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파렴치한 범법자인가, 아니면 공익제보자인가. 요즘 세간에서 신 전 사무관의 행위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대강이다. 언론들도 그 같은 의제에 대해 저마다의 입장을 정리한 뒤 나름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하나의 행동을 두고도 정치적·이념적 스탠스에 따라 입장이 극명히 갈리면서 갈등만 커지고 있는 게 요즘의 형국이다.
논란은 기재부가 지난 2일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기재부의 입장은 신 전 사무관이 재직 중 알게 된 업무상 기밀을 누설했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해당 기밀의 보호가 공익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곳곳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정부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의혹을 제기한 1조원 규모 국채매입(바이백) 취소와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또 했다. [일러스트=연합뉴스]](/news/data/20190104/p179565843566072_508.jpg)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2017년의 국가채무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청와대가 기재부에 압력을 넣어 적자국채 발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압력이 가해지던 그해 11월은 당해연도의 세수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높아지리라 기대되던 때였다. 신 전 사무관은 또 당시 기재부가 국가채무 비율을 미리 설정해두고 그에 부채 액수를 맞추려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와 정부가 국가적 손실을 인위적으로 초래하면서까지 정권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2017년의 앞선 절반가량은 박근혜 정부가 재임했던 기간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높은 국가채무비율로써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폭로 내용은 그해 11월 15일로 예정됐던 바이백(국채 되사들이기)을 기재부가 전격 취소한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 취소 역시 국가채무를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취해진 결정이라 주장하고 있다.
신 전 사무관 주장대로 2017년 11월 14일 기재부는 바이백 취소를 전격 발표했다. 예정일 하루만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바이백이 취소되자 시장에선 일대 혼란상이 연출됐다. 설마 대한민국 정부가 시장에 약속한 일을 어기리라, 그것도 국가경제에 심대한 혼란을 야기할 짓을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예정됐던 바이백 규모는 1조원 정도였다.
바이백 취소는 시장에 온갖 루머가 난무하게 하면서 국가에 대한 신뢰도를 훼손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혼란의 기간이 길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바이백 취소는 불확실성을 가장 큰 적으로 여기는 시장에 치명타를 가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신뢰성 훼손 외 투자자 각자의 손실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채권 값이 일시적으로 폭락함에 따라 차익 실현을 노리고 채권을 사두었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감수했을 것이란 뜻이다. 그중엔 기관 투자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국가정책 결정은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진다는 점을 들어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바이백 취소만 해도 적자국채 추가 발행 논의, 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말 국고자금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려진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전 사무관의 폭로를 국가기밀 누설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이 과연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당장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 정부의 그 같은 주장에 동의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또 하나 따져볼 일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동기 또는 이유다. 그가 개인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일을 저질렀는지가 그 핵심이다. 하지만 아직 그가 재직 중 있었던, 정부내 비상식적 의사결정 과정을 폭로함으로써 개인적 이득을 취했거나 취할 것이란 정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한 처벌이 향후 공익제보자의 출현을 억제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포인트이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공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형식요건을 따질 때 그의 법적 신분은 공익신고자가 아닐 수 있다. 자신이 취득한 전 직장의 비위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먼저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 보인다.
이럴 때 나서야 할 곳이 공익제보자 보호 업무를 맡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다. 그간 침묵으로 일관해온 권익위가 신 전 사무관이 공익제보자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가려 유권해석을 내리는 게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적극적으로 당사자의 신고를 권유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권익위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한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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