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글로벌 "내부 조사선 문제 없어…노동부 판단 기다린다"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글로벌에서 임신 중인 여성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사안은 직장 내 괴롭힘과 모성 보호 의무 위반 여부와 맞물려 기업의 인권·노무 관리 체계를 둘러싼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동료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에서 증언자로 나선 A씨는 증언 직후 상급자들로부터 공개 질책과 부당 업무 지시를 받았고, 공식 사유 없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됐다. 임신 중이던 A씨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조기양막파열 진단을 두 차례 받고 응급 제왕절개를 받았으며, 의료기록에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적 위험'이 명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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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씨의 진단서에는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문구가 적시되어있다. [사진=제보자] |
피해자 측에 따르면 임신한 상태에서도 상급자들로부터 반복적인 고성과 모욕적 발언에 시달렸으며, 이후 인사 부서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1차 가해에 이어 2차 가해까지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를 입은 직원이 해당 사례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는 증언이 제기되며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 직원은 “2023년 3월부터 약 6개월간 업무 회의 도중 팀장이 몇 차례 목소리를 높이며 구성원을 면박 주는 장면이 있었다”며 “그때마다 분위기가 경직됐고, 주변에서는 ‘괜히 말섞지 말자’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이 회의 후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심리적 고통을 외부 상담을 통해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문제는 사건 신고 이후 대응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지난해 초 인사팀장이 특정 직원의 업무용 이메일을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직원에게 다수 공유하면서 “내부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해당 이메일은 공식 문서 양식으로 작성된 내부 자료였으며, 일부 직원들은 이를 ‘공적 문서로 가공된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2차 피해의 전형적 양상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한 노무사는 “피해 신고 이후 당사자나 증언자에게 불리한 평판을 확산시키는 행위는 명백한 2차 가해”라며 “사용자가 이를 제어하지 않거나 묵인했다면, 사용자 책임 역시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확인 결과 일부 오해 소지가 있었지만, 고의적인 명예훼손은 없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팀 내에는 이미 특정 직원이 회사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돌고 있었고, 이후 그 직원은 사실상 프로젝트에서 배제됐다”고 전했다.
임신 중 괴롭힘으로 양수터져…“보호조치 전무했다”
당시 임신 중이던 A씨는 지속적인 갈등과 스트레스로 조기양막파열(pPROM) 진단을 두 차례 받았으며, 결국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A씨의 의료기록에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적 위험 가능성’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후 심리적 충격으로 우울장애·불안장애·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그는 “회사는 문제 제기를 한 이후 분리 조치, 유급휴가, 심리상담 등 법이 규정한 어떤 보호조치도 시행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무급휴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에게 피해자-가해자 분리, 유급휴가 부여, 상담 지원, 가해자 징계 등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코오롱글로벌은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회사 측이 A씨에게 "무급휴가만 가능하다"고 답변한 것은 시행령 제41조의2(유급휴가 부여 의무) 명백한 위반이다.
A씨는 육아휴직 이후 업무에 복귀한 뒤에도 괴롭힘은 지속됐다는 주장이다. 인사팀은 피해자 동의 없이 부서를 변경했으며,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왜 다시 복귀하느냐”, “세일즈 업무를 시키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조롱을 이어가는 한편 조직적인 따돌림을 가했다고 하소연했다.
‘판단 불가’로 종결된 조사…“증언자 보호 실패”
A씨는 지난해 10월 2차 괴롭힘 피해를 정식 신고하고 관련 메신저 대화, 이메일, 진단서를 제출했지만 회사 측은 '참고인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건을 ‘판단 불가’로 종결했다. 그는 재조사 요청도 거부당했다며 “보호조치를 수행하지 않은 책임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전가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이후 일부 증언자의 실명과 부서 정보가 사내 회의 과정에서 언급되며, 일부 구성원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침묵을 택하는 사례도 있었다. “합병과 구조조정 압박 속에서 불이익을 우려한 직원들이 말을 아꼈다”는 증언도 제기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6조의3과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근로자와 신고자에 대해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분리근무·휴가·상담 등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이러한 법적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 “괴롭힘, 자살 위험 높인다”… 산업보건 이슈로 부각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김은수 교수 연구팀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자살 사고 및 시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 괴롭힘 경험이 없는 집단과 비교해 가끔 괴롭힘을 경험한 집단은 자살 사고 위험이 1.47배, 자살 시도 위험이 2.27배 높았으며, 빈번한 괴롭힘을 경험한 집단에서는 자살 사고 위험이 1.81배, 자살 시도 위험은 4.43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팀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충동이 우울증 유무와 관계없이 유의미하게 관찰됐다며, 직장 내 괴롭힘 자체가 정신건강과 생명 안전에 중대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한 인사 갈등이 아니라 산업보건 차원의 재해 요인으로 보고 관리해야 한다”며 “심리적 부상도 산재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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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3년 가족친화 우수기업에 선정된 코오롱글로벌. |
“신고자 보호 장치 무력화”… 노동부 직권조사 요구 커져
노동계는 이번 사안을 개인 간 분쟁이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의 문제로 본다. 한 노조 관계자는 “여러 법조항이 신고자 보호를 보장하지만, 시행 주체인 사용자가 조사 권한을 갖는 한 근본적 개선은 어렵다”며 “고용노동부가 직권으로 조사하고 감독 계획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 재검토, 사용자 보호의무 위반에 대한 근로감독 및 시정명령을 요청했다. 사건의 결과에 따라 기업 내부의 신고자 보호 체계와 노무 리스크 관리 수준이 다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이 “괴롭힘 신고 이후 ‘고립’으로 이어진 사례”라며 “신고자와 증언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코오롱글로벌 측은 “이 사건은 고용노동부에서 조사 중"이라며 "앞서 회사가 노무사를 통해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조사한 결과 해당 사건은 직장내 괴롭힘 사건이 아닌 '불성립'으로 확인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코오롱글로벌은 2023년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았다. 회사는 2003년 대졸신입 공채 여성인력 30% 채용 의무화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으며, 임신기간 단축근로 의무화, 난임시술 지원 등 다양한 가족친화 정책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안으로 일각에서는 이러한 인증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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