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호의 과학단상]㉙ 죽음과 삶의 경계는 어디쯤인가?

김송호 / 기사승인 : 2021-11-23 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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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때문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리곤 한다. 오죽 했으면 건물 빌딩의 4층을 나타내는 ‘사’자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F’로 표시하거나 아예 3층 다음에 5층을 표시하겠는가.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멀리한다고 해서 죽음이 사라지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따지기 좋아하는 엔지니어로서 가끔 삶과 죽음의 경계, 즉 생물학적 죽음의 경계가 어디쯤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의학자, 생명과학자들도 죽음의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을 뇌사, 심폐사, 세포사의 3단계로 구분한다.
 

▲ [사진=픽사베이]

의학적으로 완전한 죽음을 어느 시점으로 봐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완전한 죽음은 세포사로 봐야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심폐사를 죽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가 “홍길동 환자 5월 29일 11시 45분에 운명하셨습니다”라고 의학적인 죽음을 선언하는 것도 심폐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죽음을 호흡이 멈추는 시점으로 나타내는데 이는 호흡정지와 심폐사가 거의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장기 이식 수술을 위해서 뇌사를 죽음 시점으로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뇌사 상태였다가 갑자기 의식을 되찾았다는 최근 뉴스처럼 장기 이식을 위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죽음은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티베트에서도 사람이 죽은 다음에 한 동안 살아있는 상태가 지속된다고 보고 죽은 이에게 ‘사자의 서’라는 주문(글)을 외어 준다고 한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청각이 가장 늦게까지 작동하기 때문에 듣기 좋은 말을 해줌으로써 죽은 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과거 우리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죽은 이가 들을 수 있다는 티베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장례식 문화가 3일장, 5일장을 했던 이유도 3~5일 안에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요즘은 사망선고가 떨어지자마자 냉동실에 죽은 이를 집어넣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

과거에는 죽음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음이 피해야할 질병으로 여겨져서, 아프면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망하면 냉동고에 들어가고, 장례식도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른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가족들과 친지들, 동네 아는 사람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화물 취급을 받는다는 게 서글프다.

100세 시대의 가장 큰 과제인 웰다잉의 해결책은 죽음을 피해야할 질병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에 ‘죽었다’는 표현 대신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죽음과 삶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이 어떤 근원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죽음은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그랬고,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조상이 나이 들어 죽으면 슬퍼하기도 하지만 축제를 벌여서 축하하기도 한다. 죽음이 이처럼 축복의 의미를 지닐 때 웰다잉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죽음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내 삶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 세상보다 더 낫도록 만드는 데 기여해야 비로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김송호 과학칼럼니스트]

■ 칼럼니스트 소개=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Purdue)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감사,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의 산업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과학 기술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아 5000여 명에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서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고 약 20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저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AI 공존 패러다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행복하게 나이 들기’,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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