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앞선 네 5차례 모의투표에서 4차례나 톱(Top)에 올랐던 류현진이 단 하나의 1위 자리도 받지 못했다(didn't receive a single first-place)."
16일(이하 현지시간) MLB닷컴의 리처드 저스티스 기자가 사이영상 모의투표 결과를 소개하면서 쓴 기사 중 일부분이다.
MLB닷컴이 이날 공개한 투표 결과를 보면, 류현진(32·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 MLB닷컴의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모의투표에서 1위 표를 단 한 장도 받지 못했다.
이번 모의투표 결과는 ‘맥스 셔저와 제이콥 디드롬’ 2파전의 양상을 보였다.

맥스 셔저(워싱턴 내셔널스)가 1위 표 42장 중 23장을 휩쓸며 165점으로 1위를 달렸고, 제이컵 디그롬(뉴욕 메츠)은 1위 표 19장을 획득해 156점으로 셔저를 바짝 추격했다.
류현진은 올해 MLB닷컴의 5차례 모의투표에서 4번이나 1등을 차지했으나 이번엔 1위 표를 한 장도 받지 못하고 3위로 밀려났다.
이 모의투표는 MLB닷컴 소속 기자 42명이 양대리그 사이영상 후보를 3명씩 추려 투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국 야구기자단의 사이영상 투표방식 대로 1위 표는 5점, 2위 표는 3점, 3위 표는 1점으로 환산해 총점으로 순위를 매겼다
류현진은 지난달 17일 애틀랜타 전부터 지난 4일 콜로라도 전까지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9.95(19이닝 21자책점)로 크게 흔들린 뒤 한 경기를 쉬었다가 등판한 지난 14일 뉴욕 메츠 전에서 7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로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MLB닷컴 기자들의 표심은 셔저와 디그롬 두 선수에게 향하는 모양새다. 사이영상 투표를 할 미국 야구기자단은 아니지만 미국 현지 기자들의 표심을 가늠할 수 있어 주목된다.
16일 현재 류현진은 27게임 168.2이닝을 던져 12승5패 평균자책점 2.35, 탈삼진 148개, WHIP 1.03을 마크하고 있다.
반면, 맥스 셔저는 25게임 159.2이닝, 10승6패, 평균자책점 2.65, 탈삼진 222개, WHIP 1.03을, 디그롬은 30게임 190.0이닝, 9승8패, 평균자책점 2.61, 탈삼진 239개, WHIP 1.01이다.
류현진은 여전히 승수와 평균자책점에서 셔저와 디그롬을 앞서고 있다. 다만 탈삼진은 둘에게 크게 뒤진다.
이런 수치에도 MLB닷컴기자들이 모의투표에서 류현진에게 단 한 표의 1위 자리도 던지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전설의 명투수 사이 영의 이름을 따서 1956년 제정된 사이영상(Cy Young Award)은 한 해 메이저리그 각 리그에서 활약한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원래는 한 명의 투수에게만 주었으나 1967년부터 아메리칸·내셔널 각 리그당 한 명씩으로 늘렸다.

사이영상은 월드시리즈 종료 후에 발표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기자단의 투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포스트시즌 성적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과거에는 20승 고지와 완봉, 완투 능력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20승 투수가 나오기 어려워진 지금은 경기수, 승수, 평균자책점, 세이브, 탈삼진, WHIP 등 여러 변수가 고려되며 수상자를 점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물론 팀 성적 등 주변환경도 중요하다.
투표하는 기자단은 분명 후보들의 한 시즌 성적 전체를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야구기자단에 소속된 투표로 선정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이영상과 마찬가지로 시즌을 마친 뒤 포스트시즌 전에 기자단 투표로 선정하는 MVP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착시현상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지난 기억보다는 최근 기억이 더 생생한 법이다. 시즌 초반에 아무리 강렬한 인상을 남겼더라도 시즌 후반에 맥을 추지 못하면 투표 당시 기자들이 갖고 있는 인상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시즌 초반은 어렵게 시작했더라도 중반 이후 되살아난 뒤 후반에 맹위를 떨친다면 그 선수에 대한 인상은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순위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시즌 후반에 몇 경기만 잘 던져도 그 투수에 대한 이미지는 훨씬 더 짙어진다.
여기에 타자를 허무하게 덕아웃으로 돌려보내는 ‘탈삼진’ 이미지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시즌 후반부나 막판에 빠른 볼을 중심으로 탈삼진쇼를 펼치며 타자를 압도한다면 그에 대한 이미지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미국 ESPN이 23주차 파워랭킹에서 사이영상 경쟁구도를 예측하면서 류현진이 평균자책점은 뛰어나지만 제이콥 디그롬에 비해 탈삼진이 적은 사실을 언급한 이유도 이런 ‘강력한 피칭’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이런 면에서 보면, 기자단이 시즌 내내의 객관적인 성적만으로 사이영상 수상자를 평가한다고 보기 어려운 셈이다.
사람이 평가하는 일이다 보니 성적 이외의 또 다른 제3의 변수가 작용한다. 바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인지상정의 심리다.
각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국에서 태어났거나 자국에서 일찍부터 성장해 친숙한 선수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슷하거나 다소 부족한 듯 보여도 자국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기자들의 심리는 국가와 종목을 초월한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결국 류현진처럼 이방인 선수가 타국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으려면 자국 선수보다 월등한 활약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6일 현재 LA다저스는 시즌 162경기 중 151게임을 소화했다. 남은 경기는 11개 뿐이고, 류현진의 잔여 등판도 2경기로 예상된다. 일단 22일 콜로라도 홈경기 등판이 확정됐고, 시즌 마지막 등판은 다음 주말 샌프란시스코 원정이 유력시되고 있다.
류현진이 다시 사이영상 후보 선두 경쟁에 뛰어들기 위한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여기에는 평균자책점과 승수 이외에도 탈삼진 등 타자를 윽박지르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도 셔저나 디그롬이 남은 한두 경기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작용한다.
‘수치 이상의 강렬한 투구 이미지’. 시즌 피니시 라인을 앞두고 있는 메이저리그 사이영상의 향방은 이 부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즌 막판은 체력전이다. 한국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긴 시즌을 소화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지난날 ‘코리안 특급’으로 명성을 날린 박찬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류현진이 마지막 두 경기에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하지만 올해 류현진은 불사조나 다름없었다. 부상에서 돌아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정신력과 배짱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 않는다.
야구공도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그래서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모른다. 류현진이 또 한 번 막판 기적을 던져주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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