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달러와 착시효과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19-01-30 1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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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현상은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현상이 실제와 다른 경우를 일컫는다. 착시(錯視)는 흔히 물리적인 공간에서 지각하는 현상이지만 통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성장률 등 각종 경제지표와 관련된 수치들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흔히 통계적 착시 현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매해 1월은 전년도의 각종 경제통계들이 쏟아져 나온다. 최근 발표된 경제통계 중에서도 현실과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지표들이 있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달러 돌파’라는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래픽= 연합뉴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래픽= 연합뉴스]


2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가 3만1천 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은 박양수 경제통계국장은 “속보치 기준 실질 경제성장률과 환율을 감안하면 지난해 1인당 GNI가 3만1천 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계산된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다만 아직 명목 GDP가 발표되지 않았고 현재 국민계정 기준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어서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추정치대로라면 우리나라는 2006년에 2만795달러로 2만 달러를 넘은지 12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에 도달하게 된다. 앞서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넘어갈 때도 12년(1994~2006년)이 걸렸다. 2017년의 1인당 GNI가 2만9745달러였으므로, 지난해 1300달러 정도가 늘어난 셈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경제지표의 중요한 이정표로 간주된다. 선진국 대열 진입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와 환경 등에 신경을 쓸 여력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도 의미한다.


하지만 ‘1인당 GNI 3만달러’라는 통계수치에 실감하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지난 한 해 우리나라는 수출에서는 호조를 보였지만 내수에서는 암울한 나날을 보냈다. 경제성장률은 2%대(2.7%)로 다시 떨어졌다. 6년 만에 최저수준이었다. 일자리 문제는 나날이 어려워지고 기업은 설비투자를 줄였다. 경제활력이 점점 더 약화한다는 진단들이 이어졌다.


3만1천달러를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하면 12만4천달러나 된다. 요즘 환율로 대략 1억4천만원에 근접하는 큰 돈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4인 가족 중 이정도 큰 연소득을 버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일러스트= 연합뉴스]
[일러스트= 연합뉴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체감 경기와는 너무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말그대로 착시효과일까?


착시효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착시라기보다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라는 개념이 갖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국민소득통계에서는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1인당 GNI’다. GNI란 한 나라의 국민이 일정기간 동안 벌어들인 임금, 이자, 배당 등의 소득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 가계, 기업, 정부 등 국민경제가 국내외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벌어들인 소득이다. 1인당 GNI는 명목 GNI를 인구수로 나누어 구한다.


국민소득통계에서 ‘국민’이란 용어는 가계, 기업, 정부 등 국민경제 전체를 포괄해 일반적인 의미의 국민 개개인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쓰인다. 우선 여기에 1인당 GNI가 체감경기와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가 숨어 있다. 가계 소득만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소득도 포함돼 있다.


2013년 GNI 기준 가계 61.2%, 기업 25.7%, 정부 13.1%로 구성돼 있다. 국민총소득에서 가계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전체의 3분의 2밖에 안되고, 3분의 1은 가계와 무관하게 기업과 정부가 벌어들인 돈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GNI가 3만1천달러라면 이중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은 1만8~9천달러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4인 가족이라면 7만2천~7만6천달러 정도로, 현재 원달러 환율로 8천만 원 전후가 돼 1인당 2천만원대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안고 있는 또 다른 한계는 바로 환율적용에 따른 변수다. 1인당 GNI는 명목 GNI를 총인구로 나눈 것이며 국제비교를 위해 보통 시장환율로 환산하여 미달러화로 표시한다. 지표의 한계는 시장환율로 환산한 1인당 GNI가 국민의 생활이나 후생 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원화 집계 1인당 GNI는 2011년 2563만원, 달러기준 2만2170달러였고 당시 원달러 환율은 1156원이었다. 하지만 2017년은 3364만원, 달러기준 2만9745달러였다, 2010년 원달러 기준환율은 1156원이었지만 2017년은 1131원이었다.


시장환율은 통화의 구매력과 관계가 없는 금융 및 자본거래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다 국가 간에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비교역재의 상대가격도 반영하지 못한다.


국내에서의 구매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동일한 소득으로 외국에 나가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게 돼 달러표시로는 소득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처럼 시장환율로 환산한 1인당 소득은 실질구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국민총소득(GNI)에는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에게 분배된 소득도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이 개인의 체감경기에 더 근접한 지표라고 볼 수 있다.


1인당 PGDI는 가계에 분배된 소득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개개인이 체감하는 소득수준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중 우리나라의 1인당 PGDI는 1874만원(1만6573달러)으로, 2017년 1인당 GNI 3364만원(2만9745달러)의 55.7% 수준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생산활동을 통해 창출된 소득이 가계에 더 많이 분배될수록 1인당 GNI와 1인당 PGDI 간의 격차는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가계 소득의 비중을 넓히는 내수진작이 체감경기를 올리는 지름길이다.


수출이 잘 되고 큰 기업은 살찌는데 개인은 가난하다는 현실적인 역설을 막는 일, 우리 경제가 앞으로 심도 있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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