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새벽배송 둘러싼 '쩐의 전쟁'…골목상권부터 쿠팡까지 유통시장 대격변

심영범 기자 / 기사승인 : 2026-08-31 10:48:56
정부·여당,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검토…대형마트 심야 온라인 배송 허용 논의
소상공인·노동계 “골목상권 위축·심야노동 확대”…규제 완화 중단 촉구
쿠팡CLS 영업점 단체 조사서 97.7% 반대…“획일적 작업시간 제한보다 휴무 보장해야”

[메가경제=심영범 기자]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유통업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급변한 유통 환경과 대형마트의 경쟁력 회복을 고려해 영업 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중소상인과 노동계는 골목상권 위축과 심야노동 확대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 규제 완화와 함께 새벽·심야배송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법안, 이커머스 플랫폼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단축하는 법안까지 국회에서 잇따라 논의되면서 유통업계 전반으로 규제 변화의 파장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유통업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유통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목적으로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의 심야 영업을 제한하고 매월 이틀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규제는 2012년 도입됐다.

 

문제는 온라인 쇼핑과 새벽배송 등 유통시장의 구조가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도 10년 넘게 유지된 오프라인 중심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점이다. 대형마트업계는 온라인 배송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영업시간 규제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소상공인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대기업 중심의 유통구조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대형마트의 영업 규제가 완화될 경우 골목상권의 경쟁력이 추가로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새벽배송까지 대형 유통업체에 허용하면 지역을 기반으로 구축된 중소 유통망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대형마트 규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단순히 ‘대기업 대 소상공인’ 구도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대형마트가 중소기업 상품의 주요 판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매장 내 입점 형태로 영업하는 소상공인들의 판매 공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납품 중소기업과 입점 소상공인까지 매출 감소와 판로 축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수도권지원센터에서 열린 ‘홈플러스 협력·입점업체 간담회’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의 폐점이 협력업체와 소상공인의 생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마트의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경우 납품업체는 판매처 감소에 직면하고, 매장 내에서 영업하는 소상공인 역시 고객 유입 감소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대형마트 폐점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도 주목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경제분석’에 발표한 ‘대형마트 폐점이 주변상권 매출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는 2020년 폐점한 롯데마트 도봉점과 구로점 주변 상권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대형마트 폐점 이후 반경 2㎞ 이내 전체 상권의 매출액은 약 5.3% 감소했다. 골목상권만 놓고 보면 매출액과 매출 건수가 각각 7.5%, 8.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와 주변 상권이 반드시 경쟁 관계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측면도 존재한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새벽배송 허용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소상인 생존권 보장·노동자 과로사 방지·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지난 2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상인·노동계는 정부가 일부 상인단체의 의견을 전체 중소상인의 합의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다며 반발했다. 김주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규제 완화를 위한 형식적인 상생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허용될 경우 심야노동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형 유통업체가 새벽배송 물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주간 근무를 축소하거나 배송 업무를 외주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기에 앞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새벽배송 시장의 심야노동 문제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대형마트업계의 실적 부진과 경쟁력 약화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특히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경영 악화 과정에서 현행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경쟁력 저하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주요 유통업체에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을 위한 소상공인단체의 상생안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의에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여기에 새벽배송 노동자를 둘러싼 별도의 근로시간 규제 논의까지 맞물리고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야간작업을 하루 최대 10시간, 주당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연속 야간작업을 최대 3일까지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야간작업 종료 후에는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새벽배송을 주요 사업 영역으로 두고 있는 쿠팡과 컬리 등 이커머스업체의 물류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배송 현장에서는 획일적인 작업시간 제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상당하다.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배송계약을 맺고 지역별 배송업무를 수행하는 영업점들이 참여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소속 택배기사 3319명을 대상으로 작업시간 제한과 관련한 긴급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야간배송을 월 최대 12회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97.7%가 반대했다. 주당 작업시간을 최대 30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에는 97.4%가 반대했고, 택배기사의 작업시간을 법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95.9%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야간배송 기사만을 대상으로 하면 반대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월 12회 제한과 주당 작업시간 제한에 각각 98.7%, 98.4%가 반대했다.

 

CPA는 작업시간과 연속휴식 규정이 동시에 적용될 경우 야간배송 기사가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주당 28시간 안팎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송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의 특성상 근무일과 배송시간 감소가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응답자의 97.1%는 작업시간이 제한될 경우 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득 감소 시 택배업을 계속하면서 다른 직종을 병행하겠다는 응답은 48.8%, 택배업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겠다는 응답은 51.2%로 집계됐다.

 

CPA는 작업시간을 제한하더라도 기사들이 다른 택배업체나 화물운송, 대리운전 등 다른 일자리를 병행할 경우 전체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법안의 취지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송 현장의 운영 부담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야간배송 물량이 주간으로 이동할 경우 주간배송 기사들의 업무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 응답자의 67.5%는 야간배송 제한으로 물량이 주간에 집중될 경우 주간배송 기사들의 과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택배기사들이 선호하는 건강권 보호 방안에서도 작업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받았다. 복수응답 조사에서 자유로운 휴무가 65.1%로 가장 높았으며 주 5일 업무제가 58.1%, 건강검진비 지원이 55.5%로 뒤를 이었다. 작업시간 제한을 선택한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유통업계에서는 이처럼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영업규제 완화 문제를 넘어 골목상권 보호, 대형마트 경쟁력, 중소기업 판로, 배송기사의 노동환경, 이커머스 경쟁구도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사안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새벽배송 노동시간을 제한할 경우 기존 이커머스업체와 대형마트 사이의 경쟁 조건에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규제 개편 과정에서 업계별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둘러싼 논의 역시 변수다. 국회에서는 납품·위탁 거래의 정산기한을 10~30일, 직매입 거래는 20~40일 수준으로 단축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된 상태다. 온라인 플랫폼을 대규모유통업자에 포함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쿠팡 간 갈등 역시 향후 유통 규제 논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쿠팡의 현장조사 거부와 관련해 형사 고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여부는 ‘규제 완화냐 유지냐’의 단순한 선택을 넘어 변화한 유통환경에 맞는 새로운 상생 모델을 마련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와 노동계, 소상공인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향후 정부와 국회의 조정 과정에서 구체적인 보완책이 마련될지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근로자, 소상공인, 대기업 등 모든 주체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각 주체의 의견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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