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CP사, 망 사용료 지급 불가피...가입자에 비용 전가 우려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지급할 수 없다며 국내 통신 대기업 SK브로드밴드(SKB)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1심에서 25일 패소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넷플릭스의 국내 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SK브로드밴드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와 협상 의무가 없다는 넷플릭스 측 주장을 각하하고, 망 사용료 제공 의무가 없다는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계약 자유의 원칙상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 여부는 당사자들의 협상에 따라 정해질 문제"라며 "법원이 나서서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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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브로드밴드·넷플릭스 각사 CI] |
이번 판결로 그동안 국내 망 인프라에 무임승차한다는 논란을 겪어온 넷플릭스는 사용료 지급을 피할 명분조차 잃게 됐다. 특히, 글로벌 OTT플랫폼 기업과 국내 통신사 간 망 사용료에 대한 첫 판례로 향후 유사한 사례에 대한 소송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지난 2019년에 시작됐다. 전년도까지 100만 명에 못 미치던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가 1년 새 두 배인 200만 명으로 늘어나며 관련 트래픽이 급등한 것이다.
국내 트래픽 상위권을 차지하는 네이버, 카카오 등은 모두 국내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들 업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차지하는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SKB는 지난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 신청을 통해 망 사용료 협상 중재를 요청했지만 넷플릭스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이듬해 4월에 재정 절차를 거부하고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일본과 홍콩에 데이터 임시 저장고인 '캐시서버'를 두고 한국에 서비스할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외 캐시서버 업체에 콘텐츠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SKB는 이 데이터를 캐시서버로부터 다시 받아와 국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 측에서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로서 캐시서버 업체에 접속료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캐시서버에서 데이터를 받아오며 발생하는 전송료는 SKB가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망 관리는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의무로 자신들이 그 사용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특정 서비스에 대한 망 사용료 요구가 콘텐츠 차별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 원칙’에도 위배됨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 후 넷플릭스 측은 ”망 이용 대가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과 주장, 그리고 논쟁으로 인해 정작 공동의 소비자 이익 증진과 만족을 위한 논의는 가려지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 ”CP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를 두고 ‘무임승차'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며 소비자가 이미 ISP에 지불한 비용을 CP에도 '이중 청구'하고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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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의 2021년 라인업 소개 장면 [넷플릭스=연합뉴스 제공] |
이 같은 주장에 SKB 측은 넷플릭스의 접속료와 전송료 구분 자체가 자체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맞서며, 망 사용료는 원칙적으로 유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콘텐츠제공자와 일반 소비자(가입자) 모두 자신들이 제공하는 망을 이용하는 고객으로, 망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또한 넷플릭스가 내세운 망 중립성 원칙은 차별 금지가 주된 취지일 뿐,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아니라고 반론을 펼쳤다.
SKB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환영한다"며 "향후 국민과 국내외 CP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패소로 넷플릭스는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와도 망 사용료를 협상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이는 올해 하반기 국내 진출 예정인 디즈니플러스를 포함해 추후 국내에 진출하는 모든 글로벌 OTT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전망이다.
또한 최대 트래픽 점유 기업인 구글의 국내 망 사용료 지불 논란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CP사가 관련 비용 부담을 가입자에게 떠넘기면서 요금이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온다.
[메가경제=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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