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착륙공항 제한도 예고…일본 전지역 여행경보 2단계로 상향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일본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금지 등 사실상 ‘입국 거부’ 조처를 일방적으로 취한 데 이어 우리 정부도 하루만에 신속하게 일본인에 대한 비자 면제 등으로 상응 조치를 취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껄끄럽던 한일 관계가 예측 불허의 최악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6일 외교부청사에서 회견을 갖고 일본이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며 한국인에 대해 입국규제 강화 조처를 한 것과 관련, 그에 상응하는 맞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9일 0시부터 일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처와 이미 발급된 비자의 효력이 정지된다. 일본인이 90일 이내의 단기 체류 시 무비자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제도가 중단된다.
또 일본에서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6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입국규제 강화 조치에 대응한 상응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이달 9일 0시부터 일본에 대한 사증(비자) 면제조치와 이미 발급된 사증 효력을 정지한다. [사진= 연합뉴스]](/news/data/20200307/p179566110128320_895.jpg)
조 차관은 "정부는 선진적이고 우수한 방역시스템을 기반으로 일본의 조치에 대응하고 효율적인 검역시스템으로 일본으로부터 유입되는 감염병을 철저히 통제하고자 한다"면서 이런 조처를 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사증(비자) 발급 과정에서 건강확인 절차가 포함될 것이며, 추후 상황변화에 따라 건강확인서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차관은 또 일본이 이착륙 공항을 제한한 데 대한 상응조치로 "재일한국인의 입국 시 불편초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추후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한일 노선이 많은 인천, 김포, 김해, 제주 중에서 공항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9일 0시를 기해 일본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여행경보를 2단계인 여행자제로 상향 조정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전날 기습적으로 한국인에 대해 ‘입국시 무비자 입국금지’ ‘14일 격리’ 등의 입국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오후 열린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에서 "중국·한국으로부터의 입국자에 대해 검역소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2주간 대기하고 국내 대중교통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같은 대기 조치를 9일 0시부터 시작하며 우선 이달 말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5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교도통신/연합뉴스][사진= 연합뉴스]](/news/data/20200307/p179566110128320_725.jpg)
한국인이 90일 이내의 단기 체류 시 일본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한국과 중국인에 이미 발행한 일본 입국 비자(사증)의 효력도 정지할 것임을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으로 오는 항공편의 경우 수도권 관문인 나리타 공항과 서일본 관문인 오사카 소재 간사이 공항으로 한정하겠다고도 말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에서 선박을 이용해 일본으로 여객을 운송하는 행위도 정지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이같은 조치들이 일단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시행되면 사실상 일본 방문을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7일부터 14일 이내에 대구와 청도를 방문한 뒤 입국한 외국인에 대해 입국금지 조처를 강화한 데 이어 관련 규제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사전에 한국에 관련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조치가 '입국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이에 버금가는 '무비자 입국 금지' 및 '2주간 대기' 조처로 파악되면서 한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하루 종일 대응방침을 숙의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일장기와 태극기. 일본은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 보다. [사진= 연합뉴스]](/news/data/20200307/p179566110128320_402.jpg)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는 6일 오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취한 우리 국민에 대한 입국제한 강화 조치와 자국민에 대한 여행경보 상향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상임위원들은 "세계가 평가하는 과학적이고 투명한 방역체계를 통해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엄격하게 통제·관리하는 데 비춰 일본은 불투명하고 소극적 방역조치로 국제사회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는 "상임위원들은 일본 정부가 이런 부당한 조치를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 정부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치를 포함해 필요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청사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 강화조치에 강력히 항의했다.
강 장관은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도미타 대사에게 "(초치는) 노골적인 입국제한 강화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우리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라면서 "본인이 직접 대사를 만나자고 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식을 잘 느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수한 방역 체계를 통해서 코로나19를 엄격하게 통제 관리하고 있음에도 일본 정부가 이와 같은 부당한 조치를 취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하며, 더구나 추가 조치를 자제할 것을 그간 수차례 촉구했음에도 충분한 협의는 물론 사전 통보도 없이 조치를 강행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장관이 직접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한 것은 이례적이다. 당초 주한 일본대사의 카운터파트인 조세영 1차관이 초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 장관이 직접 외교부로 불러들였다.
앞서 외교부 김정한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전날 밤에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한 바 있다.

외교부가 동일 사안으로 특정 국가의 외교사절 두 명을 연달아 불러들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방역체계를 비교하며 쓴소리도 날렸다.
그는 도미타 대사에게 "이번 조치는 또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있는 우수한 검진 능력, 그리고 투명하고 강력한 방역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차단 성과를 일궈가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하며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강 장관은 "일본은 자국의 조치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라고 설명할지 모르나 누적검사 인원이나 인구대비 검사비율 등 객관적 통계는 우리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역 역량과 노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우리는 오히려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 조치 등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측의 조치는 참으로 비우호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까지 한 것으로서 일본 정부가 객관적 사실과 상황을 직시하면서 이를 조속히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일측이 철회를 하지 않을 경우, 우리로서도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치를 포함한 필요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6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9일부터 효력이 정지되는 비자가 한국의 경우 약 1만7천 건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관광 등의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경우 90일 이내 기간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터라 1만7천명 외에도 일본의 입국 제한 조치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여럿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경우 홍콩, 마카오를 포함해 약 280만 건의 비자 효력이 정지된다.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다. 지난해 일본의 전격적인 수출규제로 빚어진 한일갈등의 여파로 많이 줄었음에도 558만여명이 일본을 찾았다. 여기에다 학업과 비즈니스, 친지 방문 등으로 인적 교류의 수요는 여전히 상당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인에 대해 입국제한 조치를 취한 지역·국가들이 급증했지만, 일본 정부의 조치는 그간 여타 국가들이 미친 파장과는 차원이 다르게 클 수밖에 없다.
선진국인 일본이 걸어잠그면서 한국에 대해 입국제한 조치를 자제해 왔던 다른 선진국들에도 좋지 않은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입국금지 가능성을 열어둔 미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한일 관계는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의 대(對)한 수출규제 등으로 이미 갈등의 골이 깊게 파여 있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19에 따른 빗장 논란까지 더해지며 양국관계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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