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50년...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향 창녕으로 돌아가던 날

이승선 / 기사승인 : 2020-07-13 16: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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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이승선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장으로 치러진 서울특별시장(葬)을 모두 마치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 한 줌의 재가 되어 귀향했다. 하지만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더없이 무겁고 착잡한 하루였다.


장례일정 내내 조문을 두고 진영갈등이 일었고 장례식날에는 박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4년이 넘도록 피해를 당했다며 그간의 고통을 호소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박 시장의 운구차는 13일 이른 아침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뒤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으로 출발했다. 이어 오전 8시30분부터 서울시청 신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출처=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 시장의 위패와 영정사진이 서울시청에 도착한 지 10분 후인 오전 8시께 다목적홀에 입장하자 유족 등 일부 참석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족과 시·도지사, 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 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으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영결식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장 입구에서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더불어민주당의 박홍근, 김원이 의원 등이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인사했고, 영결식장 벽에는 빔프로젝터로 박 시장의 웃는 얼굴과 함께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라는 구절이 표시됐다.


행사 시작 직전 고인의 부인인 강난희 여사와 아들인 박주신 씨, 딸인 박다인 씨 등 직계가족이 입장했고, 오전 8시 30분에 사회자인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개식선언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사회자인 고 의원은 "이제 손을 잡을 수도, 얘기 나눌 수도 없지만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 만들어갈 세상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 등 공동장례위원장 3인과 시민 홍남숙씨가 각자 조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종료된 후 박 시장의 영정이 퇴장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종료된 후 박 시장의 영정이 퇴장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백낙청 명예교수는 "내가 박원순 당신의 장례위원장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거의 20년 터울의 늙은 선배가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예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며 "애도가 성찰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만 성찰은 무엇보다 자기성찰로 시작됩니다.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역사적 행적에 대한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고인이 40년을 같이 살아온 친구였다며 "참으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서울대 신입생 시절 김상진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반유신 시위에 참여했다고 학교를 떠나야 했으나,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고인에 대해 "인권변호사로서 군사정권 하에서 시국사건 변론을 맡은 데 이어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척박한 시민운동의 길을 닦았다"며 "열정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러움 많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1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1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은 고인이 당장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 운영 원칙을 3180일간의 임기 동안 올곧게 지켜 갔으며 그 길이 서울시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표준이 됐다고 말했다. 서 권한대행은 '사람 존중 도시'라는 박 시장의 꿈을 미완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꿈으로 흔들림 없이 계승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추모곡으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중 '에어'를 현악5중주가 연주됐다. 이 곡은 표제 등이 죽음과 직접 연관이 없어 장례 음악으로는 흔히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사회자인 고민정 의원은 연주에 앞서 "고인의 가시는 길이 평온한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 곡을 준비했다"며 "오늘도 바깥에는 빗줄기가 무척 거세게 내리고 있다. 많은 분들 마음속도 그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박 시장의 시신은 오전 10시 41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 승화원 정문에 도착했다. 서정협 권한대행은 "이 장소야말로 소통을 최고 가치로 여기셨던 고인께서 시민들과 만났던 곳"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서울시민회의, 자치분권 시민대토론회, 시민참여예산 총회 등 시민 관련 행사를 열고 직접 주재했던 곳임을 상기한 것이다.


4호실로 들어간 박 시장 시신은 1시간 20분 남짓한 화장을 마친 뒤 한 줌의 재가 됐다. 이어 낮 12시51분께 추모공원을 떠나 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사진=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 시장은 고향에서 1970년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상경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 꼬박 50년 만에 서울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떠난 셈이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박 시장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서울시장 직위에 머물렀다. 이후 '내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을 모토로 서울시정의 틀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만 8년 9개월, 3180일 간 이어진 박 시장의 마지막 뒷모습은 너무나 허탈하고 씁쓸했다.


박 시장은 지난 9일 오후 5시 17분께 그의 딸이 112에 실종 신고한 이후 경찰과 소방당국의 수색 끝에 10일 0시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 최초로 성희롱 사건의 유죄 판결을 끌어내는 등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으나 생의 막바지에는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당한 사실이 전해지며 그간의 평가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후 한국 사회는 조문을 두고 진영갈등이 촉발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 차원의 5일장을 치러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공론장을 달구는가 하면, 피해 호소인에 연대하기 위해 조문할 수 없다는 공개적인 선언으로 논쟁을 낳기도 했다.


서울시가 홈페이지에 마련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온라인 분향소에 12일 오후 9시34분까지 100만여명이 클릭으로 애도를 표하는 '온라인 헌화'를 한 데 반해, 같은 시각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 형식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이틀만에 50만 명을 넘겼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는 시민 227명을 대리해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 형태로 치르는 것을 막아 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12일 오후 이를 각하하기도 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 호소인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 호소인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 시장이 고향으로 한 줌의 재로 영원히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박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 호소인 전직 비서 A씨 측은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경찰에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는 성인지적 관점하에 신고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와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피해 고소인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인은 피해자 A씨를 상담하게 된 계기와 고소 과정 등을 전했다. 김 변호사는 "범행은 피해자가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 동안, 그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이후에도 지속됐다"며 "범행 발생 장소는 시장 집무실과 집무실 내 침실 등이었다"고 말했다.


A씨 측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전형적인 권력·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규정하면서 박 시장의 사망으로 수사가 종결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벌어진 유언비어 유포와 피해 호소인 A씨에 대한 2차가해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정을 든 유족들이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날 오후 5시 30분께,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박 시장의 유해가 생가와 선영이 있는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 도착했다. 박 시장 유해는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생가 인근에 있는 부모 합장묘 옆에 자연장 형태로 안치됐다.


유족들은 고인이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에 우선 들러 집 내부에 영정을 모신 뒤 술을 올리며 절을 하고 장지로 향했다. 이날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 지지자 등 300여명은 생가 주변에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서울에서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민주당 기동민·박홍근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유족들과 동행했다.


장례형식을 두고 불거진 논쟁 속에 박원순 시장은 고향의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된 논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점화할 조짐이다.


당장 미래통합당은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 A씨 성추행 의혹을 정조준하면서 여권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기자들과 만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영결식이 끝나면 피해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 차원에서 철저히 챙기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황에 따라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설명했다. 통합당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꺼려 온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공소권 없음'의 사법절차 뒤에 숨지 말라"(김은혜 대변인)고 요구했다.


통합당은 특히 A씨가 지난 8일 박 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직후 수사상황이 경찰 수뇌부와 청와대를 거쳐 피고소인인 박 시장에 전달된 정황이 있다면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박 시장 개인의 '권력형 성범죄'로만 보지 않고, 여당 소속 3선 서울시장을 정권 차원에서 비호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확대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도 꼽힌 박 시장 문제를 이슈화해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이 시민들에게 준 엄청난 충격만큼이나 생전의 공과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는 우리 사회에 큰 숙제와 깊은 상처를 드리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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