으로 옮길 예정이다. 기존 미국 중심의 채권 운용도 약 28개국, 3만개 종목을 아우르는 글로벌 종합채권으로 확대한다. 패시브 주식 운용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안정적인 초과수익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춘 국내 운용사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16일 이 같은 내용의 ‘국내 운용사 대상 외화자산 위탁운용 포트폴리오 재편’ 방안을 발표했다. 2012년 중국 주식을 시작으로 국내 운용사에 외화자산 운용을 맡긴 지 14년 만에 지원 전략의 초점을 운용 규모 확대에서 실질적인 글로벌 투자 역량 강화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사 내용에 맞게 AI 이미지 제작

◊ 해외주식펀드 163조…6년 만에 6배


한은이 운용 전략을 바꾸는 배경에는 국내 운용업계의 빠른 해외투자 성장이 있다. 국내 해외투자 주식펀드 순자산은 2020년 27조7000억원에서 올해 6월 163조원으로 늘었다. 6년 만에 약 5.9배로 커진 것이다. 특히 해외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는 같은 기간 1조6000억원에서 126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운용사들도 해외투자 시장 확대 과정에서 전담 조직과 리서치, 투자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 결제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한은은 민간의 해외주식 투자 기반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당초 정책 목표였던 국내 운용사의 ‘양적 기반 조성’이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이 국내 해외투자 시장을 키운 대표적인 대형 운용사라는 것과 이들이 현재 한은의 외화자산을 위탁받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은은 개별 위탁운용사 명단과 회사별 위탁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 163조와 32억달러는 다른 돈


여기서 구분해야 할 숫자가 있다. 해외주식펀드 163조원과 한은이 국내 운용사에 맡긴 외화자산 32억1000만달러는 서로 다른 자금이다.

163조원은 국내 해외주식펀드 시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 32억1000만달러는 한은이 외환보유액 가운데 일부를 국내 자산운용사에 맡긴 돈이다. 한은이 163조원 규모의 해외주식펀드 자금 가운데 일부를 채권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한은이 국내 5개 자산운용사에 맡긴 위탁원금은 올해 7월 말 기준 32억1000만달러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별로는 선진국 주식 19억2000만달러, 미국 종합채권 7억달러, 중국 주식 5억9000만달러로 구성됐다.

위탁운용은 2012년 중국 주식 1억달러로 시작해 2019년 선진국 주식, 2022년 미국 종합채권으로 투자 대상을 넓혀왔다.

◊ 주식 10억달러 빼 글로벌 채권으로


이번 개편의 핵심은 자금 이동이다. 한은은 선진국 주식을 위탁운용 중인 국내 운용사 가운데 3개사 정도를 대상으로 합계 10억달러 안팎을 줄여 글로벌 종합채권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구체적인 이전 규모는 해당 운용사들과의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이는 한은 외화자산 전체에서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내 운용사의 주식 위탁을 줄이는 만큼 해외 운용사의 주식 운용 비중을 늘리고 채권에서는 반대로 국내 운용사 몫을 확대한다. 전체 주식·채권 자산배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자금도 원화로 환전돼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외화자산끼리 이동한다. 이에 따른 별도의 환전 수요도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 운용사 위탁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10%까지 높인다는 목표도 유지한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다시 안정적으로 증가할 경우 증가분을 국내 운용사에 우선 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1~2년 안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국내 운용사에 맡기는 돈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운용이 단순한 패시브 주식에서 고난도 액티브 채권으로 ‘시험 종목’을 바꾸는 셈이다.

◊ 미국 넘어 28개국·3만개 채권으로


새 시험지는 ‘글로벌 채권’이다. 한은은 2022년 도입한 미국 종합채권 전략을 ‘글로벌 종합채권(Global Aggregate)’ 전략으로 전환한다. 미국에 집중했던 투자 무대를 세계 주요 채권시장으로 넓히는 것이다.

대표 벤치마크 기준 미국 종합채권은 1개국 약 1만개 종목을 대상으로 하지만 글로벌 종합채권은 약 28개국, 약 3만개 종목을 다룬다. 투자 대상 종목 수만 약 세 배로 늘어난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투자 국가와 종목이 많아지는 것 이상의 변화다. 글로벌 종합채권에서는 어느 국가의 채권을 살지뿐 아니라 금리 변화에 대한 채권가격 민감도를 나타내는 듀레이션과 장·단기 금리 흐름, 통화별 비중, 국채·회사채 배분 등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금리 하락 가능성이 높은 국가에서는 듀레이션을 늘려 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반대로 금리 상승 가능성이 높다면 듀레이션을 줄여 가격 하락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환율도 변수다. 채권가격 전망이 맞더라도 투자 대상국 통화가치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면 전체 운용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경기 사이클, 신용위험까지 함께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한은도 국가별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기존 미국 종합채권보다 운용 난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 운용사당 2억~3억달러…‘트랙 레코드’ 쌓는다


글로벌 채권 운용에는 운용사별로 2억~3억달러 수준의 자금이 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실제 배정 규모는 운용사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국내 운용사 입장에서는 한은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면서 글로벌 채권 운용 실적, 이른바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한은은 이번 지원이 국내 운용사의 해외사업 확대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은 자금을 통해 해외채권 투자 경험과 운용 실적을 축적하면 다른 기관의 해외자산 위탁운용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도 넓어진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운용 시스템과 해외 네트워크, 전문인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개편의 의미다.

◊ 수익률만 높으면 된다?…외환보유액은 다르다


다만 국내 운용사가 높은 수익률만 내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운용하는 돈이 한은의 외환보유액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대외지급 등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국가의 외화자산인 만큼 일반적인 투자자금과 달리 안전성과 유동성이 중요하다.

한은은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과거 운용성과와 자산운용 규모 등을 토대로 후보기관을 정한 뒤 운용규모와 신용도, 운용성과 등을 평가한다. 이후 현지실사와 프레젠테이션 등을 거쳐 정량·정성 평가를 종합해 최종 순위를 결정하고 수수료 협상을 거쳐 계약을 체결한다.

결국 국내 운용사에 주어진 과제는 단순한 ‘고수익’이 아니다. 벤치마크를 웃도는 안정적인 초과수익을 내면서 변동성과 손실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난도가 높아지는 만큼 보상도 달라진다. 한은은 글로벌 종합채권 운용에 지급하는 운용보수를 기존보다 2배 이상 높일 예정이다. 고난도 액티브 운용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 국내 운용사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 국내사,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력 시험


이번 개편은 국내 운용사의 글로벌 운용 역량을 본격적으로 시험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투자 대상이 미국에서 약 28개국으로 확대되면 금리와 환율, 국가별 경기와 통화정책을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 패시브 주식 운용에서 쌓기 어려웠던 액티브 운용 경험과 성과도 축적할 수 있다.

한은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도 국내 운용사가 액티브 운용을 통해 안정적인 초과수익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대형 운용사와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한은은 국내 운용사의 글로벌 채권 역량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국내 증권사의 해외채권 중개 역량도 함께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2년 중국 주식으로 시작한 한은의 국내 운용사 위탁은 2019년 선진국 주식, 2022년 미국 종합채권을 거쳐 이제 전 세계 채권으로 무대를 넓힌다. 지난 10여 년이 국내 운용사의 해외투자 기반과 몸집을 키우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운용성과와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가리는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한은의 이번 개편은 국내 운용업계에 맡기는 돈의 규모보다 ‘어떻게 운용하느냐’를 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해외주식펀드가 163조원까지 성장하며 ‘양적 성장’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금리와 환율, 신용위험이 얽힌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안정적인 초과수익을 만들어내는 ‘질적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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