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호의 과학단상]㉓ 자본주의 논리의 정당화에 이용되고 있는 진화론

김송호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1-08-31 19: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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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논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진화론 대 창조론’ 논쟁이다.

사실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과학에 결정적인 우위를 안겨준 것도 바로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동설 등 천체물리학의 부상이 과학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동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큰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틀림없는 과학적 사실일까? 물론 성서 내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한다면 진화론이 더 과학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화론 그 자체가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성서 글자 그대로의 창조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창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보다 많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생명 탄생의 비밀, 다른 종으로의 진화 등은 아직 확실한 과학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진화론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화론이 완벽하게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연구결과가 그 연구를 진행하는 데 연구비 지원을 해준 연구기관 등의 외부적 여건에 의해 과학적 사실에 왜곡될 수 있듯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하는데, 진화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과학의 발전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역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과학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안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윈의 진화론이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자본가들에게 진화론이 유리한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 특히 당시 위세를 떨치던 가톨릭의 교리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구절처럼 부가 죄악시되었다. 그만큼 부를 추구하는 자본가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화론에 의해 적자생존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부각되면서 부의 축적은 적자생존에서 승자가 차지하는 당연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낙오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스펜서 등의 견해가 종교 지도자 및 기업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는 새로 부국이 된 미국의 기업가 정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부의 크기가 적자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라는 과학적 뒷받침을 등에 업은 스펜서의 구호는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제도에 적용하는 사회적 다윈주의는 잘못된 진화론적 주장을 내세워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하고 있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마치 진화론에 의한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를 원용한 합리적 원칙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적자생존에 의해 자연계가 균형을 유지하듯이, 자유방임 경제, 규제 없는 자본주의 등과 같은 원칙이 정당화되고 있다.

또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19세기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진보를 혼동한 나머지, 적자생존의 개념을 인간 사회의 진화에 적용하여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진화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우생학, 나치즘, 인종주의적 이민정책, 장애우 등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진화론적 주장이 이용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진화론은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진화(문명화)된 민족이 덜 진화된 민족(야만인)을 정복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이 부당한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론이 악용되는 것을 보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항거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여기에 제기된 주장에 반감을 느낀다면 알게 모르게 자본가들이 앞세운 진화론적 논리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송호 과학칼럼니스트]

■ 칼럼니스트 소개=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Purdue)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감사,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의 산업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과학 기술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아 5000여 명에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서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고 약 20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저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AI 공존 패러다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행복하게 나이 들기’,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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