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령기준만 적용 임금피크제는 무효...연령 차별"...''업무 저감' 여부 관건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2-05-27 0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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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고용법 조항 강행규정 판단…"도입 타당성·불이익 정도 등 고려해야"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첫 기준 제시…줄소송 가능성에다 노사 갈등도 우려
‘연령기준만 적용’ 임금피크제 무효...임금피크제 축소되면 기업 부담 커져
노동부 “판례 영향 제한적”…많은 기업 채택 정년연장형 아닌 정년유지형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그동안 임금피크제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해 온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결정은 개별 기업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인데다 향후 유사한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사진은 2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 [서울=연합뉴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사업주로 하여금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날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고령자고용법이 규정한 연령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기준을 설정했다.

임금피크제 시행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로써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처음 제시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적용 중인 기업에서는 노사 간의 재논의 및 협상이 불가피해 보이며, 그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했다.

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 사건 성과연급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판단하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같은 취지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 확정 판단 기준으로 ▲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려운 점(목적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점), ▲ A씨가 성과연급제로 인해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음에도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 ▲ 성과연급제 적용 전후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임금삭감에 대응하는 대상조치의 미흡) 등을 들었다.

▲ 임금피크제 개요. [그래픽=연합뉴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깎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유형은 정년유지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등으로 다양하고 사업장별로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 전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령 근로자에게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근로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고 노인 빈곤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층의 실업을 완화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고령층의 숙련된 업무 능력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이번 사건의 피고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와 노동계의 해석이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면서다.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 확대에 힘을 쏟았고 모든 공공기관이 2015년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300인 이상 사업체 중 임금피크제를 운용 중인 곳의 비중은 2015년 27.2%에서 2016년 46.8%, 2017년 53.0%, 2018년 54.8%, 2019년 54.1%로 증가했다.

다만 노동부는 이번 판례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이 아닌 정년유지형이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은 정년연장형을 채택하고 있다. 퇴직을 앞둔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도 삭감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번 판결 속 사례는 정년유지형으로, 근로자 A씨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도 임금이 깎인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앞으로 임금피크제 개별 사례와 관련한 법원과 정부의 판단은 임금 삭감에 걸맞게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 저감 등이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피크제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판례를 참고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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