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驛史(역사)이야기 16화] 3.1절에 반추하는 하얼빈역과 안중근 의사

편집국 기자 / 기사승인 : 2024-02-26 16: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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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편집국] 최초 하얼빈역(哈尔滨站)은 1898년 10월 개업한 하얼빈 최고(最古)의 역이었다.  

 

▲하얼빈역

 

최초 하얼빈역은 1898년 10월 개업했으나 1903년 7월 샹팡역(香坊站)으로 변경돼, 하얼빈시내 중심지에 1899년 개업한 쑹화강역을 하얼빈역으로 개명했다. 오늘 이야기는 두번째 하얼빈역으로 개명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하얼빈역 이야기다.

 

▲시베리아・동청・남만주철도 노선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이긴 일본의 랴오둥(요동)반도 양도 요구를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삼국간섭) 무산시켜 준 대가로 하얼빈을 중심으로 다렌까지 잇는 동청철도(東淸鐵道) 부설권을 얻었다. 이에 독일이 칭다오(青島)를 점령함에 청나라 지원요청을 받은 러시아는 군함을 파견하여 독일을 물리치고, 1897년 12월 뤼순(旅順)과 다렌을 점령, 1898년 3월 남만주철도 부설권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1904~1905)에서 패함에 따라 포츠머스 조약(1905.9.5.)에 의해 창춘(長春) 이남의 남만주철도는 일본의 소유가 되었으나 하얼빈을 포함한 동청철도는 계속 러시아 소유로 남아, 1918년 러시아 제국 멸망 후에는 소련으로 계승되었으며, 부산에서 하얼빈까지 1770.6㎞로 직통 급행열차 히까리(ひかり)호가 60시간(2일 12시간) 소요되었었다.  

 

▲ 안중근 의사 . (사진=일본자료 )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독립운동을 결심한 안중근은 1907년 연해주 의병에 가담해 대한의군참모중장이 된 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회담하러 하얼빈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암살을 자원해 하얼빈으로 향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조선 통감으로 헤이그 특사를 빌미 삼아 고종을 협박해 퇴위시켰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우리 외교권을 박탈하는 등 대한제국 침탈을 주도한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영화 영웅 중에서 한 장면 [영웅 포스터 사진= CJ ENM]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러시아군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한 안중근은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그곳 사람들이 알아듣는 에스페란토어로 ‘코레아 우라!’라고 3번 크게 외친 후 총을 버리고 체포됐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의식


안중근은 러시아군 1차 조사 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으로 넘겨져, 일제 뤼순 감옥에 갇혀 재판과정에서 한 국가의 독립을 위한 의병장으로서 행동이었음을 주장했으나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되었으며 “죽은 뒤에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지만 유해는 오늘날까지도 찾지 못했다.


▲ 하얼빈역 광장과 승강장 저격장소

 

필자는 2009년 안중근 장군 항일 유적지 탐방팀에 합류해 하얼빈에서 개최되고 있는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의식’에서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필자는 승객들로 붐비는 하얼빈역에서는 2006년 승강장 바닥 타일에 새겨놓은 안중근 의사 저격지점(▲표시)과 이토 히로부미 피격지점(■표시)을 살펴보면서 중국당국에 새삼 고마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소학교 벽에 붙은 표찰


하얼빈역에서 약 1000㎞ 떨어져 있는 옛 뤼순 감옥까지 이동하는 도중 1907년부터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당시 하얼빈화원소학교) 외벽에 '1909년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이 체류했던 곳'임을 알리는 표찰이 부착되어 있었다. 

 

▲뤼순 감옥 방문 필자

3000여 명을 세균실험 했던 일제 731부대를 거쳐 뤼순 감옥에서 방명록을 쓰던 필자에게 중국 여성 안내원이 ‘안중근 의사 사형에 관심도 없던 한국인이 왜 왔느냐?’며 쏘아붙였다. 이에 동행했던 소설가 이문열님이 ‘당시 국내에서는 천주교 신자가 교리에 위반해 살인했다며 냉대당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그냥 이해하고 가자고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 독방의 책상

입장하는 우리에게 ‘영국 기자는 불공정 재판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을 신문에 보도했다“고 덧붙여주었으며, 안중근 의사 독방이 다른 방과 달리 책상과 지필묵이 놓여있어 마음에 위안이 되었고, 귀국 후 당시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 러시아 신문 등에도 보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안중근 기념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하얼빈 의거 기념 표지석 설치요청으로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기념관이 설치되었다. 

 

▲ 하얼빈신역사

 

기념관 위쪽 시계가 0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가 저격했던 시간을 표시한다고 하며, 2017년 8월 31일 신축된 하얼빈 신역사는 남·북 양쪽으로 나뉘어 고가의 맞이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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