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가짜 유족' 사건으로 가묘 멸실됐다 복원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1860~1920)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1880~1952)의 넋이 꿈에 그리던 조국에서 해후했다.
국가보훈부는 14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최 선생 부부 합장식을 거행했다. 최 선생 순국 103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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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 안장식에서 최 선생 부부의 영현이 모셔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최 선생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최 여사의 유해를 봉환해 원래 최 선생의 묘가 있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합장했다.
앞서 최 선생의 넋이 깃든 흙은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됐으며, 지난 11일 동해항을 통해 반입됐다.
최 선생 부부 합장식은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 주제로 봉송식과 안장식으로 나뉘어 거행됐다.
봉송식은 우수리스크 흙과 최 여사의 유해와 함께 위패,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부부의 영정사진을 모시고 진행했다.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서 입국한 유족 15명을 대표해 최 선생의 손자 최 파벨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최 선생의 5대손인 최 일리야에게 최 선생 부부의 사진을 증정했다.
생전, 최 선생 부부는 금슬이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103년만에 만나는 의미를 담아 부부 사진을 특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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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안장식에서 국방부 의장대가 영현을 감쌌던 태극기를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봉송식에 이어 진행된 안장식은, 김수삼 국립서울현충원장 주관으로 애국지사 묘역 108번자리에서 하관, 허토 등 식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최재형 선생님과 같이 일신을 독립운동에 바치시고 그 곁에서 내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신 분들이 있어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합장식에는 최 선생의 유족들과 박민식 장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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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형 선생-최 엘레나 여사의 옛 사진을 인공지능(AI)로 복원, [국가보훈부 제공] |
최 선생 부부의 넋이 조국에서 해후하기까지는 큰 우여곡절을 겪었다.
본래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돼 그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을 자처하는 이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 현충원에 가묘를 건립했다.
그런데 1990년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 이후 러시아에 생존 중이던 최 선생의 유족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가짜라고 주장했고, 2009년 1월 DNA 조사를 통해 그 사실이 확인됐다. 실은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음이 탄로났다.
이후 서울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108호에 있던 최 지사의 가묘는 2006∼2009년 사이 멸실됐으나 유족은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으나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최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 유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영정 또는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올해 1월 국회에 제출됐고 6월 30일 국회 통과, 7월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7월 18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이번에 최 선생과 최 여사를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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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하병규 한국총영사(왼쪽)가 최재형 지사 부부합장묘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우수리스크에서 채취한 흙이 담긴 상자를 총영사관 소속 직원에게 건네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 선생은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했다.
러일 전쟁 이후 러시아 연해주 연추에서 이범윤 등과 함께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총재로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大恩人)’으로 추앙 받았다.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1897년경 최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낳았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이후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편인 최재형 선생의 순국 이후에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사망했고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보훈부는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에 들어가 이달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다.
이어 이달에는 최 선생이 순국하신 장소로 추정되는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국내로 반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관은 12일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강원도 동해로 향하는 카페리 이스턴드림호 편으로 최 선생 순국 추정지인 우수리스크에서 채취한 흙 3㎏을 한국으로 보냈다.
총영사관 소속 러시아 직원 1명이 태극기가 부착된 황금색 보자기로 감싼 흙이 든 상자를 들고 뱃길에 올랐으며, 이 흙은 13일 오후 동해항에 도착한 뒤 국가보훈부 측에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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