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 장찬걸 기자] “저와 같은 피해기업의 억울함만이라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는 5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기자회견문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려가다 잠시 울먹였다. 생물정화기술 전문업체 비제이씨는 현대차와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승리한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재심 청구’ 카드를 꺼내들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지난달 27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글까지 올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차량 생산용 로봇에 들어가는 전동실린더를 개발하는 오엔씨엔지니어링의 박재국 대표도 참석했다. 2013년부터 제품 개발을 시작한 이 업체는 2014년 현대차 최종 납품을 눈앞에 둔 기술설명회 과정에서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도 “저희 뿐만 아니라 모든 중기들이 다 참담할 것”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들 중소기업에 따르면 현대차가 기술을 탈취하는 방식은 기술자료를 요구한 후 유사기술로 특허를 등록하거나 타 기업에 유출하는 방식이다.
비제이씨는 현대차로부터 기술자료를 요구받고, 일부 기술은 절도까지 당한 뒤 유사기술 특허 등록으로 기술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이 업체는 2004년부터 자동차 페인트 도장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유기화합물·악취를 정화하는 신기술을 개발해 현대차 울산공장에 납품해왔다. 최 대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2013년 11월부터 5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자료를 요구했다. 같은 시기 현대차는 신규 미생물테스트도 요청해 비제이씨는 1억원을 들여 테스트를 실시하고 결과를 전달했다.
현대차는 이 자료들을 산학협력을 체결한 경북대에 보내 유사기술을 만들어 특허로 출원한 후 2015년 1월 납품계약 중단을 통보했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특히 최 대표는 미생물 3종, 6병에 대해 현대차로부터 절도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을지로위원회 3자 대면에서 (현대차 담당자가) 비제이씨 직원이 줬다고 말했다”면서 “비제이씨 직원은 저랑 상무밖에 없다고 했더니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린 준적도 없고, 줄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 미생물도 2015년 당시 경북대에 전달됐다.
차량생산 로봇부품업체 오엔씨엔지니어링은 현대차에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도면, 제품 등을 제공받은 뒤 타 업체에 기술을 유출했다.
오엔씨엔지니어링은 2010년 현대차로부터 기술개발의 의뢰 요구를 받아 2011년 5월 개발을 완료했다. 당시 현대차는 개발 제품 2세트를 무료로 요구해 받아낸 이후 오엔씨엔지니어링 측과 연락을 끊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동일한 제품을 다른 제조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울산공장에 설치했다. 박 대표는 ”제가 제출한 기술제품에 대한 설명자료에는 제3자에게 유출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 기술 유출은 2014년 발생했다. 현대차가 기존에 사용하던 독일제 로봇설비가 고장이 잦다는 소식을 들은 박 대표는 2014년 7월 자체 개발 제품을 제공했다. 당시 현대차는 공식 문서를 통해 오엔씨엔지니어링의 제품이 기존 독일제품의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라고 확인했다. 이후 박 대표는 특허 등록과 최종납품을 위한 기술설명회도 진행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기술설명회 직전 기술자료와 제품 분해 공구 등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박 대표가 이날 공개한 참고자료에는 현대차 직원으로 보이는 이병철 차장과의 카톡 대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차장은 "월요일에 실물, 가급적 데모 키트 가져오라고 하네요. 동작도 해보고 필요시 분해도 해보고 싶다고"고 언급했다.
하지만 20일 뒤 현대차 측은 다국적기업 SKF사가 오엔씨엔지니어링과 동일한 방식의 기술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박 대표에게 알렸다. SKF사가 현대차에 납품을 시작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비제이씨와 오엔씨엔지니어링이 당한 기술탈취 방식은 실제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많이 쓰는 수법이다.
중기중앙회가 이날 공개한 중소하도급업체 대상 ‘기술탈취 실태 파악을 위한 심층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체들은 원사업자에 기술자료 제공 후 ▲타 업체에 기술유출 ▲원사업자가 자체기술 개발 등 두 업체와 비슷한 피해 실태를 밝히고 있다.
도요타와 보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 대표는 이날 “1차 기술탈취는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와서 한국 대기업 문화를 전혀 모르고 당한 것”이라며 “당연히 공정하게 경쟁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임치제도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나 기업의 불공정한 인식 자체가 없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