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편집국] 경성~의주 간 철도는 러시아·영국·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에서 철도 부설을 희망하던 시절, 프랑스 휘브릴사가 1896년 허가받고 3년 내 착공하지 못해 반환된 특허를 이어받은 대한철도회사의 자금 부족으로, 정부가 서북철도국을 설치, 1902년 5월 8일 경성~송도 간 기공한 노선이다.
1904년 러일전쟁을 시작한 일제가 임시군용철도감부를 설치하고, 경성~의주 간 철도를 군용철도로 지정하고 의주군 북부의 상습적 침수되는 저지대로 쓸모없던 지역을 대륙침략 기지로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아 새로운(新) 의주라며, 신의주(新義州)라는 종착역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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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신의주역 (新義州驛) |
일본군 사령부가 위치한 용산역부터 경의선 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 2월 5일 용산~개성 간, 4월 3일 개성~평양 간, 4월 28일 평양~신의주 간 철도를 개통시키면서 최초로 신의주역이 탄생하였다.
1906년 4월 3일 용산~신의주 간 개통 당시 열차는 오전 09:10분 남대문 출발, 용산에서 기관차를 후부로 이동하여 반대 방향으로 09:20분 출발, 신의주역 21:30분 도착 열차와 신의주역 10:00시 출발, 남대문역 22:20분 도착하는 하루 1 왕복 급행열차가 운행되었으며, 신의주와 청나라의 안동현 간은 편도 20분 소요되는 나룻배가 하루 4 왕복 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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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순행열차 기념엽서 |
대한제국 국민의 항일운동과 반일 감정 대책에 부심하던 일제는 1908년 4월 1일 부산역 신설 첫날 순종황제 연호 융희(隆熙)를 신의주행 직통 급행열차 이름으로 사용하여 신의주행을 ‘융호’, 부산행을 ‘희호’라 명명하여 한국민의 환심을 사려 했었고, 1909년 일제 통감부는 순종황제 남부지역 순행열차를 1월 7일부터 13일까지 운행하고, 이어서 27일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28일 신의주에 도착, 2월 1일 출발하는 북부지역 순행열차를 운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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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신의주역 |
대륙 진출을 위해 1909년 8월 압록강 철교 부설을 시작하면서 철교 가까이에 새로운 신의주역을 연 면적 387평(1,279㎡)의 3층(1층 역무실, 2·3층은 호텔 및 레스토랑용) 서양식 벽돌 건물로 1911년 10월 신축 준공하여 11월 1일부터 경의선 열차는 청나라의 안동(安東)역까지 연장 운행이 시작되었다(1911.10.26일 고시 318호-관보 3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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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철교와 안동역 |
1937년 시각표에 의하면 부산에서 신경(長春)까지 급행 1왕복, 봉천(沈阳)까지 4왕복(급행 1, 침대 3), 안동(丹東)까지 1 왕복 등 하루 직행열차가 6 왕복 운행되었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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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4월 1일 경성-안동 간 시각표 |
신의주역과 1.8km 떨어진 최초의 신의주역은 ‘신의주하급소역’으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35년 신의주역 기점 1.1km 지점에 빈정역(濱町驛)을 신설하고, 1936년 신의주하급소역을 강안역으로 변경한 후 신의주 강안선이라는 이름으로 여객과 화물이 운송되었으나 1943년 12월 강안선을 폐지하고 모든 업무를 신의주역으로 이관시켰다.
1913년 9울7일 매일신보의 8월 말 신의주 관내에 조선인 4080명, 일본인 2795명, 중국인 1486명 등 총 8361명이 거주하는 신의주역 1916년 6월 승강인원은 6576명(1916.07.15일 매일신보)으로 연간 10만 명도 미치지 못했으나, 1930.05.13일 중외일보에는 5월 10일 봉천발 부산행 열차가 만원(滿員)으로 승차권 발매를 중단하여 수백 명이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32년 10월9일 조선신문의 ‘신의주역 금강산 탐승객 모집’ 소식에서 당시 역무원의 업무를 엿볼 수 있으며, 1934년2월11일 매일신보의 신의주역 호텔연회장 수용인원 60명을 120명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3월 말 완공된다는 보도와 1939년 승강인원 200만 명을 돌파하여 확장공사가 시급해졌다는 기사(1940.01.31. 매일신보), 1940.03.31일 부산일보의 국경 현관 신의주역 혼잡 기사 등에서 신의주 역세(驛勢)가 급속 확장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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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철교 폭파 |
폭증하는 수송량을 단선 철교로는 감당이 어려워 복선 철교 신설공사를 1937년 4월 착공하여 1943년 5월 개통되었지만, 6.25 전쟁 중 중공군 지원을 저지하기 위해 압록강 철교 중 전쟁 당사국이 아닌 중국 소유를 제외한 한국 쪽 1/2을 폭파했으며, 그 후 복선 철교만 복원하고 단선 철교는 부서진 그대로 보존하여 오늘날 관광지(압록강 단교)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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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 단교 |
신의주역이 생김으로서 1914년 신의주시(府)가 탄생하여 1923년에는 평안북도 도청소재지로 발전되었고, 1936년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기차를 타고 부산역을 출발하여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할 때 경유했던 신의주역은 6.25 전쟁으로 남북이 분리되면서 폭파되었으며, 북한 체제에서 재건축된 후 1978년 ‘신의주청년역’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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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신의주청년역으로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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