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은 실행될까

이동구 / 기사승인 : 2019-06-15 17: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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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1000원이나 100원을 1원으로 낮추는 방식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시중의 관심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 등이 여러차례 “계획 없음”을 밝혔지만 시중의 반응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나 금을 사야 하나. 어떻게 해야 손해보지 않는지. 이 기회에 돈 좀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다. 최근 골드바가 품귀현상을 빚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논란의 단초가 된 것은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3월 25일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언급했다. 시중의 반응은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장단점과 함께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4월 18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 설명회에서 이 총재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한 원론적인 대답이었으며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 총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관심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졌다. 더구나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의원에게 했던 말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사그라들 리 없다. 급기야 5월 초에는 지상파 방송들마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친절한 해설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23일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과 관련한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 정부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홍 부총리는 “지금 논의할 단계도 아니고 추진할 계획도 없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또 “리디노미네이션은 장단점을 떠나서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크고 사회적 충격도 큰 사안”이라며 “현재는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기보단 경제활력 제고에 국가적 역량을 최대한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제부총리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소문들을 진화하는 데 나섰지만 일찍 찾아온 6월의 무더위처럼 관심의 열기는 여전하다. “언제 시행하느냐, 시점의 문제일 뿐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것은 분명한 것 아닌가”라는 반응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파장이 큰 사안이라 국민들에게 예고하기보다는 순식간에 결정될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과거 두 차례나 경험을 해본 것도 그 같은 예상을 더욱 굳게 믿도록 만든다. 우리나라는 1953년 2월, 6·25 전쟁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100원을 1환으로 바꿨다. 1962년 6월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목적으로 10환을 지금의 1원으로 낮춘 바 있다. 이 당시에도 일반 국민은 잘 모르게 자정을 기해 전격적으로 정책 변경을 단행했던 것으로 시민들은 기억한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2004년에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 실행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 당시 분석 결과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비용은 2조6000억원이지만 경제적 효과는 5조원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부는 물가 급등을 우려해 리디노미네이션에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낮고 경제도 부진한 상태이다. 경제상황에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면 내수 부양 효과가 큰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시중의 예측이다.


이밖에도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장점)은 여럿이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화폐 액면가는 57년 전의 기준이라 그동안 5000배 가까이 성장한 우리의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달러 환율이 1000을 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리디노미네이션은 거래시 계산이나 기록을 용이하게 만들고 지하 자금의 양성화 효과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국통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리디노미네이션의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게 급격한 물가 상승이다. 화폐단위가 축소되면서 끝단위가 반올림돼 거래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만8000원 하는 치킨값이 사실상 2000원이 인상된 2원에 거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단위 이하는 절상시키는 형태의 물가상승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또 부동산이나 금과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투기가 우려되고, 저축과 연금 등 금융상품은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불안감이 커져 투자위축 등 경제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여건과 장단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은 확실하다. 단지 언제, 어떤 범위(1/1000, 1/100 등)로 결정할지만 남은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는 만큼 리디노미네이션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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